여행과 인생/중앙아시아를 가다

중앙아시아를 가다(3)-중앙아시아의 숨은 보석, 키르기스스탄-

박찬운 교수 2024. 8. 10. 05:44

중앙아시아를 가다(3)

-중앙아시아의 숨은 보석,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를 바라보는 필자

 
키르기스스탄. 혀가 꼬였는지 발음하기조차 힘든 이름이다. 외웠다고 생각해도 잠시 딴전을 피우면 머릿속에서 뱅뱅돌뿐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흥미로운 나라다. 실크로드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이곳이 없었다면 동서 교류의 위인들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내륙에 위치하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중국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고 더군다나 3천 미터 이상의 산간지방이 그 40%을 차지하니, 사람들은 이 나라를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고 부른다. 나는 이런 별칭보다 키르기스스탄을 중앙아시아의 숨은 보석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게 속살을 보여준 키르기스스탄은 보석같이 빛나는 나라였다.
 

키르기스스탄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 탄탄탄 국가 중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땅의 크기나 인구 수에 있어서 그렇다. 그렇다고 무시해선 안 된다. 면적은 한반도보다 조금 작은 20만 평방미터이니 대한민국의 두 배나 된다. 인구가 고작 7백만이니 전국 어디를 가도 넓은 땅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에 말과 소 그리고 양이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국민들 대부분은 유목 생활을 청산했으나 아직도 수천 년 동안 이 지역의 주된 삶의 방식인 목축업을 잇는 이들을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비슈케크 인근의 알라 아르차 국립공원
알라 아르차 국립공원
키르기스스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는 길은 이런 초원이 계속된다. 초원에는 말과 소 그리고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타슈켄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탑승하면 한 시간 뒤 비슈케크 마나스 국제공항에 착륙한다. 공항에서부터 의문이 생겼다. 마나스? 이것이 무엇인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서도 이 이름은 계속 따라다닌다. 며칠간 키르기스스탄에 있다보니 전국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말이 '마나스'다. 조사를 해보니 마나스는 키르기스인들의 전설 속에 나오는 영웅이다. 마나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서사시가 있는데, 키르키스인들은 그 역사가 1천 년이 넘는다고 주장한다(이 서사시의 길이는 무려 50만 행으로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드나 호메르스를 압도한다). 키리기스스탄 정부는 1995년에 마나스 1천 년을 기념했다. 이 서사시는  마나스라는 영웅이 키르기스족을 이루는 40개 부족을 통합해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 번영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우리 역사로 말하면 단군 같은 인물인데, 흥미로운 것은 키르기스인들은 그를 전설적 영웅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실존적 영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키르기스스탄은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이룬 뒤 국가적 차원에서 여기저기에 그 동상을 세우기까지 한 것이다. 비슈케크의 중앙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알라투 광장 한 가운데도 레닌 동상을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마나스 동상을 세웠다.
 

비슈케크 알라투 광장의 마나스 동상. 저 광장이 바로 2005년과 2010년 튤립 혁명이 일어난 곳이다.
알라투 광장의 레닌 동상은 광장 한쪽 끝 역사박물관의 뒷 마당으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키르기스인들에게 있어 레닌은 잊을 수 없는 인물인 모양이다. 우즈베키스탄은 독립 이후 레닌 동상을 치워버리고 용맹한 왕 티무르의 동상으로 대체한 것으로 끝났지만, 키리기스스탄에선 레닌을 완전히 지우진 않았으니 말이다. 알라투 광장 한 가운데에 있던 레닌 동상을 광장 뒤의 공간으로 옮겨 놓은 것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통해 키르기스스탄의 미래를 예측한다. 이 나라 사람들이 향하고 있는 자본주의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사회주의의 이상을 간직한채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바로 이 레닌 동상의 존속 하나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알라투 광장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더 추가할 게 있다. 알라투 광장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성지 광주 금남로에 비견되는 곳이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 탄탄 국가 중 유일하게 민주정부를 출범시킨 국가다. 그것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2005년과 2010년 두 번에 걸친 민주화 운동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튤립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안타깝게도  2010년 혁명에서는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키르키스인들의 오늘의 자유는 알라투 광장에서 피를 흘리며 쟁취한 것이다. 
 

키르키스스탄과 카자흐스탄 국경 부근을 흐르는 탈라스강(위키피디아)

 
이번 여행에서 실제 보진 못했지만(가더라도 별것은 없다. 그저 평범한 강 줄기만 볼뿐 어떤 유적도 없다) 탈라스 강은 비슈케크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다.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당군과 아랍군과 싸운 탈라스 전투가 바로 이 부근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아직 탈라스 전투가 이루어진 장소는 학술적으로 정확히 고증되지는 못했지만, 탈라스 강이 비슈케크에서 멀지 않은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국경 부근을 흐르는 강이니, 분명 전투는 이 근방 어디에서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751 고선지 장군은 당시 서역 정벌에 나서 아랍 측과 탈라스 강이 보이는 평원에서 결전을 치렀으나 동맹군의 배신으로 패하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동서 교류사의 새로운 장을 만든 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당군 수만 명이 아랍군의 포로가 되는 가운데, 당나라의 기술이 아랍 측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특히 당군 포로 중에 제지 기술자가 있어, 이들이 사마르칸트의 제지술을 일으켜, 사마르칸트를 오랜 기간 무슬림 제지업의 중심으로 만든다. 더 나아가 이 제지술은 다시 유럽으로 넘어가 명성을 얻었으니, 탈라스 전투가 동서 문명 교류의 결정적 사건이었다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부라나 타워
부라나 타워에서 본 주변. 멀리 천산산맥이 보인다.

 
비슈케크에 도착해 하루를 근처 국립공원과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사흘째가 되는 날 이식쿨 호수를 향해 달렸다. 가는 도중 비슈케크에서 한 시간 반 거리(80킬로미터)에 있는 톡마크 근처 부라나 타워를 들렀다.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1천여 년 전 소그드 계열(소그드는 이란 계열의 문명으로, 소그드인들은 기원전부터 오랜 기간 중앙아시아 전역에 많은 왕국을 만들었음)의 무슬림 왕국의 도시(발라사군)가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더 큰 관심은 두보와 함께 당나라의 최고 시인이라고 추앙되는 시선(詩仙) 이백(이태백)의 고향이라는 점에 있었다. 내가 고교 시절부터 애송하는 한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이 바로 이백의 시가 아니던가.
 

問餘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왜 푸른 산에 사는가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閒(이부답심자한)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별천지일세, 인간 세상 아니네

 
이백은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천산산맥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가 위대한 시인이 된다. 어린 시절 이 광대한 땅에서 보낸 기억이 그의 시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궁금하다.
 

부라나 타워와 그 내부.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저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데 폭이 좁고 경사가 급해 기어서 올라가야 한다.

 
부라나 타워는 미나렛으로 허허벌판에 우뚝 서 있는 1천여 년 전의 이곳 무슬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유적이다. 지금은 원형(높이 45미터)에서 절반 정도(25미터)만 남아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원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주변이 완전 평지라 그 정도 높이의 미나렛이라면 주변을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했을 것이다. 어렵게 꼭대기까지 올라가 주위를 살피니 설산의 천산산맥이 손에 잡힐 듯하다. 눈을 감으니 1천 년 전 이곳에 성을 쌓은 아랍인들의 모습과 분주하게 이 성을 드나드는 실크로드 상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식쿨 호수는 마치 바다와 같다.

 
비슈케크에서 서너 시간 차를 달려 고도를 높이면 천산산맥으로 깊이 들어간다. 이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요 실크로드 역사에서 뺄 수 없는 포인트 하나를 만날 순간이다. 이식쿨이다. 이 호수는 일견 바다 같은 호수다. 타원형의 호수로 가로 180킬로미터, 세로 60킬로미터로, 서울 면적의 10배, 전세계 산상호수로서는 남미의 티티카카 호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호수다. 오아시스 실크로드가 만들어진 이후 많은 상인과 승려들이 천산산맥을 넘어 이곳을 거쳐 사마르칸트 방면으로 나아갔다. 현장의 대역서역기에는 그가 이곳을 거쳐 인도로 갔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가 서기 628년 이곳을 거쳐 가면서 남긴 기록은 이렇다.

“능산에서 400여리(160킬로미터)가면 대청지에 도착하는데, 이 호수의 둘레는 1천여 리(400킬로미터)나 된다. 동서는 넓고 남북은 좁으며 사면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많은 하천이 이 호수에 흘러가며, 물은 검푸른 빛을 띠고 있는데 맛은 짜고 씁쓰레하다. 파도가 심하고 격랑이 일어나며 흐름이 급하다. 물고기와 용이 뒤섞여 살며 가끔 신령스러운 괴물이 출몰하기도 한다. 이에 오가는 행인들은 모두 이 괴물을 향해 기도하며 보우와 시복을 기구한다. 그래서 호수에 어적 생물이 많이 있지만 그 누구도 감히 잡지 못한다“(실크로드 문명기행, 136)

용 이야기를 빼면 대체로 이식쿨에 대한 현장의 묘사는 정확하다.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 와서 휴식을 취하고 물놀이를 하는 리조트로 변해 있지만 이식쿨의 물색깔은 여전히 검푸르고 물맛 또한 짜고 씁쓸하다. 이식쿨이라는 말 자체가 ‘따뜻한 물’이라는 뜻이고 사실 염호이기 때문에 이 호수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한 가운데로 나가니 완전 망망대해다. 마침 한줄기 비가 내리니 운치가 그지 없다. 현장 스님이 이곳을 지나면서 느낀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이곳을 지난 것은 겨울로 추정되니, 수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산중 바다를 보면서 강하게 소원했을 것이다. 인도로 가는 길이 무사하도록. 인도에 가서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고국으로 돌아가 부처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빌고 빌었을 것이다.
 

촐폰아타의 암각화 자연박물관. 아마도 지각 변동에 따라 저 앞의 산에서 돌이 굴러 온듯하다. 약 40헥타 대지 위에 5천여 개의 바위가 있는데, 그 중 수 백 개의 바위에서 암각화를 볼 수 있다.

 

이 암각화에는 산양과 사냥꾼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바위에는 사슴이 보인다.

이식쿨 호수를 간다면 꼭 가야할 곳이 몇 군데 있다. 그 첫째가 촐폰아타의  암각화다. 호숫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등성이에 수천 개의 작은 바위가 널려져 있다. 그런데 그 바위를 자세히 살피면 거기에 양, 사슴, 물고기, 사람 등이 새겨져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촐폰아타의 암각화다. 암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울주의 반구대가 있듯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선사시대의 유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수백 개의 암석에서 집단적으로 1천여 년간에 걸쳐 암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연구에 의하면 이 암각화는 기원전 800년에서 서기 12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일찍이 이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일정한 문명을 만들었다는 증거다. 물이 있으면 사람이 있고 사람이 모여들면 문명이 생긴다는 것은 인류사의 철칙이다. 티티카카호수도 그렇지 않은가.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도 일찍이 사람들이 모여 문명을 일으켰고 그것이 그후 잉카문명으로 이어진 것은 세계사가 증명한다. 바로 촐폰아타의 암각화는 그곳이 천산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아시아 인류 문명의 시발지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르호르도 (Rukh Ordo) 문화센터
문화센터 내에는 저런 모양의 5개 종교관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된 키르기스스탄의 국민 작가 칭기즈 아이트마토프

 
이식쿨에서 놓치지 말고 들러보아야 할 또 하나의  장소는 최근 개관한 르호르도(Rukh Ordo) 문화센터다. 이곳은 2007년도에 문을 연 일종의 영성센터로 세계 종교의 화합을 모토로 만들어진 곳이다. 불교, 가톨릭, 정교회, 이슬람, 유대교의 작은 전시관이 호숫가에 그림같이 서 있다. 특히 이곳에서 눈여겨 볼만한 전시관은 키르키스스탄의 톨스토이라고 불리는 칭키스 아이트마토프(국내에서는 ‘천기즈 아이뜨마또프’로 알려짐) 전시관. 나는 사실 이곳에 가서야 그의 존재를 알았다. 칭기즈 아이트마토프(1928-2008)는 키르키스스탄이 낳은 대문호로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작 ‘백년보다 긴 하루’가 국내에 이미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고 나의 무지를 탓했다. 그가 얼마나 키르키스스탄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고 있는지는 안내를 맡은 스무살 짜리 대학생 아디나이가 그의 소설 대부분을 읽었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었다. (2024.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