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허접한 미국의 의료시스템과 싸우는 아빠의 사랑, <존 큐>

박찬운 교수 2020. 10. 10. 06:19

 

 

 

세계 최고 선진국이란 미국이 요즘 거덜 나고 있다. 코로나 팬더믹 하에서 맥을 못 춘다. 확진자 수가 매일 수 만 명씩 증가하고, 매일 환자들 중 수 천 명은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확진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며칠 만에 백악관으로 복귀했다. 그가 복귀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받은 치료를 원하는 모든 미국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겠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없다. 현재로선 미국에서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되는 일이 아니다. 미국은 의료기술이야 세계 최고지만 의료서비스는 돈 없는 사람들에겐 최악이란 것은 이제 상식이 된 사회다.


미국의 의료는 우리나 다른 서구국가처럼 사회보험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철저히 개인이 알아서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미국의 의료비는 단연코 세계 최고다. 그러니 보험료가 비쌀 수밖에 없고 저소득층은 감당할 수 없어 보험을 포기한다. 수천 만 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 바깥에서 질병과 싸우는 게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천국이다. 감기만 걸려도 쪼르륵 병원에 갈뿐만 아니라 이젠 큰 병이 걸려도 의료비 부담은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의료서비스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건강보험제도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의료개혁의 이름으로 불리는 오바바케어는 이런 배경 하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전 국민의 의료보험을 강제하는 것으로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일정 수 이상의 종업원을 가진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소득에 따라 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에 반대를 한다. 이것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부의 재정부담을 폭증시켰다는 이유다. 오바마케어의 향방은 미국 대법원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 곧 임명될 가능성이 큰 보수주의 법률가 에이미 베닛이 대법원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오바마케어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된다. 이래서 오바마케어를 만든 민주당은 그녀의 대법관 인명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존 큐의 단란한 가정, 저 꼬마에게 심장질환이 찾아오고 존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론이 길었다.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자. 미국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 미국의 보수화 물결이 극으로 치닫던 조지 부시 시절 2002년 닉 카사베츠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 <존 큐>. 이 영화는 미국의 허접한 의료시스템을 고발하면서 또 한 편으로 애타는 가족애를 그린 작품이다.


존 큐(댄젤 워싱턴)는 사랑하는 아내 데니즈(킴벌리 엘리즈)와 귀염둥이 아들 마이크를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런데 삶에 암운이 드리운다. 다니는 회사의 경영악화로 정규직 노동자인 그가 시급을 받는 노동자로 바뀌고 말았다. 급여가 줄어들자 가정에도 은행의 빚 독촉이 들어오고 급기야 돈이 되는 세간살이를 팔아서 갚지 않으면 상황이 된다. 그래도 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그는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야구를 하다가 마이크가 쓰러졌다.

 

어느 날 마이크가 야구시합에 나가 보기 좋게 한 방을 때리고 운동장을 돌 때 갑자기 쓰러졌다. 마이크에게 심각한 심장질환이 있었던 것이다. 병원에 실려 간 마이크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지지만 심장이식 수술 외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정규직 직원으로 가입되었던 존의 의료보험이 아들의 의료비를 커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규직이지만 급여가 시급제로 바뀌면서 보험 커버 내용이 바뀌었는데 이제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엔 수 백 건의 심장이식 수술을 성공시킨 최고의 심장외과 의사가 있다. 마이크도 심장공여자를 만나 수술만 할 수 있다면 꺼져 가는 생명의 불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돈이 없어 심장이식 수술 대기자 명단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25만 불의 수술료와 그 이전에 대기자 명단에 오르기 위한 7만 5천불 보증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들에게 심장을 주기 위해 자살을 택하는 존

 

존에겐 더 이상 방법이 없다. 그가 마지막 선택을 감행한다. 병원을 점거해 병원의 의료진과 환자를 인질로 삼아 아들의 심장수술을 성공시키는 것. 이 무모한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인질극은 곧 전국적으로 생방송이 된다.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 자세한 내용은 영화를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이곳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두 번째 내용,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존은 심장공여자가 없는 상태에서 수술도 못해보고 죽어가는 아들을 볼 수가 없다.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의료진에게 요구한다. 자신의 심장을 떼어 내 아들에게 이식하라고.


존은 심장을 내어주기 위해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하면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면회한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마이크, 나는 늘 너와 같이 있단다. 엄마 말을 잘 들어라. 엄마는 네게 가장 좋은 친구니. 앞으로 여자 친구를 사귈 것이다. 그 때 여자 친구를 공주님처럼 대하거라.” 여기까지 들어도 눈물이 나오는데, 다음 말에선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아들아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라.”

존은 권총을 들어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과연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마이크의 수술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의 첫 장면, 어느 여인이 호젓한 산길을 내려가다가 상대차선에서 오는 트럭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만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 여인이 나온다. 그녀는 죽었지만 그녀의 장기는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 그 대상이 누가 될까?


영화 마무리는 법정에서의 재판이다. 존 큐가 병원인질 사건으로 배심원들의 평결을 기다리고 있다. 배심원들은 그에게 어떤 평결을 내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