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늘을 걷는 남자>

박찬운 교수 2020. 10. 9. 20:43

 

 

 

가슴 속에 꿈을 품고 사는 리얼리스트! 내가 지향하는 인간형이다. 꿈이 없는 현실주의자는 강퍅하다. 그에게서 미래를 기대할 순 없다. 현실이란 땅에 발을 딛고 살지 못하는 몽상가는 공허하다. 그에게서 삶의 변화를 기대할 순 없다.


이런 지향 때문인지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영화는 현실에 바탕을 둔 꿈을 그린 영화다. 아무리 영상이 아름답고 스토리가 멋져도 그것이 허구에 불과하다면 감동은 깊지 못하다. 그런데 오금을 저리게 하는 영상이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고 생각하면 감동은 극에 달한다.


인간의 위대함을 그린 영화는 많다. 고대 이집트의 찬란한 문명, 고대 기술문명의 총화 로마인 이야기,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의 고대문명, 물의 도시 베네치아 이야기... 그런 것들을 그린 영화는 인간의 꿈을 실현시킨 역사적 실재를 소재로 했으니, 잠시나마 관객인 나를 위대한 인간으로 만든다.


그뿐이 아니다. 에베레스트를 산소통 없이 오르거나 천길만길 수직 암반을 기어오르는 등정가들, 사고로 전신마비의 장애를 가졌지만 피나는 재활훈련으로 다시 일어선 인간승리의 스포츠맨...이런 이야기도 나를 흥분시킨다. 그것은 그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눈앞에서 분명하게 실재했던 ‘어떤 사람’의 행위인지라, 감정이 조금이라도 이입된다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위대함을 그린 영화 중엔 극한의 용기와 담력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인간은 얼마나 용기가 있을까? 인간은 얼마나 담대함을 갖고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을까?

 

새벽 6시 뉴욕시민들이 출근을 시작하는 시각 펠리페의 고공 외줄타기가 시작되었다.

 

2015년 로버트 저메키스가 메가폰을 잡은 <하늘을 걷는 남자>(The Walk). 이 영화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줄타기 꾼 펠리페 페팃(조셉 고든 레빗)이 1974년 당시 세계 최고층(South Tower 415미터, North Tower 417미터)인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 월드 트레이드 센터(9.11 테러로 사라진 그 빌딩!) 맨 꼭대기를 외줄로 연결하고 안전장비 없이 건넌 것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펠리페와 스승 파파 루디

 

펠리페는 어릴 때 체코 출신 줄타기의 명인 파파 루디(빈 킹슬리)의 외줄타기를 보고 꿈을 꾼다. 외줄로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을 걷겠다고. 필립에게 외줄타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진정한 예술이었다.

고공 외줄타기는 완벽한 예술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튼튼한 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양쪽 지지대에 완전하게 조여야 한다. 그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외줄타기 예술가와 한 팀을 이루는 백 프로 신뢰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

 

맨해튼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1973-2001)(사진 위키피디아)

 

펠리페는 어린 시절 파파 루디에게 줄타기를 사사하고 파리의 거리 곡예를 거쳐 파트너 애니(샬롯 르본)와 함께 뉴욕으로 날아 와 꿈에 도전한다. 여기에 몇 명의 친구들, 영화엔 공범자로 지칭되는 친구들이 모여든다.

 

애인 애니와 맨해튼 쌍동이 건물 외줄타기를 꿈꾼다

 

이 영화는 세상 가장 높은 빌딩에서 외줄타기를 한 남자의 기상천외의 기술을 보여주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인간의 꿈과 그것을 실현하는 용기와 담력을 짜릿한 영상으로 선사하며 인간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한다. 조금만 감정을 이입해 이 영화를 보면 어떤 관객이라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세상의 어떤 정부가 이 같이 무모한 이벤트를 허가하랴. 필리페와 그의 친구들이 기획한 이 고공 외줄타기는 불법일 수밖에 없었다. 필리페와 공범 친구들은 야음을 틈타 쌍둥이 빌딩에 잠입해 경비원의 눈을 피해 두 빌딩 옥상을 줄로 연결한다. 그리고 새벽 6시 뉴욕시민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필리페는 평형을 유지하는 봉만을 두 손에 잡고 외줄타기를 시작한다.

 

출동한 경찰관 앞에서 남과 북을 넘나드는 펠리페

 

400미터 상공에서 누워 있는 펠리페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손바닥 심지어 발바닥마저 땀이 난다. 아찔한 생각에 잠시 눈을 감기도 한다.(내가 아이맥스 관에 가서 3D 영화로 보았다면 아마 졸도했을지도 모른다.) 

어쩜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어쩜 저런 인간이 우리 중에 나타날 수 있을까. 도대체 저 사람의 용기와 담력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는 남과 북을 연결하는 외줄을 한 번만 건너는 것이 아니다. 출동한 경찰관들 앞에서 두 번 세 번 외줄을 타면서 뉴욕시민들에게 예를 표한다.

이 순간 관객은 완벽한 행위예술이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구름 위를 걷는 펠리페

 

맨해튼 쌍둥이 빌딩은 2001년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그로부터 14년 후... 그럼에도 우린 이 빌딩의 위용을 유감없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상공에서 벌어지는 전무후무한 곡예까지 볼 수 있다.

포레스트 검프로 아카데미 감독상(1995)을 받은 로버트 저메키스의 브레스테이킹(breathtaking)한 연출과 외줄타기 명인의 기술을 완벽하게 소화한 조셉 고든 레빗의 명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0점 만점에 9.9를 줄 만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