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수준급의 한국 범죄 스릴러

박찬운 교수 2020. 10. 2. 09:01

추석 연휴 기간 집콕하면서 줄 참 영화를 보고있다. 그동안 주로 양화를 보다가 이번엔 한국영화로 방향을 바꾸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혹시 한국영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나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의도는 없었지만 그런 문화적 사대주의가 조금은 있었을지 모른다. 최근 10여 편 이상의 한국영화를 보았는데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스케일은 크지 않지만 구성이 탄탄하다. 특히 범죄 스릴러는 미국이나 유럽의 같은 유와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본 영화를 죄다 감상평으로 남겨 놓고 싶지만 시간상 그럴 수 없어, 몇 편에 한해, 제목과 간단한 줄거리를 여기 정리해 놓는다. 이렇게라도 해놓지 않으면 후일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것 같다. 그게 자연스런 현상인지 아니면 나의 기억력이 급속도로 쇠퇴한다는 증거인지...여하튼 무조건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침묵(2017)

 
 

정지우 감독의 2017년 개봉작 <침묵>

 
 
재력가 임태산(최민식)은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 그의 딸 미라(이수경)는 아빠를 닮았는지 버릇없기론 안하무인이지만 태산은 엄마 없이 큰 미라를 끔찍하게 사랑한다. 태산의 애인 유명가수 유나(이하늬)는 피아제 시계를 선물 받고 좋아하나 바로 그날 유나를 만나러 나간 뒤 차에 치여 죽는다. 미라는 술에 취해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범죄를 부인하고 태산은 이런 딸의 무죄를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쓴다.

미라의 변호사 최희정(박신혜)과 검사 동성식(박해준)은 정의감이 넘치는 열혈 법률가. 이들은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히지만 임태산은 다른 방법으로 미라를 법정에서 구해낸다. 자신의 비서를 진범으로 오인시키기도 하지만, 결국 변호사도 검사도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미라를 범정에서 빼낸다. 사건 현장의 cctv 영상을 교묘한 방법으로 조작했던 것. 미라의 재판 도중 태국으로 간 임태산은 사건현장과 똑 같은 셋트장을 만든 다음 대역을 구해 미라가 아닌 자신이 유나를 치는 장면을 재현하고, 이를 cctv 영상으로 만들어, 극적인 방법으로 법정에 동영상을 제출했던 것. 딸을 석방시키고 자신이 진범이 되다니!

이 영화가 범죄 스릴러라고 보았지만 알고 보니, 범죄를 소재로 한 부정애를 그린 법정 영화다. 끝까지 보면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2. 살인자의 기억법(2017)

 

원신연 감독의 2017년 개봉작

 
두 시간 동안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될 한국 최고의 범죄영화! 소설가 김영하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지만 원작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 한다. 이 영화는 현실과 망상의 이미지가 혼재하기 때문에 감상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과거 희대의 연쇄살인범 김병수(설경구)는 동물병원 의사로 딸 은희(설현)를 키우면서 살지만, 언제부터인지 치매로 고생한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 딸은 녹음기를 사주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녹음기에 녹음하도록 한다.

어느 날 안개 낀 도로를 운전하다 앞차를 들이박는데 아무래도 앞차 운전자 민태주(김남길)가 이상하다. 앞 차 트렁크에서 피가 흐르고, 무언가 들어 있는 가방을 발견한 병수, 태주는 죽은 노루라고 말하지만, 살인자는 살인자를 알아보는 법. 영화는 이 때부터 과거의 연쇄살인범 병수와 현재의 연쇄살인범 태주 두 사람을 축으로 돌아간다. 은희는 태주를 좋아하고 병수는 딸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민태주를 쫓는다. 병수는 여러 방법으로 태주가 연쇄살인범이라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현직 경찰관인 태주를 의심하지 않는다.

과연 병수는 태주를 잡을 수 있을까? 태주는 병수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범죄를 모두 병수가 한 것으로 몰아가 완전범죄를 이룰 수 있을까? 은희는 태주의 새로운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결국 태주는 병수에 의해 죽지만, 맨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의문이다. 터널 앞 기찻길에 선 병수는 이렇게 외친다. “민태주는 아직 살아 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진짜 태주가 살아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제까지의 모든 연쇄살인은 태주가 아닌 병수 자신에 의해 일어난 것이고, 태주는 병수가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이란 말인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설경구의 연기는 거의 신들린 듯하다. 물론 김남길의 연기도 못지않다. 이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도 이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
 

3. 사냥(2016)

 

이우철 감독의 2016년 개봉작

 
이런 영화를 소위 액션 스릴러라 할 것이다. 무진이란 땅 외딴 산속에서 인간 사냥이 이루어진다. 아들을 탄광사고로 잃은 할머니가 매일 산에 오르다가 금맥을 발견하고, 이를 경찰관 동근에게 알려주지만, 동근(조진웅)은 이 금맥으로 팔자를 고치려고 수상한 엽사들을 끌어들인다.

이들은 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땅주인인 할머니를 죽이는데, 이 광경을 우연히 탄광사고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던 기성(안성기)이 목격한다. 이때로부터 기성과 동근 일행의 인간사냥이 시작된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광부출신의 기성은 기가 막히게 산을 타면서 동글 일행을 하나하나 해치운다. 마지막 남은 이는 기성과 동근, 힘을 다한 기성은 동근에 의해 숨을 거두지만, 동근도 같은 경찰서의 손반장(손현주)의 총에 죽임을 당한다.
 

4. 반드시 잡는다(2017)

 

김홍선 감독의 2017년 개봉작

 
백윤식이나 성동일이 나오는 스릴러는 전통의 그것이라도 뭔가 다를 것이다. 사람 죽이는 영화니 무섭기야 하지만 영화 곳곳에서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어떤 마을에서 30년 전 연쇄살인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또 다시 시작된다.

이 동네의 터줏대감 심덕수(백윤식)은 형사출신 박평달(성동일)은 함께 범인 체포에 나섰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과연 늙다리 두 사람이 신출귀몰 연쇄살인범을 잡을 수 있을까? 도대체 그 놈이 누구일까? 마지막까지 이 영화를 보면 알게 되지만 범인은 의외의 인물, 전혀 범인 같지 않은 인물... 겉으로 보면 인심 좋기로 소문났고, 장애를 가진 부인을 한없는 사랑하는 인물...그런 인물이 사람을 잡아다가 죽이고 토막을 낸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덕수씨와 평달씨가 그 놈을 추적해, 마침내 목적을 이룬다.
 

5. 악녀(2017)

 

정병길 밤독의 2017년 개봉작

 
김옥빈이란 여배우, 나로선 익숙치 않은 얼굴인데, 연기는 믿을만하다고 하니 호기심에서 시작 버튼을 눌렀다. 이런 것을 액션 스릴러라고 하나? 영화 곳곳에서 혈투가 벌어진다. 킬러들이 나오니 사람 죽는 것은 다반사. 숙희(김옥빈)는 연변출신의 킬러.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에게 복수를 벼르다가 조직폭력집단의 두목 이중상(신하균)과 결혼하지만 신혼여행에서 남편은 죽는다. 숙희는 국가비밀조직에 들어와 훈련을 받고 그 사이 중상의 아이를 낳는다.

킬러로 키워진 숙희는 미션을 부여받고 세상으로 나가는데, 첫날부터 옆집 남자(국가비밀조직으로부터 숙희를 감시하도록 임무를 부여받은 요원) 현수(성준)의 구애를 받는다. 둘은 점점 가까워져 드디어 결혼을 하는데(물론 이것도 현수에겐 미션의 한 과정), 결혼식 당일 식장에서 비밀조직은 숙희에게 한 사람을 저격하도록 명령한다. 화장실에서 저격용 총을 찾아 내 환기구멍으로 암살대상자를 보니, 저 사람이 누구인가? 죽었다던 이중상? 중상은 살아 있었다. 그리고 더욱 놀랄만한 사실은 중상이 아버지를 죽인 바로 그 원수다.

비밀조직은 숙희를 통해 중상을 제거하려고 하고, 중상은 숙희를 찾아내 죽이려 한다. 현수는 숙희 딸을 보호하기 안간힘을 쓰나 중상이 보낸 조직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제 남은 것은 숙희의 보복, 중상이 아버지와 사랑하는 남자 현수 그리고 딸을 죽였다. 중상과 숙희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것.

마지막 장면은 달리는 차를 추적하여 차의 뒤 유리를 부수고 내부로 들어가 결투를 벌인다. 중상의 조직원을 모두 제거하고 숙희는 중상과 일대일의 상황을 만든다. 과연 이들의 싸움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
 

6. 숨바꼭질(2013)

 

허정 감독의 2013년 개봉작

 
굉장히 쇼킹한 소재에 기반한 범죄 스릴러! 남의 집에 숨어사는 사람들이 있다. 빈집에 들어가 자신이 집주인이 된 것처럼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때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까지 숨어 들어가 후미진 곳에 몸을 숨기고 주인이 집을 나갔을 때만 몸을 움직이면서 산다.

영화의 주인공 성수(손현주)는 예쁜 아내와 귀여운 딸 아들을 두고 대형 아파트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사업가. 어느 날 형이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실에서 전화 한 통이 온다. 형이 없어진지 몇 달이 되었다고. 평생 형을 생각하면 괴로운 과거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형네로 입양된 성수, 어느 날 형이 성추행에 연루되어 경찰관이 찾아와 물어본다. 형이 그 짓을 했느냐고. 유일한 목격자 성수가 부인하면 형에 대한 오해는 끝나지만, 이날 성수는 뜻밖에도 형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형은 달려들어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오열하고... 이런 과거로 성수는 집안의 장남 노릇을 하고 재산을 물려받지만 형은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면서 인생을 소비하고...


이런 형이지만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성수는 형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 나선다. 을씨년스럽고 갑자기 뭐가 튀어나올 것 같은 아파트, 사람들의 표정도 어둡고 공격적이다. 형의 방을 둘러보다가 각 방 앞에 써진 부호(예컨대 ㅁ1ㅇ1⧍2)를 발견...이것이 누군가에 의해 써진 각 호수에 사는 사람들의 정보임을 알아낸다. 그 아파트에서 어린 딸 하나를 키우며 살아가는 여자 주희(문정희)를 만나는데, 주희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집을 계속 보고 있다고 하소연 한다.

집에 돌아 와 악몽에 시달리는 성수... 어느 날 아파트 현관 앞에 형이 사는 아파트에서 본 괴상한 기호를 발견한다. 아, 이 아파트도 위험하다. 성수는 이 모든 현상이 자신의 형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악몽에 시달린다. 헬멧을 쓴 어떤 사람이 성수의 아파트에 찾아와 위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하고, 형의 아파트에서 그 사람을 발견해 서로 결투를 벌이지만 끝내 놓치고 만다. 성수의 아내는 이 공포스런 상황에서 도저히 살 수 없음을 느끼고 미국 친정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쯤해서 숨바꼭질의 주인공이 얼굴을 드러낸다. 그는 형이 아닌 옆집 여자 주희. 그녀는 형을 살해해 벽장 속에 넣어 두었고, 옆집 아가씨도 살해한 뒤 냉장고 속에 둔 엽기적 살인범. 그런 주희가 이제 아파트를 옮겨 성수의 집을 차지한 것이다. 정체를 안 성수는 주희와 몸싸움을 하고 결국 주희는 불에 타 죽는다. 이렇게 영화는 끝나지만 주희의 딸이 안 보인다. 성수의 아파트 어느 수납공간 속에서 아무 말 없이 밖을 응시하는 어린 아이... 그게 누구인가? 또 다른 숨바꼭질이 시작되는가?
 

7. 악의 연대기(2015)

 

허정 감독의 2015년 개봉작

 
내가 본 한국 범죄 스릴러 중 최고의 작품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No doubt! 영화의 주인공격 최반장(최창식)으로 나오는 손현주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대통령상에 빛나는 강남경찰서 최반장은 이제 곧 승진심사에서 경정으로 승진하는 것을 예약해 놓은 유능한 경찰관. 서장은 최반장의 든든한 후원자고 후배 형사들은 손반장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그런데, 최반장은 진짜 제대로 된 경찰일까? 잘 보면 결코 좋은 경찰관이 아니다. 자신이 상을 받은 날 후배 형사에게 두툼한 상품권 박스를 통째로 준다. 저것은 어디에서 왔을까? 분명 뇌물을 받은 것이다. 후배형사들에게 하는 말도 그렇다. 어떤 폭력배를 적당히 봐주자는 말을 서슴없이 말한다.

최반장이 후배 형사들과 거하게 술판을 벌이고 정성스런 선물 하나를 받는다. 넥타이 핀. 야심한 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가 이상한 방향으로 간다. 차를 세웠으나 운전자는 갑자기 킬러로 바뀐다. 자신은 심부름 받은 대로 최반장을 죽여야겠다는 것. 그러나 수많은 조직폭력배를 잡아온 손반장을 이길 수는 없다. 격투가 일어나고 결국 킬러는 최반장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조금만 있으면 승진심사에서 승진결정이 있을 텐데...이런 사건이 일어나다니...손반장은 112에 신고를 하지 않고 사건을 덮기로 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경찰서 앞 크레인에 사람 하나가 매달려 있다. 바로 최반장이 죽인 그 킬러. 누군가가 조정을 하고 있다. 누굴일까?
사건은 후배 형사들에 의해 좁혀오고 곧 최반장이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확정될 것이다. 이 때 김진규(최다니엘)가 나타나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을 한다. 진규...그가 누구인가? 최반장은 과거를 회상하며 진규의 뒤를 캔다. 그 결과 쇼킹한 과거가 나타난다.

아주 오래 전에 놀음판에서 12명이나 되는 놀음꾼들이 집단사망을 했다. 청산가리를 탄 음료를 먹고 죽은 것이다. 이 사건의 범인은 장애인이었던 놀음판 심부름꾼. 진규는 이 사람의 아들이었다. 경찰은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를 데려가는데 진규는 울면서 아버지는 죄가 없고 자신이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찰은 그것을 믿어주지 않고 아버지를 연행하고 아버지는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다. 바로 이 진규가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을 찾아내 하나씩 죽이고 있었던 것. 이제 남은 경찰관은 최반장과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서장.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김진규를 잡아둘 수가 없어 석방한 사이 서장에 대한 폭탄테러가 일어난다.


최반장은 김진규를 찾아 나섰고 그가 운영하는 동성애 클럽에서 만나 총을 겨눈다. 그런데 손반장이 알았던 김진규는 이 사람이 아니다. 이 자는 김진규의 이름을 도용한 진짜 진규의 동성애 친구...그럼 그 진규, 그 진짜 살인범은 어디에 있는가. 아 그놈이 자신의 팀에서 손반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그 신출 동재(박서준)? 그렇다면 아이들이 위험하다. 동재는 손반장 집에까지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좋아해 왔으니... 손반장은 동재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달리고...그 사이 동재의 정체를 안 오형사(마동석)는 동재와 결투를 벌이다가 동재에게 당한다.

마지막 장면, 최반장과 동재가 만났다. 서로 권총을 겨누지만 쏘진 못한다. 결국 최반장은 총을 하늘로 향해 쏜 다음 경찰들에 의해 체포되고, 동재는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아 생을 마감한다.


동재의 삶. 어린 시절 청산가리로 사람을 죽이고...아버지가 자신의 죄를 뒤집어 쓰고 죽고...이 모든 것이 경찰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관련 경찰관을 죽이겠다고 결심... 경찰관이 된 다음 친구와 함께 복수극을 시작... 결국 동재는 아버지를 사법 살인하는 데 기여한 최반장과 일대일이 되지만... 끝내 자살로 마감한다. 한 인간에 대한 악의 고리는 여기서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