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률전문가들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에 인도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와 집단살해죄(Genocide, 제노사이드)란 범죄가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법은 있지만 한 번도 이 범죄가 우리 사회에서 문제되어 적용된 예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우리나라엔 이런 범죄를 규율하고 있는 법률이 있다. 이 법률에 정한 범죄는 일반적인 형사범죄와 달리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범죄가 발생한 후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처벌이 가능하다. 또한 이 법률에서 정한 범죄에 대해선 보편적 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이 있어 우리나라나 우리 국민과 전혀 관계없는 나라에서 발생해도 우리나라 법정에서 처벌이 가능하다.
이 법률이 바로 2007년 제정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다. 만일 이 법률이 일찍이 제정되었더라면 YS 정권 하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 등을 이 법률로 처벌했을지 모른다. 당시 전두환 등은 공소시효가 소멸되었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처벌을 완강히 저지하고자 했다. 결국 특별법을 만들어 공소시효 문제를 피해 처벌은 했지만 그 법률의 위헌논쟁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우리 역사에 큰 상처를 준 4.3 사건, 한국 전쟁 중에 발생한 수많은 양민학살 사건도 마찬가지다. 모두 국가에 의해 자행된 살육행위로 ‘인도에 반한 죄’의 범주에 속하지만, 어느 한 사건도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한 적이 없고, 수십 년 시간을 보냈다.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바로 저 법률이 정부 수립 즉시 제정되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는 대로, 책임자가 살아 있는 한, 엄한 처벌에서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땠을까? 그랬다면 대한민국의 정의는 어땠을까? 우리 사회가 지금과는 사뭇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집단살해죄) ① 국민적·인종적·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 자체를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목적으로 그 집단의 구성원을 살해한 사람은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제9조((인도에 반한 죄)) ① 민간인 주민을 공격하려는 국가 또는 단체·기관의 정책과 관련하여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으로 사람을 살해한 사람은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민간인 주민을 공격하려는 국가 또는 단체·기관의 정책과 관련하여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으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사람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1. 식량과 의약품에 대한 주민의 접근을 박탈하는 등 일부 주민의 말살을 불러올 생활조건을 고의적으로 부과하는 행위 2. 사람을 노예화하는 행위 3. 국제법규를 위반하여 강제로 주민을 그 적법한 주거지에서 추방하거나 이주하도록 하는 행위 4. 국제법규를 위반하여 사람을 감금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 5. 자기의 구금 또는 통제하에 있는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중대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주어 고문하는 행위 6. 강간, 성적 노예화, 강제매춘, 강제임신, 강제불임 또는 이와 유사한 중대한 성적 폭력 행위 ...... |
2.
인도에 반한 죄와 제노사이드는 우리가 생각해 낸 범죄유형이 아니다. 이것은 2차 대전 후 국제전범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새롭게 고안한 범죄유형이다. 무릇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해 어떻게 처벌하느냐의 문제는 원칙적으로 한 국가의 내부문제이다. 그것이 사법주권의 핵심이다. 그러나 어떤 범죄는 각 국가의 내부문제로만 맡겨둘 수가 없다. 인류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인권침해가 일어나도 책임자가 버젓하게 천수를 누리며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경우는 사법체계가 완전히 파괴되어 형사처벌을 바랄 수 없는 나라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부득이 국제사회가 그들 범죄자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다. 이 때 두 가지 방법이 구상되는데, 하나는 국제사회가 국제법정을 만들어 직접 처벌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각 국가가 특정의 범죄에 대해선 반드시 처벌할 수 있도록 원칙을 만드는 것이다. 단 이런 범죄는 일반범죄일 수가 없다. 국제사회가 국내 사법주권을 제한하면서까지 개입하는 것이므로 해당범죄는 최소범위로 축소되어야 한다. 말 그대로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 극악무도한 반인륜적 범죄이여야만 한다. 인도에 반한 죄와 제노사이드는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 국제범죄이다.
우리나라가 이런 국제범죄를 국내에서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은 국제형사재판소 관련 조약(로마규정이라고 불림)에 가입한 뒤 그 이행법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바로 그 이행법률이다.
3.
이런 법률문제를 다루는 영역이 국제법, 그 중에서도 국제형사법 분야다. 나는 이 분야 연구로 학위를 취득했고, 그 덕에 위에서 말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 처벌법 제정 과정에도 일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저들 범죄가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저 저들 범죄는 2차 대전 이후 나치 전범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도입된 범죄유형 정도로 간단하게 이해한 정도였다. 나는 그저 드라이하게 국제사회가 만든 제도를 법 규정과 그 해설서로만 공부했던 것이다. 그런 범죄유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사람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왔는지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었다. 이렇게 내 법학의 수준은 피상적 수준이었다. 지금 그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4.
2주 전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신흥무관학교 교장 역임)의 외손자 정철승 변호사로부터 한 권의 책을 받았다. 그가 번역한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하는가>란 책이었다. 영국의 저명한 국제인권법 교수(University College London)이자 법정변호사(베리스터)인 필립 샌즈의 논픽션 East West Street –On the Origins of Genocide and Crimes against Humanity-를 번역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받고 저자의 약력을 훑어본 다음 서문을 빠르게 읽어보았다. 그 순간 이 책이야말로 내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 전공의 뿌리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책을 받고 나서 2주일, 공사다망한 상황에서도 강한 집념으로 새벽시간과 밤 시간을 이용해 읽어나갔다. 그것도 매우 꼼꼼하게. 오늘 600쪽이 넘는 책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필립 샌즈의 유튜브 강연을 시청하고 관련 자료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아직 국내에선 이렇다 할 북 리뷰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해외 북 리뷰 몇 개도 읽어 보았다. 내 머릿속은 이제 온통 필립 샌즈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 전달용 논픽션이 아니다. 이것은 한 가족의 눈물겨운 역사이고, 인간도살자의 기록이며, 두 전문가의 정의를 향한 학술적 열망이다. 어떻게 내 가슴을 떨리게 한 이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5.
우선 필립 샌즈부터 소개해야겠다. 그는 현재 런던 소재 UCL의 국제인권법 교수이고 90년대 이후 일어난 국제형사재판의 실무에 참여해 온 법정변호사다. 그의 외조부 레온의 가족들은 우크라이나의 리비우 출신인 바, 2차 대전 중 홀로코스트로 대부분 희생되었다. 하지만 전쟁 직전 비엔나에서 일하며 결혼했던 레온은 용케 살아남는다. 레온의 딸이자 저자의 어머니 루스 또한 비엔나에서 태어나 전쟁 중 파리로 보내어져 참화를 피한다. 루스는 후일 영국 남자와 결혼해 저자 샌즈를 낳았고(1960) 저자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 법률가의 길을 걷는다. 그가 대학에서 만난 스승이자 멘토가 국제법 교수 엘리후(엘리) 라우터파하트. 엘리는 20세기 최고의 국제법학자(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이며 국제사법재판소(ICJ) 판사를 지낸 아버지 허쉬 라우터파하트를 뒤이은 학자로 유명하며, 아버지 이름을 딴 케임브리지 대학 라우터파하트 국제법센터의 소장을 지낸 인물이다.
샌즈가 젊은 날 외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매우 단편적인 것이었다. 파리에 살던 레온과 리타를 가끔 찾았지만 집안 분위기는 언제나 어두웠고 외조부는 좀처럼 과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샌즈는 외조부와 조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집안 내력에 대해 묻지 못했다. 그러다가, 외조부와 조모가 세상을 뜨고 한참 뒤인 2010년 그는 리비우대학으로부터 초청을 받는다. 샌즈가 연구해온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한 죄에 관해 강연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리비우! 그곳은 외조부가 태어난 곳이며 홀로코스트의 중심이라는 것은 익히 아는 바다. 그렇지만 샌즈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샌즈는 이 기회를 이용, 외가의 내력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외조부 레온은 어떻게 젊은 시절 이곳에서 지냈으며, 어떻게 비엔나로 갔고, 어떻게 파리에서 살았는지, 레온의 형제 자매 그리고 이웃은 어떻게 전쟁 중 죽어갔는지...
그런데 리비우를 방문하면서 샌즈는 리비우란 도시가 자신의 외가의 참혹한 역사와 관계된 도시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곳은 자신이 연구해온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한 죄의 개념을 제공한 두 법률가의 도시이기도 했다. 제노사이드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라파엘 렘킨, 인도에 반한 죄를 주장해 뉴른베르크 재판에서 전범들을 처벌케 한 허쉬 라우터파하트, 이 두 사람이 같은 시기 리비우 대학에서 공부한 선후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샌즈는 이 사실을 알고 이 둘을 추적해 들어간다. 수십 년간 공부해 온 두 범죄가 자신의 외가 고향인 리비우를 배경으로 두 인물에 의해 탄생했다니...얼마나 살 떨리는 기분이었을까.
6.
이 책의 주 무대인 리비우란 매우 독특한 도시다. 유럽의 많은 도시가 인접국가로 인해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국가 간 전쟁 등으로 부침을 해왔지만 이 도시만큼 짧은 기간 국가 간 대결의 희생양이 된 도시도 찾기 힘들 것이다. 20세기 초 이 도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가, 즉 합스부르크 왕가의 도시로 렘베르크로 불렸다. 그러다가 1차 세계대전을 맞아 신생 폴란드의 도시 로포프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소련이 진주하자 리보프로, 독일군이 접수한 뒤엔 렘베르크로, 몇 년 후 독일 패전함으로써 우크라이나의 리비우가 된다. 그러니 렘베르크, 로포프, 리보프, 리비우는 다른 이름이지만 같은 도시를 말한다.
이 책의 주인공 레온, 라우터파하트, 렘킨은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거나 이곳으로 옮겨와 공부했던 사람들이다. 샌즈의 외증조모와 라우터파하트 그리고 렘킨은 리비우의 이스트 웨스트 스트리트에서 같은 시기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저자도, 저자의 스승이었던 라우터파하트의 아들 엘리도 전혀 알지 못했다.
7.
샌즈가 주목한 한 인물이 더 있다. 2차 대전 중 폴란드의 도살자로 불린 독일 총독 한스 프랑크. 그는 바바리아 출신의 법률가로 히틀러의 개인 변호사이기도 했다. 프랑크는 폴란드 총독으로 있는 중 이 책의 주 무대인 렘베르크의 통치자였다. 그는 폴란드의 주요도시인 크라쿠프, 바르샤바, 렘베르크 등지에 유대인 게토를 만들어 유대인들을 감금했고, 이어 폴란드 각지에 산재한 강제수용소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간 장본인이다. 그렇게 죽어간 유대인의 수가 얼마나 될까, 몇 십만 아니 몇 백만....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유대인들이 그가 서명한 법령에 의해 죽어갔다. 그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이렇게 시인했다. “천년이 지난다고 해도 독일의 죄는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9.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한 인물은 외조부 레온과 국제법에서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한 죄를 창시한 두 명의 법률가이지만 레온과 관련된 흥미로운 몇 사람이 더 나온다. 한 사람은 미스 틸니 또 다른 사람은 린델펠트. 사실 이들에 대해 레온이나 리타가 생전에 설명한 바가 전혀 없다. 남아 있는 것은 빛 바랜 사진 몇 장과 편지. 그럼에도 샌즈는 마치 탐정과 같이 그들이 누구인지 찾아내 퍼즐 같은 가족사를 조금씩 채워나간다. 저자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가족사에서 몇 가지 의문을 가졌었다. 왜 신혼의 레온과 리타는 비엔나에서 헤어져 레온 혼자 파리로 오게 되었을까? 왜 몇 달 뒤 리타는 어머니 루스와 함께 오지 않고 혼자 비엔나로 보내졌을까? 루스를 레온에게 데려다 준 이는 누구였을까?
이런 호기심을 갖고 저자는 의문들을 풀어간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어머니 루스를 비엔나에서 데리고 파리로 간 인물이 미스 틸니로 밝혀진다. 샌즈가 이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정보는 레온의 서류더미에서 발견한 “미스 E.M 틸니, 영국 노리치 블루벨 로드 메뉴카”라고 하는 종이쪽 하나였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것 하나만으로 미스 틸니가 당시 선교사로서 인간 사냥꾼 나치의 손에서 여러 사람을 구한 의인임을 밝혀낸다.
또 한 사람 린덴펠트, 이 사람은 레온과 리타가 비엔나에서 헤어지게 된 이유를 제공한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리타가 남긴 사진 몇 장 그리고 편지 봉투에 갈겨써진 이름. 샌즈는 이것만 가지고 마침내 이 사람의 이름을 알아내고 그 후손을 찾아낸다. 그것도 비엔나가 아닌 미국에서. 그리고 몇 가지 강력한 추정을 한다. 아마도 이 사람은 전쟁 기간 중 레온과 리타 사이에 끼어든 남자였을 것이라고, 그래서 레온은 비엔나를 홀로 떠나 파리로 갔고, 그 후 몇 달 후 리타는 남편에게 딸을 보냈을 것이라고....
10.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은 리비우에서 만난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같은 법대에서, 같은 교수로부터 배운 선후배다. 이들이 생전에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며 서로를 이야기한 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라우터파하트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영국 검사팀의 일원으로 법률적 이론을 주도하면서 인도에 반한 죄로 피고인들의 유죄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렘킨은 미국 검사팀을 도우면서 재판과정에서 피고인들의 행위를 제노사이드로 판단되길 바라며 동분서주한다. 1946년 10월 선고가 되는 날 라우터파하트는 뉘른베르크 법정 600호실에서 선고를 기다린다. 이 날 렘킨도 법정에 오려고 했지만 몸이 아파 오지 못했다. 만약 왔다면 두 명의 렘베르크 출신 법률가와 독일 법률가이자 폴란드의 도살자가 한 공간에서 운명적으로 조우했을 것이다.
이 책 전체의 한 주제이지만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의 정의실현 방법은 달랐다. 두 사람은 모두 가족들이 홀로코스트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그 책임을 묻는 방법은 같으면서도 달랐다. 두 사람은 모두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이 고전적인 국가책임면책 이론으로 귀결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피고인들은 법정에서 자신들의 행위가 인정된다고 해도, 그것은 국가의 행위이므로 국제법 원칙인 국가면책 이론에 따라 처벌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가라는 이름 뒤에 숨어 만행을 저지른 개인을 찾아내 형사처벌함으로써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체적 방법론에선 상이한 길을 걸었다.
라우터파하트는 행위자의 개인에 대한 피해에 초점을 둔 반면, 렘킨은 행위자의 집단에 대한 피해에 초점을 두었다. 그것이 바로 인도에 반한 죄와 제노사이드로의 귀결이다. 비슷한 결과를 낳았지만 이 둘은 행위자를 처벌할 때 검사의 입증책임이 달라진다. 인도에 반한 죄는 개인의 피해 그 자체를 입증하면 끝나지만 제노사이드는 집단의 절멸을 목표하는 그 의도를 입증해야 한다. 제노사이드는 집단을 공격하는 범죄로 인식되기 때문에 집단과 집단의 갈등을 초래한다. 인도에 반한 죄는 독일인이 유태인을 집단적으로 살상했어도 그것은 특정 독일인의 특정 유대인에 대한 범죄다. 그러나 제노사이드로 홀로코스트를 처벌하면 그것은 독일인 전체가 유대인 전체를 살상한 행위로 인식되기 쉽다. 그 결과는 또 다른 집단 간의 갈등을 낳고... 그것은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라우터파하트는 그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끝까지 제노사이드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11.
뉘른베르크 재판은 인류역사상 최초의 국제형사재판이었다. 국가 간 전쟁이 일어나 참화가 발생하고 형언할 수 없는 만행이 일어났지만 국제사회는 단 한 번도 그 책임자를 처벌하지 못했다. 국제사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그 전철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든다. 그게 바로 뉘른베르크 국제형사재판이다. 24명의 나치 책임자를 기소하고 처벌했으며 나머지 범죄행위자는 각 국가의 국내법으로 처벌토록 했다. 이 과정에서 두 명의 렘베르크 법률가가 활약했던 것이다.
렘킨의 역할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끝나지 않았다. 솔직히 제노사이드 개념은 이 재판에서 크게 부각되진 못했다. 인도에 반한 범죄는 뉘른베르크 재판소 근거규정(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Charter)에 분명하게 규정되었지만 제노사이드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개념은 전후 국제범죄로서 분명하게 인정을 받는다. 유엔은 1948년 제노사이드방지협약을 만듦으로써 렘킨의 바람을 국제적으로 승인한다. 나아가 그 후 만들어지는 각종 국사형사법에서 제노사이드는 국제범죄로서의 당당한 위상을 확보한다.
라우터파하트의 역할도 뉘른베르크 재판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국제법에서의 개인책임과 개인에 대한 권리보호에 역점을 두었다. 이것은 국제법의 주체는 오로지 국가라는 생각에서 개인도 국제법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국제법이 개인의 인권장전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고(그 결과로 나온 것이 그의 저작 ‘국제인권장전’ An International Bill of Rights of Man 임), 그것이 인권보장의 굳건한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길 염원했다. 이런 라우터파하트의 꿈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꿈은 전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과 각종 국제인권조약으로 이어졌다. 특히 유럽에선 유럽인권협약이 체결되고 유럽인권재판소가 탄생함으로써 그의 꿈은 보다 단단한 현실이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라우터파하트가 죽은 지 40년이 되지 않아, 국제사회는 몇 번의 임시 국제형사법정(1990년대 과거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일어난 만행에 대해 유엔이 만든 ICTY와 같은 시기 일어난 르완다 사태의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만든 ICTR)을 만들었고, 이것은 상설적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한 로마규정이 체결되고(대한민국도 가입), 2002년 드디어 헤이그에 재판소가 문을 열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반드시 처벌해야 할 범죄로 렘킨과 라우터파하트가 제안한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한 죄가 포함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2.
이 책 리뷰를 끝내면서 내게 충격적인 감동을 준 한 부분을 소개한다. 그것은 이 책 마지막 장에 나오는 장면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과정인 2014년 한 가지 기획을 한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식들이 만나는 행사다.(이것은 BBC에서 My Nazi legacy: What our fathers did라는 타이틀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2015년 방송되었음) 피해자의 자손으로 저자가, 가해자의 자식으로 한스 프랑크의 아들 니클라스 그리고 렘베르크를 직접적으로 통치한 오토 폰 베이터의 아들 호르스트 3명이 만난 것이다. 이들은 홀로코스트의 현장을 방문하는 데 그 한 곳이 뉘른베르크 법정이다. 거기에서 니클라스는 이런 말을 한다. .
“저는 사형제도에 반대합니다.” “다만 제 아버지 경우만 제외하고요” ... 니클라스는 그의 재킷 가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종이들을 꺼냈다. “그는 범죄자였습니다.” 그는 조용히 말하며 종이 중에서 낡고 바랜 작은 흑백사진을 골라냈다. ... 교수형이 집행되고 몇 분 후 촬영한 생명이 없는 그의 아버지 시신이 간이침대에 뉘어져 있었다. 그의 가슴에 라벨이 놓여져 있었다. “매일 이것을 봅니다.” 니클라스가 말했다. “그가 죽었다는 것을 상기하고 확인하기 위해서요.”(546)
나는 이것이 전후 책임에 대한 독일인과 일본인의 극명한 차이라고 믿는다
13.
글을 맺으면서 두 가지가 아쉽다. 하나는 그동안 과문한 탓으로 이 책의 존재와 저자를 뒤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단 몇 분 인터넷만 검색해도 수없이 나오는 정보인데 나는 몰랐다. 만일 내가 이 저자와 이 책을 출간 즉시(2016년) 알았다면 나는 저자를 런던에서 만나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책이 나오는 해 나는 런던에서 6개월을 체류했고, 그것도 저자가 있는 UCL대학 법대 도서관을 매일같이 나가고 있었다. 나보다 두 살 위인 그에게 나 또한 호기심을 가득 안고 수없이 많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나는 한국 전쟁으로 외가가 절단 난 집안의 자손이니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는가. 한국 역사의 아픔을 전할 때 그도 분명 동병상련의 눈물을 흘렸으리라.
또 하나 아쉬움은 한국판의 제목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의 제목을 왜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하는가>로 했는지 모르겠다. 책 제목으로만 보면 독자들은 ‘정의론‘에 관한 책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 두 법률가의 살아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들을 묶어준 리비우의 한 공간, 이스트 웨스트 스트리트에서 살다가 나치의 만행으로 사라져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그것을 포착해 East West Street 를 제목으로, On the origins of Crimes Against Humanity and Genocide을 부제로 정했던 것이다. 만일 내게 한국식 제목을 부탁했다고 하면, 이렇게 제안했을 것이다. “(제목) 8번 이름이 바뀐 도시, 리비우 (부제)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한 죄의 기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책을 빠른 시간 내에, 큰 오류 없이, 번역한 정철승 변호사와 번역가 황문주 선생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두 분의 수고로 인해 이 시대에 꼭 읽어보아야 할 책 한 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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