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소 책을 많이 사지만 아무 책이나 사는 것은 아니다. 읽을 만한 책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사고 말았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낚인 것이다. 덕분에 나도 이 책 베스트셀러 만드는데 작은 도움을 주고 말았다. 이왕 샀으니 읽을 수밖에.
도대체 이 책이 왜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일까? 대학자(?)인 이영훈 교수와 그 사단의 학문적 업적을 많은 사람들이 이교수 말대로 반일 종족주의로 깔아뭉개는 것은 아닐까? 조국 교수의 말대로 이 책은 구역질나는 그런 책일까?
지면 관계상 책 전체를 하나하나 비판할 수는 없다. 단지 문제되는 이슈 하나만을 선정해 이 책이 갖고 있는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지금 한참 논란 중인 강제징용 문제다. 이 문제는 이 책 중 이교수가 쓴 프롤로그와 이우연이 쓴 67쪽 이하의 글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교수는 프롤로그에서 대한민국은 거짓말의 나라라고 선언한다. 대한민국은 국민도 정치도 학문도 거짓말만 하는 거짓말 국가라는 것이다. 그는 이 거짓말이 급기야 사법부까지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15쪽). 사법부 거짓말의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18년 10월 대법원이 선고한 강제징용 판결이다.
이교수가 대법원 판결을 엉터리 판결이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한 잘못된 사실에 기초하여 판결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법원이 인정한 기본적 사실관계가 원고들의 거짓말 주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법원은 이런 엉터리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판결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쓴 부분을 직접 인용해 보자.
“대법원의 판결문은 해당 사건의 ‘기본적 사실관계’에 대한 서술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을 읽은 저의 소감은 한마디로 “이건 거짓말이야”라는 것이었습니다. ... 제 비판의 초점은 딱 한가지입니다. 그 ‘기본적 사실관계’는 사실이 아니다. 아니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판결문에서 그런 흔적을 잦을 수 없습니다. ... “거짓말일 가능성이 큰 주장을 검증하지 않은 재판은 과연 유효한 것인가.”(16-17쪽)
이교수는 강제징용 판결에서 원고들의 거짓말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사실관계에 대해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일본제철이 원고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강제저축 운운하는 판결문 자체가 그 점을 입증하고 있다. 임금이 원고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사감이 범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했는지는 사감을 취조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사감은 미성년인 원고를 대신하여 원고의 본가에 원고의 월급을 송금하였을 수도 있다. 요건대 해당 사건은 원고와 사감 간의 민사사건이다.”(18쪽)
이제 나의 반론이다.
첫째, 대법원이 원고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검증하지 못했다는 부분은 법률의 무지에서 나온 주장이다. 대법원 재판은 법률심으로 사실인정을 하는 절차가 아니다. 사실인정은 원심인 하급심(이 사건에선 파기환송심인 고등법원)에서 하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 중 기본적 사실관계는, 원심이 증거에 의해 인정한 사실관계를 옮긴 것에 불과하므로 사실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대법원을 비난할 게 아니라 원심 사실인정을 문제 삼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교수가 법률가가 아니므로 너그럽게 넘어가자. 그저 그의 주장을 대법원 판결을 비롯한 원심 판결 모두가 사실인정을 잘못했다는 것으로 해석하자.)
둘째,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 사건에서 일본제철(현재 신일철주금의 전 회사)의 원고들에 대한 임금 미지급은 아예 쟁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교수가 이런 책을 내려면 원고들과 피고의 주장을 좀 더 철저히 조사했어야 마땅했다.
이 사건의 1심과 2심 그리고 파기 환송심 판결문을 모두 읽어보면 피고(신일철주금)는 원고가 주장하는 임금 미지급 부분에 대해선 전혀 다투지 않고 있다. 오히려 피고의 전신인 일본제철은 1947년 경 원고들의 급료에 대해 오사카 공탁소에 공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즉, 원고들에 대해 일본제철이 임금을 직접(현실적으로) 지불하지 않은 것은 원피고 간에 다툼 없는 사실(피고도 인정하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관계임에도, 이교수가 원고들과 일본제철 사이에 사감이란 존재를 넣어, 그가 중간에 돈을 가로챘을 가능성을 제기하거나, 본가에 돈을 보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참으로 용서받기 어려운 무책임한 주장이다.
셋째, 이 사건과 관계없이, 징용이건 징용 이전 노무동원이건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근로자들이 사감들의 농간으로 급료를 지급받지 못했더라도, 법률적으론 충분히 일본제철의 책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교수가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감이 이교수의 주장대로 조선인 근로자를 통제하는 존재로서 급료통장과 도장을 보관하고 있었다면, 그는 일본제철의 지시 감독을 받는 사실상 피용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사감의 불법행위로 원고들이 급료를 못 받았다고 해도 일본제철이 사용자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이교수가 원고들과 사감 간의 민사사건이라고 한 것은, 아무리 법률 문외한이라고 해도 학자로선, 창피한 수준의 법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책이 식민지 근대화론자의 학술적 주장이라기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독선적 표현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는 점이다. 강제징용의 경우 이교수는 원고들을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버렸고 대법관들까지도 그렇게 보았다.
”그들(대법관들)은 원고들의 거짓말일 가능성이 큰 주장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역시 어릴 적부터 거짓말의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입니다.“(18쪽
책을 쓰면서 이렇게까지 모욕적인 이야기를 해도 되는 것인가. 엄밀한 사료를 중심으로 과학적으로 역사적 진실을 밝힌다는 학자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과연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것이다. “과연 이 책은 누가 쓴 것인가. 한국의 학자가 쓴 것인가, 아니면 일본의 극우인사가 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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