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

당신은 독립적 존재입니까?

박찬운 교수 2015. 9. 26. 18:05

당신은 독립적 존재입니까?


2년 전 오늘, 저는 스웨덴 생활을 정리하면서 신문에 기고를 하였습니다. 페친분들이 한 두번 읽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년이 된 오늘, 저는 다시 이 글을 읽어 봅니다. 인간행복에서 자유와 독립은 필요조건이라는 믿음은 점점 강해져만 갑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스웨덴 체류시절 스웨덴 젊은 친구들과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30전후의 두 커플, 저와는 20년 이상의 나이 차가 있었지만, 그들의 정신연령은 우리나라 사람들 40, 50세수준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이렇게도 생각했습니다. 내가 저 친구들보다 20살이 많은 데도, 나의 정신연령이 저들보다 어리구나!"


왜 스웨덴 청년들은 그리도 성숙할까요? 저는 그 해답을 그들이 살아 온 자유와 독립성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스웨덴의 남녀 결합형태 중에는 삼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사실혼 관계(?) 라고나 할까요. 이런 결합형태가 남녀결합의 절반정도를 차지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매우 이상하게 보지요. 무슨 성적문란이니, 책임없는 남녀관계니 하면서요.

하지만, 제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더군요. 제가 어느 삼보 커플과 한 동안 같이 살았습니다. 여자는 미국 텍사스에서 왔는데 매우 건강한 여성이었습니다. 남성은 아일랜드 출신의 물리학 박사였고요. 이들은 한 동안 딴 방에서 각자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서로 짐을 옮기면서 방을 합치더군요. 그날로 동거에 들어 간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 후 이들이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남자가 베를린에 직장을 잡았기 때문이었지요. 이사 트럭을 하나 빌려 짐을 싣고 가더군요. 운전은 그 미국 여성이 하고요. 장장 열 몇 시간의 운전을 하면서 스웨덴, 덴마크 그리고 독일로 갔을 겁니다.

저는 이들을 보면서, 한 마디로 경외 그 자체였지요.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구나. 저런 사람들이라면 세상 어딜 가도 살아남겠구나!"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306182147425&code=990304


[기고]한국의 내일, 의존사회에서 독립사회로
기사입력 2013.06.18 오후 9:47
최종수정 2013.06.18 오후 9:58

스웨덴에 방문연구원으로 온 지 이제 1년이 되어 간다. 짐을 싸 고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온다. 나는 지난 1년간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에서 그 본질을 탐구하는 관찰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제 그 관찰 결과를 잠시 공유할 때가 되었다. 나의 관찰은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문제에 닿아 있다.

이곳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치를 꼭 집어 이야기하라면 나는 서슴없이 자유와 독립을 말하겠다. 그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이다.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결혼해 가정을 이루면 부부는 사랑으로 연대하지만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사랑이 깨져 이혼을 한다 해도 그것은 선택의 문제일 뿐 인생을 옥죌 정도의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노인이 되어 몸을 지팡이에 의존하는 상황에서도 자녀에게 기대지 않는다. 비록 고독은 노년에 참기 어려운 적이지만 죽을 때까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이곳에서는 자식을 위해 평생 고생하거나 연로한 부모를 위해 없는 살림을 쪼갤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모두가 독립해 있고, 모두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한마디로 개개인이 자유와 독립을 구가하는 독립사회이다.

이에 반해 한국사회는 의존사회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 모든 것의 근원이다.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하면 제대로 성장하기 힘들다. 가난한 이는 부자에게 의존한다. 친구들끼리 식당에 가면 밥값은 으레 돈 있는 이가 내야 한다. 그게 가진 자에게 부여된 도덕적 의무이다. 노인이 되면 상황은 역전된다. 노인은 자식에게 의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봉양 받는 것을 용이하게 해 주는 정신적 기초는 효도라는 이름의 도덕률이다. 효도는 인간사의 숭고한 감정이지만 그 실제는 불안한 노후문제를 가족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도구이념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스웨덴이 독립사회를 이룬 계기는 19세기 후반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불어닥친 심각한 도전에 대한 대응이었다. 스웨덴도 그때까지는 가난한 농경사회였고, 가정과 사회는 가부장적이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의존했고, 자식은 부모에게 의존했으며, 늙은 부모에 대한 자식의 책임은 컸다. 하지만 산업사회에서 농경공동체와 대가족 문화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스웨덴 선각자들이 선택한 것은 강력한 복지제도로 무장된 사회민주주의였다. 복지라는 물질적 토대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무릇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사람 앞에서 자유와 독립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종이 위에 쓰인 권리일 뿐이다.

우리는 수천 년 농경생활을 하다가 지난 한 세기 갑자기 산업화 시대를 맞이했다. 현실은 스웨덴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사회적 대응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자유와 독립은 서구를 넘어 보편적 가치가 되었음에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사회구조는 너무나 빈약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온갖 성장통은 여기서 비롯된다. 노사의 극심한 대결, 돈과 권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 살벌한 입시경쟁과 취업경쟁 등 사회구성원 간의 과도한 불협화음은 의존사회가 만들어내는 숙명적 사회현상이다.

이제 우리 앞날을 다시 정립해야 할 때이다. 정녕 자유와 독립은 추구돼야 할 가치인가. 그걸 원한다면 하루 빨리 의존사회에서 독립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사회의 근본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그 단초는 복지제도의 틀을 바꾸는 데서 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제일 과제다.

<박찬운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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