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 123

자리를 잘 찾아야

아침 출근 길에 아파트 정원 조경수를 유심히 보았다. 많은 나무들이 5월의 싱그러움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잎이 무성해 지고 색깔은 짙어지고 있다. 그런데 몇 나무들이 죽은 시체처럼 서 있다. 소나무들이다. 재건축을 하면서 한 그루에 수 천만원을 호가하는 소나무를 아파트 이곳저곳에 심었는데 열 중 둘이 고사되고 있다. 지금쯤이라면 솔잎은 윤기가 흘러야 하고 솔잎 끝엔 송아가루가 풀풀 날려야 정상인데, 이 소나무들은 장례 치를 날만 기다리는 중환자들이다. 아니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져 밑둥을 잘라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학교에 도착해 연구동에 들어오는데 또 소나무를 만났다. 사실 나는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 인간이 이 소나무를 고문한다는 생각에. 2009년 로스쿨을 시작하면서 법학..

스승에 대한 기억

나는 어젯밤 글에서 요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내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내게는 넘사벽이었다고 말했다. 그분들은 나와는 완전 딴 세상에 사는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분들이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은 찬찬히 한 분 한 분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그분들은 내게 어떤 존재이었을까? (아래 나이는 내가 교수님들을 처음 만났을 때 연세이다.) A 교수님(헌법). 50대 초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살아오셨다고 들었음. 교수님 중 가장 재산이 많은 분으로 자타가 공인. 독일 유학파인데 강의 시간에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칠판에 독일어를..

찻잔 속 미풍

언제나 주말 오후 되면 강남 어느 카페 창가에 앉아 진한 카페라테 한잔 앞에 두고 창밖 내다보니 분주히 걸어가는 사람 쏜살같이 내달리는 자동차 쏟아지는 햇빛 눈부셔 잠시 눈감았더니 꿈인지 생시인지 청바지 장발 청년 수줍은 여인 손잡고 걸어가네 저 모습 어제같은데 어느새 사십여년 훌쩍 마음 속 낭만 여전히 바람되어 불어오나 한물간 사람 탄식에 묻혀 찻잔 속 미풍이 되다 (2023. 4. 2.)

정성(精誠)이란

출근을 하면서 캠퍼스의 벚꽃을 감상했습니다. 지난 주말 꽃망울을 터트리더니 오늘 드디어 절정입니다. 3일 연속 사진을 찍어 보니 그 차이가 확연합니다. 오늘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저는 매일 출근을 하면서 일부로 학교에서 먼 역(왕십리역)에서 내려 연구실까지 걸어옵니다. 저희 학교는 옛날 청계천 변의 야산을 깎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경사가 심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불평하지만 저에겐 다리 근육을 키우는 데 딱 좋습니다. ㅎㅎ(긍정적 마인드!) 아마 저희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은 몇 년 캠퍼스를 다니다 보면 단단한 다리를 얻을 겁니다. 저는 경사진 곳을 걷기 위해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학교로 돌아와 한번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이렇게 출근하니 연구실에 오면 근육의 팽팽함을 느낍니다. 그..

뿌리를 찾아서

저는 항상 말하길, "인간은 뿌리를 잊어선 안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보여주기 싫은 과거라도 그것을 부정해선 안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인생은 더 보잘것 없는 것이 됩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그 기억은 가물가물하니, 제 인생의 뿌리는 아마도 이곳 사근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매일같이 점심을 먹으며 차 한 잔을 하는 곳, 바로 이곳입니다. 1973년 이곳에 왔으니 꼬박 5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곳을 잠시 떠나 있었고, 직업을 갖고 나선 강남 사람이 되었지만, 결국 저는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2006년 교수로 말입니다. 오늘 3년 만에 사근동에 가서 혼밥을 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특히 제가 50년 전 전학 온 초등학교를 가보았지요. 73년에도 서울에..

"인권위는 제 인생 전부였습니다" 인권위원 퇴임 인터뷰

http://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819 [인터뷰] 노란봉투법 권고한 박찬운 전 인권위원 “尹정부, 대결적 접근 우려” - 시사저널e - 온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차별금지법, 양심적병역거부, 사형제, 난민, 노란봉투법, 성소수자”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결정은 종종 우리 사회에 민감한 화두를 던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 www.sisajournal-e.com 인터뷰를 했지만 지면사정상 기사화되지 않은 내용이 많다. 그 중에서 주요한 문답을 여기에 올린다. Q1. 교수님은 지난 30년 이상 인권문제에 천착해 왔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회고해 줄 수 있습니까? A . 처음부터 그렇게 살고자 결심했던 것은 아닌데 살다 보니 그렇게..

사진으로 보는 60년

이제 환갑을 맞이하니, 과거 기억이 어느 때보다 새롭다. 점심을 먹고 명동거리를 걷다보면 40년 전 이곳을 걷던 내 모습이 또렷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환갑에 이른 사람은 분명 노인이었다. 환갑노인이라는 말은 그 시절엔 보통명사였다. 지금은 어떤가. 특별한 게 없다. 환갑잔치할 계획도 없다. 이제 더 이상 환갑노인이란 말도 없는듯 하다. 그저 스스로 인생 60을 음미할 뿐이다. 빛바랜 앨범을 찾아 사진 몇장을 골라 카메라에 담아 여기에 올려 본다. 사진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것이 내겐 환갑기념 행사다.(이 글에선 일부러 내 가족이야기는 뺀다. 아이들이 프라이버시 문제에 민감해 허락없이 사진 한장이라도 올리면 가정의 평화가 깨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ㅜㅜ) 시계 제로 유년시절..

환갑을 맞는 새벽단상

할많하않. 하고 싶은 말은 쌓여 있지만 하지 않는다. 이런 자세로 지난 2년 반을 지내왔다. 그 사이 정권이 교체되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대중들에게 정치적 상황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에 말과 글을 자제해 왔다. 아쉬운 것은 많지만 후회는 없다. 바쁘게 보냈다. 인생에서 이렇게 분주하게 보낸 적이 없다. 거의 매일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좀 더 완벽한 결정문을 만들기 위해 사무처 초안을 다듬고 또 다듬고 때론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싶을 때는 아예 새로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렸다. 일주일이면 3-4회 회의실에서 몇 시간씩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다. 사건을 처리하는 소위원회는 4시간이 기본이고 때론 5시간, 아니 그 이상을 넘기기도 한다. 회의가 아무리 길어져도 중간에 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