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고독과 슬픔

환갑을 맞는 새벽단상

박찬운 교수 2022. 5. 28. 05:30
나의 20대 그리고 60대

할많하않. 하고 싶은 말은 쌓여 있지만 하지 않는다. 이런 자세로 지난 2년 반을 지내왔다. 그 사이 정권이 교체되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대중들에게 정치적 상황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에 말과 글을 자제해 왔다. 아쉬운 것은 많지만 후회는 없다.

바쁘게 보냈다. 인생에서 이렇게 분주하게 보낸 적이 없다. 거의 매일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좀 더 완벽한 결정문을 만들기 위해 사무처 초안을 다듬고 또 다듬고 때론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싶을 때는 아예 새로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렸다. 일주일이면 3-4회 회의실에서 몇 시간씩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다. 사건을 처리하는 소위원회는 4시간이 기본이고 때론 5시간, 아니 그 이상을 넘기기도 한다. 회의가 아무리 길어져도 중간에 쉬는 것은 화장실 가기 위해 한 번 일어설 뿐이다.

코로나 시대에 일하기 때문에 해외출장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해외출장 한번 가보지 못한 유일한 인권위원이 될 것 같다. 가끔 국내 출장을 가긴 하지만 쉽지 않은 여정이다. 책임이 있기 때문에 흐트러짐 없는 행동을 하고자 일이 끝나면 그저 조용히 방에 들어가 혼자의 시간을 갖는 게 전부다.

이렇게 불철주야 일했지만 세상의 평가는 박하다. 좋은 결정과 의미 있는 제안을 수없이 했고 인권위란 조직을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인권위원보다 앞장 섰지만 내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퇴임한 이후에나 내 진가를 알까.

그래도 분주하게 산 것이 나를 살렸다. 내가 이곳에서 바쁘게 살지 않았다면 나이 환갑에 찾아오는 고독함에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만일 내가 바쁜 공적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다면 고독은 내 영혼을 사정없이 갉아먹었을 것이다. 연구실의 하루하루는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날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절해고도 연구실에서 눈물을 뿌렸을지 모른다. 지금의 바쁨이 그 대부분을 잊게 했다.

나는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자세로 지난 2년 반을 살아왔다. 매일 저녁이 되면 혹은 새벽이 되면 그날 혹은 그 전날의 일들을 세세히 기록했다. 조금이라도 내 삶에 의미가 있었던 일은 빠짐없이 정리했다. 지금까지 200자 원고지 기준 5천 장을 썼으니 아마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세상에 나 외에 누구란 말인가. 이 기록이 내 존재의 증명이다. 이 기록이 남아 있는 한 칠흑 같은 터널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제 나도 노년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잠을 통 이루질 못해 약을 복용한지 오래이고 새벽에 깨는 시간은 점점 빨라진다. 남들 다 자는데 내 하루는 시작된다. 몸의 변화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진행된다. 남성 홀몬이 줄어들어서인지 남성의 야성적 본능은 시나브로 죽어간다. 예전에 이런 상황을 맞이 했다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담담히 받아들인다. 오히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육체의 본능을 자극하는 원기가 충만했다면 내 모습은 추해졌을지 모른다. 침착한 가운데 인생을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은 노년의 특권이 아닌가.

이렇게 살면서 나는 이제 환갑을 맞는다. 60년을 돌아보니 아쉬운 것도 많지만 그렇다 하여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저 매일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내 삶을 조용히 반추하며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잠자고 있는 가족, 나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살아온 사람들, 그들 모두의 행복을 빈다.(2022.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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