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안데스에 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12)-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토레스 델 파이네-

박찬운 교수 2024. 1. 27. 05:35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12)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토레스 델 파이네-

 
 
 

토레스 델 파이네,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잠시 자연의 위대함에 넋을 잃었다.

 

 

여행 17일째. 드디어 파타고니아 여행이 시작된다. 새벽 5시 호텔에서 산티아고 공항으로 출발해 푸에르토 나탈레스행 첫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푸에르토 몬트에서 잠간 기착했다가 승객 일부를 내린 다음 다시 이륙해 잠시 후 푸에르토 나탈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총 4시간 반의 여행이다.

칠레가 긴 나라라는 것을 실감한다. 저 북쪽 아타카마 사막에서 산티아고 그리고 남쪽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비행시간을 더하니 6시간 반이다. 한 나라에서 비행기로 6시간 이상을 갈 수 있는 나라가 칠레다.
 
 

파타고니아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남미대륙을 남단을 통칭하지만 그 경계에 대해선 정설이 없다. 지도의 녹색부분의 맨 위 붉은 선이 파타고니아의 일응의 경계선이라 할 수 있다. 칠레 쪽의 푸에르토 몬트에서 안데스 산맥을 타고 북상해 콜로라도 강을 따라 대서양 쪽으로 나가는 선이다.

 
파타고니아는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대체로 파타고니아하면 이런 게 생각날 것이다. 남미의 최남단 지역으로 빙하와 설산 그리고 호수가 많은 곳 사계절 내내 세찬 바람이 부는 곳... 그렇다 이것이 파타고니아인 것은 맞지만 지역을 특정하긴 쉽지 않다. 파나고니아가 독립 국가가 아니니 무슨 경계선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파타고니아’라고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 다만 이번에 여러 자료를 분석해 보니 칠레인들은 파타고니아를 남위 41도 선에 있는 푸에르토 몬트를 기준으로 그 이남 지역을, 아르헨티나인들은 남위 37도 선상에 있는 콜로라도강(리오 콜로라도) 이남지역을 주로 말한다는 것을 발견했다(참고로 파타고니아의 경계가 이렇게 불분명함에도 의문을 제기한 문헌을 별로 보지 못했다. 나로선 이상할 따름이다.).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4시간의 반이 걸린다. 사진은 푸에르토 나탈레스를 가는 중 하늘에서 본 안데스 산맥이다.
비행기가 푸에르토 나탈레스 상공에 진입했다. 착륙 전 비행기에서 보이는 나탈레스. 멀리 보이는 설산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다.

 
따라서 이런 기준으로 파타고니아를 특정한다면 남위 41도(안데스에서 발원하는 강 리오 네그로가 기준) 이남 지역 혹은 조금 더 넓게 본다면 남위 37도(안데스에서 발원하는 강 리오 콜로라도가 기준) 이남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칠레 중심으로 말한다면 남위 41도의 푸에르토 몬트에서 안데스를 넘어 리오 네그라로 이어지는 선 이남이 될 것이고, 아르헨티나 중심으로 말하면 푸에르토 몬트에서 안데스 산맥을 북상해 남위 37도 선상의 콜라라도 강의 발원지까지 올라간 다음 강을 따라 동쪽으로 빠지는 선 이남이 될 것이다(사진 상의 붉은 선).

 

푸에르토 나탈레스 공항은 아주 작은 공항이다. 마치 가건물 같은 한 동이 비행장 시설의 전부다. 건축 스타일은 간단하나 파타고니아의 세찬 바람을 막는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파타고니아라는 이름의 유래는 마젤란의 세계 일주 때인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마젤란 해협(이 해협은 티에라 델 푸에고 섬과 남미 대륙 사이를 지나 푼타 아레나스를 거쳐 태평양으로 빠져 나가는 좁은 수로를 말함)을 지나가면서 거인족을 보았는데 이를 파타곤이라고 했고, 그들이 사는 땅이라는 의미로 파타고니아라는 말을 사용했는 것이다.

아마도 마젤란이 해협을 통과할 때 주변 땅 이곳저곳에서 횃불이나 모닥불을 사용하는 덩치 큰 원주민들이 퍽 인상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마젤란이 통과한 티에라 델 푸에고 섬도 ‘불의 땅‘이라는 뜻이니 그런 이야기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이번에 내가 여행한 파타고니아. 지도 중앙에 푸에르토 나탈레스가 있고 그 위쪽으로 토레스 델 파이네가 있다. 내 여정은 이 지역을 먼저 보고 아르헨티나의 엘 찰텐과 엘 칼라파테로 이동했는데, 이곳들은 토레스 델 파이네의 동사면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 피요로 한 가운데 있는 작은 항구 도시다. 멀리 보이는 설산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파타고니아는 언젠가부터 트레킹의 메카가 되었다. 아름다운 설산과 빙하호를 보면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걷고 싶어 하는 세계의 트렉커들 수 만 명이 매년 이곳으로 모여든다. 지구에서 사람들의 손 때가 묻지 않은 얼마 남지 않은 곳이기에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즘 이 지역과 관련된 여행 프로그램이 티브이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그것을 영상으로 보는 것만으론 양에 차지 않았다. 직접 가서 땅을 밟아봐야만 직성이 풀리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이번 남미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바로 이곳을 가는 것이었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초입에서 보는 파이네의 탑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칠레와 아르헨티아가 영유하는 이 지역은 워낙 넓기 때문에(거의 한반도의 3배 정도 면적)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가 이번에 간 곳을 설명하면 크게 세 지역이다. 하나는 칠레 지역으로 푸레르토 나탈레스를 기점으로 하는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둘은 아르헨티나의 엘 찰텐과 엘 칼라파테를 중심으로 하는 피츠로이산과 페리토 모레노 빙하,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의 땅 끝 마을 우수아이아. 아마 파타고니아를 가는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가는 코스라고 생각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 피어 있는 꽃. 이름은 모르겠지만 파타고니아의 세찬 바람을 이겨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꽃이다.
국립공원을 다니다 보면 과나코라는 사슴 비슷한 동물을 만난다. 차가 지나가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파타고니아 여행의 첫날 목적지인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파타고니아 피요르의 중심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의 전초 기지라고 할 수 있다. 트레킹 전 이곳에서 여장을 풀고 잠시 쉰 다음 트레킹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장정에 들어서는 것이다. 시내를 돌아보는 것은 걸어서 20-30분이면 충분하다. 호텔 방에서 호수 같은 바다를 내다보는 것도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저녁 시간 바닷가를 천천히 걸어보았다. 건너편 설산이 은은하게 빛을 낸다. 내일 가기로 되어 있는 파이네 국립공원이다. 공원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절경인데 그 중심에 들어가면 어떤 모습일까.


토레스 델 파이네가 속한 행정구역 명을 알아보니 울티마 에스페렌짜(Ultima Esperanza), '마지막 희망'이란 뜻이다. 참으로 지명도 비장하다. 토레스 델 파이네가 과연 이 지구의 마지막 희망이란 말인가?
 

미라도르 살토 그란데에서 본 토레스 델 파이네
미라도르 살토 그란데 트레킹
토레스 델 파이네는 어딜 가도 이런 비현실적 아름다움에 한시도 눈을 감을 수 없다. 사진 기술이 없어도 그저 찍기만 하면 그림이 된다. 노르덴스크 호수에서 본 뿔달린 봉우리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파이네의 탑’이라는 뜻으로 국립공원의 중심에 있는 3개의 수직 절벽의 봉우리에서 나온 말이다. 파이네라는 말도 원래 이곳 원주민 테우엘체족의 언어로 ‘창백한 블루‘라는 말이다. 그러니 토레스 델 파이네는 ’창백한 블루 타워‘ 같은 봉우리가 있는 곳이라 하겠다.

세 봉우리는 2500미터가 넘는 (가장 높은 세로 파이네 그란데는 2884미터)수직 직벽인데 그것 중심으로 주변에 설산과 빙하 호수가 이곳저곳 산재해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토레스 델 파이네를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지구 상 50곳 중의 하나로 선정했다고 한다.
 

한 여름에도 산 정상의 눈은 녹지 않는다. 빙하수는 계곡을 거쳐 산 아래로 맹렬하게 내려온다. 지구 상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보고다.


12월 30일 아침이 밝았다. 운 좋게도 날씨도 좋다. 하늘을 보니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다. 우리를 태운 전용버스가 파이네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단 몇 킬로미터를 갔을 뿐인데 앞에 나타난 설산이 웅장하다. 모두 탄성을 지른다. 잠간 전망 좋은 곳에서 내려 사진을 찍기로 했다.

현지 가이드는 너무 많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조언을 한다. 이유인즉, 여긴 공원 초입이고 앞으로 볼 경치는 이것과는 비교가 안 되니 힘 빼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행은 연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보다 아름다운 곳이 세상에 또 있을까? 페호에 호수에서 바라다 보는 토레스 델 파이네

 
버스가 공원 깊숙이 들어갈 수록 가이드의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옥색의 호수는 빛나고 거기에 인근 설산이 그대로 반영된 모습은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이런 비경을 그냥 멀리서 바라보고 사진이나 찍는다는 것이 한심스러웠다.

이곳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한 열흘 시간을 내 파타고니아의 세찬 바람을 맞으며 W자 트레킹이나 O자 트레킹을 하는 것이 제격이다. 그런 트레킹을 하지 못하고 버스로 이동하며 뷰포인트에서 사진이나 찍는 여행을 하고 있으니 나도 이제 노인 대열에 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정도라도 파타고니아의 신비로운 경치를 즐길 수 있다는 것만도 큰 축복이 아니겠는가.
 

그레이 빙하가 손에 잡힐 것만 같다. 저곳이 다음 여정인 아르헨티나의 엘 찰텐과 엘 칼라파테로 이어진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아름다음에 대해선 굳이 긴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내가 찍은 사진 몇 장을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백문불여일견이란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 1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