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문학

"방황하고, 태만하고,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돼라."

박찬운 교수 2018. 3. 25. 19:05


"방황하고, 태만하고,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돼라."

알브레이트 뒤러 <기도하는 손>


성탄절입니다. 사위가 조용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늦잠을 자도 될 것 같습니다. 푹 쉬기 바랍니다.
.

저도 조금 더 자고 싶지만 일찍 깨고 말았습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초저녁 잠은 많은데, 새벽 잠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적응하면서 살뿐입니다. 조용히 일어나 묵상을 한 다음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

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몇 년 전 완독한 레 미제라블.
.

빅토르 위고의 이 위대한 소설을 들척이며 밑줄쳐 놓았던 부분을 읽습니다. 
.

제가 이 책을 읽은 것은 그 내용을 알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위고 나이 60이 되어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경험하고 쓴 이 책에서, 삶이란? 인간이란? 죄란?... 이런 것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

첫 권에는 미리엘 주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외면한 장발장에게 자비를 베푼 신부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책(정기수 옮김) 속에 나오는 부분을 옮겨 봅니다.
.

“인간은 스스로의 짐인 동시에 유혹인 육신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그것을 짊어지고 다니며 그것에 끌려 다닌다. 인간은 그것을 감시하고 제어하고 억제하여야 하며 마지막 극단에 이르러서가 아니면 굴복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한 굴복에 있어서도 역시 과오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저질러진 과오는 용서받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추락이기는 하지만, 무릎을 꿇은 추락에 불과하므로 기도로써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성자가 되는 것은 예외요,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통칙이다. 방황해라, 태만해라, 죄를 지어라.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돼라.


주: 이 부분은 오독의 가능성이 있다. 죄를 지으라는 말과 올바르게 살라는 말은 양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 전체의 의미에 따라 다른 말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인간은 올바르게 산다고 해도), 방황할 수 있고, 태만할 수 있고,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럼에도 올바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선 안 된다.' 곧 모든 인간은 올바르게 산다고 해도 '죄에서 해방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이 문장에 해당하는 사람이 바로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다. 그는 젊을 때 방황했고, 태만했으며, 죄를 지었다. 그러나 올바르게 살려고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과오를 딛고 결국 좋은 시장이 되어 많은 사람을 구원했고, 버려진 소녀를 자신의 양녀로 삼아 예쁘게 키웠으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가급적 죄를 적게 짓는 것은 인간의 법이다. 전혀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천사의 꿈이다. 지상의 만물은 죄를 면치 못한다. 죄는 인력(引力)이다.“

.

인간이기에, 몸이라는 짐을 지고 살기에, 우리는 죄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 (극단에 이르기까지) 제어하고 억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이 할 일입니다.
.

그럼 극단에 이르러서는? 그렇습니다. 극단의 상황에서 일어난 과오는 용서될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기도함으로써 말입니다. (저는 특정 종교를 염두에 두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교회도 성당도 다니지 않습니다.)
.

저는 소설의 이 대목에서 위안을 받습니다. 


"전혀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천사의 꿈이다. 지상의 만물은 죄를 면치 못한다. 죄는 인력(引力)이다.“


(2017. 3. 25 쓰고 2018년 12월 25일 고쳐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