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결심

개강에 즈음한 다짐

박찬운 교수 2024. 3. 4. 13:59

개강에 즈음한 다짐

 

오늘 개강입니다. 한 학기 연구년을 보내고 오늘 출근을 해 첫 강의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렙니다. 강의실에 들어올 로스쿨 신입생들은 어떤 친구들일지 궁금합니다. 이들이 몇 년 후 법률가가 된다면 제 40년 후배가 될 겁니다. 긴 세월의 차이가 나는 이 젊은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이들에게 후일 기억에 남을 개강사를 해야겠다고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생각을 바꿔야야겠습니다. 특별한 개강사보다는 제 마음 자세나 점검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제가 가지고 있는 꼰대적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상대를 가르쳐 그들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욕보다 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게 그래도 조금은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압니까? 제 모습이 좋아 그들이 40년 후 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성공적인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1. 무엇보다 말을 줄이려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주려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시키려는 마음에, 그동안 말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말을 줄이고 여백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강의실에서 너무 많은 것을 주겠다거나 다 이해시키겠다 하는 과욕을 버리고 학생들에게 스스로 공부할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2. 과도하게 정을 주는 일은 삼가겠습니다.

내 마음 기준으로 그들을 보지 말고 그저 시절인연이란 자세로 차분하게 그들을 대해야겠습니다. 정을 주더라도 무엇을 크게 바라지 않는다면 서운한 마음은 적어질 겁니다. 서로에게 독립적인 마음 공간을 만드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세대 차이를 일부러 메꾸려고 무리하게 젊어지려는 노력은 하지 않겠습니다.

흰머리는 연륜의 표시니 굳이 검은 염색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사는 것이지 제가 그들에게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서로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들을 나무라기보다는 어른들은 이럴 때 이렇게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4. 학생들이 언제라도 찾아와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선생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연구실에 차와 간식거리를 많이 준비해 놓겠습니다. 학생들이 찾아와 차를 마시며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겠습니다. 큰 도움이야 주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너희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선생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다짐이 얼마나 지켜질지 하루하루를 점검하면서 이번 학기를 보내겠습니다.

오늘 만나는 젊은 친구들, 환영하고 축하하네.”

(202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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