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를 앞두고,
“나는 내일 정오부터 인간으로 산다”
(이 글이 탄핵 선고 전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지난밤 1시 무렵 깨 도통 잠을 못 잤다. 이런 날이 도대체 얼마나 지속되었는가. 12. 3 내란 사태 이후 계속되는 현상이다. 대단한 애국자도 아님에도 나라 생각에 잠이 안 온다. 내일 선고를 생각하니 더욱 잠이 안 왔다. 나의 예측으론 아무리 생각해도 8대0 전원일치 파면 선고인데도, 일말의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식이 가출해버려 몰상식이 세상을 지배한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4개월 우리는 너무나 심각하게 ‘국민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우리의 관심사 전체가 한 사람의 탄핵과 처벌에 모아졌다. 나라가 위험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이러다가는 진짜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에 어쩔줄 몰랐다. 진짜 어떻게 만든 나라인데, 어떻게 만든 민주공화국인데, 어떻게 만든 경제 선진국인데, 이것을 하루아침에 도둑맞는단 말인가.
사람들은 허구한 날 용산으로, 광화문으로 나가, 그 한 사람의 탄핵을 외쳤다. 엄동설한의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밤샘을 불사하며 그 한 사람의 엄벌을 외쳤다. 한낱 서생에 불과한 나도 날이면 날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그 한 사람의 파면과 처벌의 당위성을 글로 작성해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이 모든 게 대한민국의 안위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긴 시간 방콕 중이다. 여행을 다녀도 자랑할 수가 없다. 미안한 마음에 사진 한 장 올리지 못한다. 맛집 찾아다니며 먹방을 즐기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도 그 먹음직한 음식 사진 한 장 올리지 못한다. 나라가 어지러운데 어떻게 그런 개인의 소소한 삶을 친구들에게 공개할 수 있느냐 하는 미안함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여기의 모든 친구들도 그런 삶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원한다. 나는 술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하는 삶을 원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을 맞추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삶을 원한다. 나는 이것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삶을 보장받기 위해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나는 이런 삶을 살기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키보드워리어 역할을 다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국민으로서의 삶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 맞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우리의 공동체가 발전한다. 아마 정치인들은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니 인간으로서의 삶이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인생이 너무 불행하니까. 삶의 60을 국가에 바쳐라, 그러나 40은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라. 나같은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삶이 중요하니 반대로 살겠다. 삶의 60은 인간으로서, 40은 국민으로서 살겠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 정도면 누가 나를 비난할 수 있으랴.
인간으로서의 삶은 본능의 발현을 중시하고, 자연이 인간에게 준 정의의 나침반에 의지하는 삶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마음껏 나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사는 삶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인간이 존엄하게 사는 길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보호하는 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것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 만일 그것을 배신하면 주권자로부터 철퇴를 맞아야 한다. 내가, 우리가 지금 분연히 일어선 본질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존귀한 삶을 외면한 대통령, 우리의 존귀한 삶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져버린 대통령, 그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일 정오 헌재가 그의 파면을 선언할 것이다. 대략 그 시각이 정오 쯤 될 것이다. 나는 그 시각부터 내 본능이 가는 대로의 삶을 살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다시 작동되는 시간이다. 나는 내일 저녁 거리를 누비며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길 바란다. 축배를 들며 내가 지킨 대한민국이 나의 영원한 보금자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싶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그 시각 부로 컴퓨터 앞을 떠날 것이다. 키보드워리어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이다. 거리와 광장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202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