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도둑맞을 때는 개도 짖지 않는다

박찬운 교수 2017. 9. 10. 20:10

도둑맞을 때는 개도 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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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김기춘이 항소이유서를 제 때에 안 내 항소기각 위험에 빠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법률상 벌금형을 선고할 수 없는 사건에서 법원이 벌금형을 선고했고, 그 판결이 확정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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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단속에 걸린 운전자를 입건하지 않고 돌려보낸 어느 경찰관이 직무유기죄로 1심에서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런 경우 경찰관으로선 공직에서 쫓겨나고, 연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지에 빠지니, 당연히 항소해 선처를 받고자 한다. 이 항소에 항소법원이 선처를 한다면, 징역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게, 피고인으로선 가장 유리한 판결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선 그러질 않고 법(형법)에도 없는 벌금형을 선고했다. 명백하게 부적법한 판결이다. 만의 하나 이런 일이 있더라도,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했더라면 항소심 판결은 고쳐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하지 않는 바람에 판결이 확정되고 말았다. 피고인으로선 예상하지 않은 횡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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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상식적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구는 이 사건 피고인을 변호했던 변호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가 판사출신 변호사였으니 법원으로부터 전관예우를 톡톡히 받았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측은 터무니없다. 대한민국 어느 판사가 전관출신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다고 이런 식으로 피고인을 봐주겠는가?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런 판사는 단 한 순간도 법대를 지킬 수 없는 자격미달 법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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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이런 판결이? 법원의 해명을 그대로 믿는 수밖에 없다. 판사가 직무유기 범죄의 법정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선고했다는 것이다. 그저 1심 형량을 낮춰 준다는 생각에 법전도 보지 않고 감형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완벽한 인간도 가끔 그런 실수를 하는 법이니, 이 판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너무 쇼킹한 일로 받아들이진 말자. 그럼 검사는? 검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항소심 공판검사는 법원이 의당 법정형에 입각해, 선고했을 거라 생각하고, 법전 찾아보는 것을 생각조차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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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아마 변호사는 선고 직후 이 판결의 문제를 알았을 것이다. 통상 변호사는 이런 사건을 수임하면 법정형부터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호사가 선고 이후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판사나 검사에게 한마디해줄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다, 그걸 바랄 수는 없다. 그냥 놓아두면 피고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판결로 확정되는데, 어느 변호사가 그 문제점을 재판부나 담당검사에게 알려주겠는가.(만일 알려주었다면 피고인에겐 일종의 배임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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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사건은 판사와 검사의 완벽한 동시 실수에서 빚어진 것이다. 두 법률가 입에선 이런 말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도둑이 들 땐 개도 짖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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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에선 비상상고란 절차를 이야기한다. 이 사건이 비록 확정되었더라도 그것을 시정할 방법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상고하는 비상상고란 절차를 말한다. 하지만 그 절차를 취한다고 해도 이 사건 피고인에게 다시 징역형을 선고할 순 없다. 이미 확정된 사건의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결과를 낼 수 있는 판결을 다시 선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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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다. 그저 운 좋은 피고인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