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검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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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문준영 교수의 역작 <법원과 검찰의 탄생>이란 책을 읽었다. 1천여 쪽에 가까운 이 책은 제목대로 우리나라 법원과 검찰이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발전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서술한 법률전문가의 사서이다. 내가 이 책에서 특별히 관심을 둔 것은 역시 검찰부분이었다. 검찰공화국이라고도 불릴 만큼 강고한 검찰의 권한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고 오늘까지 이어져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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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현재 수사권과 기소권 그리고 공소 유지권을 갖는 명실상부한 권력이다. 이에 반해 경찰은 대부분의 사건을 수사함에도 불구하고 그 권한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강제 수사권은 어떤 경우에도 검사의 승낙이 없이는 안 된다.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위한 영장은 반드시 검사의 손을 거쳐 법관에게 청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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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라, 경찰이 검사 관련 비리를 발견해 수사를 한다고 하자. 관련자의 인신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해도 법원에 직접 청구하지 못하고, 검찰에 영장청구를 해달라고 요청(이를 실무상 ‘품신’이라 함)해야 한다. 검찰이 제 식구를 경찰이 조사한다는 데 제대로 협조를 하겠는가? 이래 가지고서야 경찰에게 수사권이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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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절차적 제한은 단순한 법률사항이 아니다. 우리 헌법이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12조 3항은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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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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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검찰개혁의 핵심인 검경 수사권 조정이 늘 좌초되었다. 전문가들조차 경찰에게 완전한 수사권을 주기 위해선 헌법을 개정하기 전에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제껏 그런 생각을 했다. 위 헌법 규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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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 며칠 검찰과 그 구성원인 검사의 권한을 연구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그동안 생각해 온 것이 뭔가 고정관념에 빠져 본질적인 것을 보지 못했다는 깨달음이었다. 그것을 여기에 잠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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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말하는 ‘검사’는 ‘검찰청법에 의한 검사’(이게 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검찰청 검사다)만을 의미하는가? 우리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면서, 영장청구와 관련해 ‘검사’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검사를 헌법기관으로 보고 그 기관의 권한을 직접 규정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헌법에서 규정된 ‘검사’는 당연히 하위 법률에 의해 구체화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검찰청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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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헌법상 검사가 검찰청법에 의해서만 구체화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다른 법률에 의해서도 헌법상의 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검사는 만들어질 수 있다. 헌법은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은 강제수사는 법률전문가(검사)의 손을 거쳐서만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을 뿐 그 검사의 구체화는 하위법률로 넘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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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우리 헌정사는 이런 입법을 이미 여러 차례 만들어냈다. 군사법원법에 따른 군검사? 이것도 검찰청법에 의한 검사는 아니지만 헌법상 영장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이다. 여러 차례 입법화된 특별검사법에 의한 특별검사? 이것도 검찰청법에 의한 검사는 아니지만 헌법상 영장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이다. 요즘 논의되고 있는 공수처? 이것도 마찬가지다. 이 기관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국가기관으로 만들어진다면 그 근거는 위와 같이 헌법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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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헌법 개정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만일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을 주는 것으로 합의하면 헌법 개정 없이도 강제 수사권을 포함한 완벽한 수사권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경찰 소속으로 있으면서 ‘영장청구만을 전담하는 검사’를 입법화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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