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일반

독서가 취미라는 분들에게

박찬운 교수 2015. 9. 26. 21:46

[독서가 취미라는 분들에게]


“당신의 취미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예 제 취미는 독서입니다”라고 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취미를 중국어로 말하면 아이하오(愛好)라고 하니, 그것은 본질적으로 즐겁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독서가 취미라는 분은 분명 책 읽는 것을 즐겁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니, 그는 고통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정신적으로는 비정상적 상태에 있는 마조키스트입니다. 너무 과한 이야기인가요?


물론 독서 중에는 즐길 수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어떤 책은 말 그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약간의 성적 판타지가 있는 책들은 독서 중에도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책을 읽는 것은 그 자체가 황홀경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 즐겁다고 한다면 저도 단박에 독서는 즐거운 것이라는 데에 동의할 겁니다.


하지만 제겐 독서는 고통입니다. 제가 읽는 어떤 책도 고통이 따르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책 속에서 지식을 구하는 것도 고통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도 고통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 고시공부를 했습니다. 두꺼운 법서를 여러 번 읽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당시 읽었던 법서 몇 권을 보관하고 있는데, 그 중 한 권을 보여드리지요. 민사소송법 교과서인데 11번을 읽었다고 표시되어 있군요. 이렇게 책을 읽은 것은 그 속에 있는 내용을 거의 암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즐거움? 물론 모르는 것을 알고 나면 짜릿한 기분이 들지요. 하지만 고통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고통을 매번 느끼면서 법률서적을 읽습니다.


저에겐 법률서적 뿐만이 아니라 문학, 예술, 과학 등등 제가 손을 댄 어떤 책들도 쉬운 책은 없었습니다. 읽고 나서 뿌듯한 것은 쉴 새 없이 느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히 독서가 즐거웠다고? 독서가 취미라고? 그렇게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영역이 역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류의 책을 많이 읽습니다. 최근에 세계 역사와 관련하여 주요한 책이 몇 권 나왔습니다. 에드워드 기본의 <로마제국 쇠망사> 6권이 완역되었습니다. 이 책이 어느 정도의 볼륨인 지 아십니까. 대충 계산해보아도 3,500쪽 정도가 됩니다. 이런 책을 어느 누가 다 읽었다 할 것이며, 그것을 읽으면서 즐거웠다고 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또 한 작가 윌 듀란트의 대작 <문명이야기> 10권도 최근 완역되었습니다. 무려 6,500쪽 분량입니다. 이 책을 어느 누가 다 읽었다 하겠습니까? 그것을 읽으면서 즐거웠다고 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제게 알려 주십시오. 한번 찾아뵙고 스승의 예를 갖추겠습니다.


단행본은 쉬울까요? 플라톤의 <법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 권으로 출간되었지만 1천 쪽이 넘습니다. 쉽게 책장을 넘길 수가 있을까요? 천만에요. 한 쪽을 읽을 때마다 생각을 해야 합니다. 머리에서 쥐가 납니다. 내가 과연 몇 쪽을 더 읽고 포기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문학서는 쉽습니까? 제가 며칠 전 <레미제라블> 5권을 완독하고 그 쾌감을 페북에 잠간 옮긴 적이 있습니다. 문학서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외서인 경우는 더 그렇습니다. 번역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머리속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런 책을, 더군다나 장편소설인 경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는 것은 고통과 싸우는 전투입니다.


제게 있어 독서는 삶입니다. 일과 중엔 일이 있으니 어렵지만 자투리 시간(지하철 출퇴근, 화장실...)과 퇴근 후 그리고 주말의 여유 있는 시간은 대부분 독서로 시간을 보냅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逆說呼)하는 마음으로 책을 대합니다만, 고통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얻은 지병이 과민성대장질환입니다. 책을 읽다가 막히는 대목이 나오면 아랫배가 더부룩해집니다.


최근 저는 문학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여러 가지 이유로 소설류를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소설은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종횡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 진즉 생각했지만 이제껏 충분히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문학서 중에서도 제가 당분간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것은 세계고전문학입니다. 제가 이들 문학서를 읽는 것은 그저 스토리를 알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작가와 호흡하면서 읽어 보고 싶습니다. 작가가 무엇을 고뇌했는지를 충분히 느끼면서 읽고 싶습니다. 제 나이나 경험에 비추어 그럴 때가 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학서도 장난이 아니군요. 엄청난 고통이 따라야만 완독이란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제부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세 권 1,500쪽입니다. 이 책은 대학시절부터 읽어보고자 했고 몇 번 읽기를 시도했던 책입니다. 내용도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부를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작년에도 민음사 완역본으로 큰 맘 먹고 시도를 했지만 2권 째에서 포기했습니다. 정말로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이런 말을 하면 번역하신 분에게는 큰 실례가 되는데...미안합니다). 이번엔 주변 분들의 권유로 출판사(열린책들)를 바꾸어 읽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부로 100쪽까지 읽었는데 여전히 지루하군요. 과연 이 책을 완독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 순간이 오면 다시 이곳에서 기쁨을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