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영국이야기

영국이야기 31 프랑스의 로마, 님(Nimes)을 찾아

박찬운 교수 2016. 11. 15. 15:03

영국이야기 31



프랑스의 로마, 님(Nimes)을 찾아




프로방스에서 고흐의 흔적을 찾은 다음 내 발 길은 님(Nimes)으로 이어졌다. 아마 한국 사람들에겐 이 도시가 그리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님은 아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중요한 도시다. 더욱 이 도시는 프랑스 남부의 대표적 역사 도시로 빼어난 로마유적을 가지고 있어, 혹자는 이곳을 프랑스의 로마라고 부른다.


나는 3년 전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나남출판사)출간할 정도로 로마문명에 관심이 많다. 유럽여행을 하면 어디를 가든, 로마문명과 관련된 유물이나 유적은, 내 방문 리스트에서 빠트리는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님은 내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만한 도시다.


이제껏 로마문명과 관련된 여러 도시를 가보았지만 프랑스에선 그런 도시를 가본 일이 없다. 그러니 프로방스 아를에서 프랑스의 로마로 불리는 도시가 불과 40여 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니 내가 그곳 그냥 두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는 여행 일정에서 1박을 그곳에서 하기고 하고, 생레미 일정을 마친 다음 다시 아를로 돌아와, 님행 기차를 탔다.


님의 역사가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역사상 그 실체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은 역시 로마시대다. 기원 전후(아우구스투스 통치기) 님은 로마의 식민도시(Nemausus)로 이 지역의 중심도시가 된다. 당시 로마군인들은 일정기간 군복무를 마치고 난 다음 로마시민권을 얻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새 정복지에 만들어지는 신 도시에 투입되었다. 아마 님도 그렇게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님은 현재 15만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프랑스 남부에선 꽤 큰 도시 중 하나에 속한다. 시내 전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로마시대 지어진 대전망대(Tour Magne)에서 님 시가지를 보면  이 도시가 적잖은 규모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나는 이 도시에 입성해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 저녁 시간까지 줄곧 걸어다니며 로마유적지를 찾았다.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짧은 여행기간 때문에 님에서 북쪽으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퐁두가르(Pont du Gard)를 가보지 못한 것이다. 로마시대 만들어진 수도교 중 스페인 세고비아의 그것과 함께 최고로 인정되고 있는 퐁두가르를 못 본 게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찍은 로마유적 사진을 하나하나 보면서 이야기를 해보자

 



 님 원형경기장(Arenas)




님의 로마유적을 대표하는 게 두 개가 있다. 하나가 바로 사진 상의 아레나(로마원형경기장)이고 다른 하나가 아래에서 보는 신전 메종카레다. 님 아레나는 규모에 있어 로마의 콜롯세움에 비할 수는 없지만 2만 관중이 들어가는 큰 경기장이다. 2세기 후반 당시 황제(오현제 중 한 사람)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이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 경기장은 133미터*101미터 크기로 로마시대엔 이곳에서 검투사들이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경기를 했다. 중세시대엔 하나의 성으로 기능을 했는데, 이 중앙 경기장에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섰다고 한다(아를 여행기에서 본 것처럼 아를 원형경기장도 마찬가지였음).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통치기에 이들 건물들을 모두 철거되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 원형경기장은 각종 음악회 등이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사용된다. 2천 년 가까이 된 건축물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생각만 해도 전율이 일어나지 않는가? 특히 1997년부터 시작된 님 음악페스티벌이 바로 이곳에서 열린다. 여름 페스티벌 시즌이 되면 이 경기장엔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 전역에서 온 관광객들로 가득 찬다. 


그런 곳에 내가 섰다. 장엄하다는 말로는 표현키 어려울 정도로 감격스럽다. 2천 년의 시공을 뛰어넘은 이 역사적 건축물에 내 족적을 남길 수 있다니!




님 원형경기장을 배경으로 한 컷 찍다. 내가 님의 아레나를 보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렸던가?




광장신전(Maison Carrée)




님 아레나(원형경기장)와 함께 님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로마유적은 시내 한 가운데 광장에 있는 메종카레다. 이것과거 로마제국이 남긴 유적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바로 그 신전이다. 


이 신전이 만들어진 것은 대체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기(기원 후 4-5년)로 알려져 있다. 로마 신전엔 보통 신전 문설주에 신전이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를 밝혀놓는데, 이 신전은 아우구스투스의 양자로 후계자로 인정된, 가이우스 카이사르와 루키우스 카이사르(이 둘은 모두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지 사위인 아그리파의 아들들임)에게 헌정된 것이다.


이 신전은 소위 비트루비우스 양식의 대표라고 일컫는다. 비트루비우스 양식? 이것은 좀 설명을 해야 하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로마제정 초기 건축가로 비트루비우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기에 아그리파와 함께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아그리파? 그는 젊을 때는 아우구스투스를 도와 전장터를 누빈 장군이었지만 제국이 안정된 이후엔 로마제국 전역을 돌며 수많은 건축물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건축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집단을 감독하면서 로마원형경기장, 수도교, 도로 등을 건설했다. 비트루비우스도 분명 이 집단에 소속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트루비우스가 역사상 유명해진 것은 그가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건축학 책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로마시대 건축학 책으로 거의 유일하게 중세시대 살아남아 르네상스 시기 각광을 받았다. 알베르티,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이 모두 비트루비우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 비트루비우스가 강조하는 로마건축의 핵심이 무엇인가. 원어로 말하면, firmitas(solid), utilitas(useful), venustas(beautiful)이다. 즉, 건축은 모름지기 '견고하고 실용적이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메종카레는 이런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철학 곧 로마제정 시대의 건축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건축물로 유명하다. 전면은 13미터 측면은 그 두 배인 26미터의 신전으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전면 열주는 6개인데, 화려한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다.




로마 수도 시설 카스테윰(Castellum)




로마인들은 건축의 귀재였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시설이 바로 수도시설이다. 로마인들은 도시에 항상 맑은 수도물을 공급했다. 인근 산에서 발원하는 맑은 물을 도시까지 수로와 수도교로 끌어 와, 도시 언덕부근의 지하 저수지에 채운 다음, 지하 수도관을 통해 도시 전체로 물을 공급했다.


님에서 로마시대의 수도기술을 볼 수 있는게 바로 저 카스테윰이란 시설이다. 수 십 킬로미터 떨어진 산악지방에서 수도관을 통해 온 맑은 물이 저곳에 모아지고 그곳에서 시 전역으로 분배되었던 것이다.



퐁두가르(Pont du Gard)



퐁두가르(사진 위키피디아)


이번 여행에서 아쉽게도 이곳을 가보질 못했다. 님에서 북쪽으로 2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로마제국 시절 건설된 수도교가 퐁두가르가 있다. 위에서 본 님의 카스테윰은 바로 이 퐁두가르에서 온 물이 모여진 곳이다. 


퐁두가르는 가르강을 가로지르는 이 수도교로 로마문명의 정수 중 하나다. 수도교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물이 가는 방향으로 약간 기울어져야 한다. 수 십 킬로미터를 그 같은 방법을 사용해 수로나 수도교를 만든 다는 것은 보통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로마인들은 바로 그것을 해냈다. 




대 전망대(Tour Magne)




로마시대 때 만들어진 시의 대 전망대(Great Tower)다. 님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것으로 이곳에 올라가면 님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대전망대에서 찍은 님 시내





다이아나 신전(Temple de Diane)




대전망대에서 시내로 걸어내려 오면 분수공원을 만나는데, 바로 그 공원 옆에 다이아나 신전이 있다. 신전 유적으로선 극히 일부만 남아 있지만  그런대로 로마시대 신전의 존재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아우구스투스 문(Porte de Auguste)




로마시대 만들어진 님의 성곽 문 중 하나다. 문의 이름이 아우구스투스라는 것에서 이 도시가 로마제정 초기 아우구스투스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종카레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상영되는 영화를 보면 님의 조상은 갈리아족 중 한 일파이었는데, 카이사르를 도와 이 지역을 로마화하는 데 기여한다. 카이사르를 이은 아우구스투스는 그 대가로 님을 로마도시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그 덕에 성곽이 만들어졌고, 그 문 중 하나가 아우구스투스문으로 헌정된 것이다.  



님의 이곳저곳



대전망대 아래에 있는 분수공원





분수공원에서 시내로 향하는 수로





시내 한 가운데 있는 로마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그의 순행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원형경기장이 님 아레나다.






시내에서 역으로 가는 길





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면 이런 광장이 있다. 바로 님 아레나 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