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영국이야기

영국이야기 30 내 친구 빈센트 반 고흐를 찾아 프로방스를 가다(2)

박찬운 교수 2016. 11. 15. 04:36

영국이야기 30


프로방스, 내 친구 빈센트 반 고흐를 찾아서(2)

-고흐의 영혼이 숨쉬는 생레미-





고흐가 입원했던 생레미 생폴 정신병원



고흐의 흔적을 찾아 프로방스에 갔지만 두번째 목적지 생레미를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아를에 가기 전 구글 지도를 통해 확인해 보니 아를에서 생레미까지는 30여 킬로미터! 완행버스로 간다고 해도 한 시간 내에 닿을 거리다. 더군다나 고흐를 찾아 관광객들이 많이 올테니 아를-생레미 교통편은 문제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겨울철 아를-생레미 교통은 하루에 버스 한 두 편이 전부였다. 여행 계획을 세우길 아를에서 생레미를 들러 님(Nines)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상황이 이러니 고민이 되었다, 오전 딱 한편의 버스라...이 버스를 타고 생레미에 들어갔다가 오후에 그 버스를 타고 나오지 못하면 천상 그곳에서 하루를 묵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어쩌랴. 프로방스에 와서 생레미를 보지 않았다고 하면 어찌 고흐의 흔적을 찾아 왔다고 할 수 있으랴. 나는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 아를 역전 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거기서 한참을 기다린 다음 버스를 타고 생레미로 향했다.




아를에서 생레미 가는 길 차창가로 보이는 벌판에 사이프러스가 보인다. 프로방스엔 어딜 가도 고흐가 그린 사아프러스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고흐가 생레미를 가게 된 것은 1889년 5월. 아를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병세에 큰 차도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아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소읍 생레미에 좋은 정신병원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생폴 병원. 이곳은 원래 중세 시대 수도원이었다가 19세기에 들어와 정신병원으로 용도가 바뀐 유서 깊은 곳이다.


고흐는 자진해서 이곳을 찾는다. 지금도 아를-생레미 간은 기차가 없이 버스만 다닌다. 버스로 40-50분 정도 걸리니 아마 한 세기 전이라면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어떻게 거길 갔을까? 아마도 아를-생레미간을 운행하는 마차가 있었을 테니, 그것을 타고 생레미 시내까지 간 다음 마차에서 내려 병원까진 걸어 갔을 것이다.


고흐는 이곳 생폴에서 1890년 5월까지 만 1년간 치료를 받는다. 처음엔 격리되어 감금생활을 하다가 상태가 호전되어 병원 경내와 정원 등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린다. 이곳에서도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1년 동안 150여 점을 그린 것이 그것을 말해 준다. 


그가 여기에서 그릴 수 있는 소재는 많지 않았다. 밤엔 별밤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낮엔 병원 내외의 풍경이나 철마다 피는 꽃(특히 아이리스)를 그렸다. 어떨 때는 나가지 못하는 날이 길어졌다. 그럴 때는 자기 좋아하는 선배 화가(밀레)의 그림을 모사했다. 

 

나의 생레미 일정은 버스에서 내린 생레미 시내의 리퍼블리크 정거장에서 시작되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시 외곽으로 뚫린 직선 도로가 보였다. 그게 바로 생레미 정신병원으로 가는 길이다. 병원까지 가는 1킬로미터 구간은 고흐에게 헌정된 길이나 마찬가지다. 몇 십 미터 간격으로 길바닥에는 '빈센트'라고 새겨진 동판이 보였다. 고흐가 마치 나의 발걸음을 안내하는 기분이었다. 


이제부터 내가 생레미에서 찍은 사진으로 내 친구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보자.




생레미 시내




생레미 시내에서 생폴 병원까지 가는 길. 시내에서 병원까진 1킬로미터 정도로 멀지 않다. 가는 길 곳곳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뚝 서있다. 길 바닥을 잘 보면 고흐의 이름 Vincent를 새겨놓은 동판이 보인다.






생폴 병원으로 가는 길엔 고흐가 이곳에서 그린 그림이 저렇게 세워져 있다. 사진상의 그림과 주변 경치를 보라. 뭔가 유사하지 않은가. 고흐가 그린 풍경 그림은 어떤 것도 그저 머리 속에서 나온 게 아니다. 저런 경치가 없었다면 고흐도 저런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1889), 런던 내셔널 갤러리. 




위의 그림은 바로 이 들판과 산을 배경으로 그려진 것이다. 사진에선 사이프러스가 없지만 과거엔 여기가 밀밭이었을 것이다. 고흐는 밀이 익어가는 황금 들녘에서 사이프러스가 우뚝 서 있는 장면을 보고 저 그림을 그렸다.

 




생폴 병원에서 생레미 시내 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다. 병원과 시내는 불과 1킬로미터! 밤엔 시내 불빛이 이곳에서 손에 잡힐 잘 보였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그 유명한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이 탄생한다.





이제 큰 길에서 생폴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길 좌우엔 소나무가 도열해 있다. 이들 나무 대부분이 고흐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도 버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고흐 자화상(1889)




생폴 병원 경내에 들어서자 벽 한 켠에 고흐의 자화상이 걸려 있다. 그가 이곳에서 그린 것인데, 고흐 자화상 중 대표작이다. 내 책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에도 이 그림을 넣었다. 푸른 색 회오리 붓칠에서 고흐의 불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생폴병원 앞의 신사(1889)




생폴 병원 입구다. 위의 그림도 바로 이곳을 그린 것이다. 아마 고흐가 이 병원에 들어가갈 때의 심정을 그린 것이 아닐까.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니...얼마나 초조했을까.




생폴 병원 앞의 고흐 동상이다. 깡마른 화가가 한 손에는 해바라기, 또 한 손에는 화구를 들고 있다.



생폴병원 복도(1889)




생폴 병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앙에 정원(중정)이 있고 그것을 둘러싼 복도가 있다. 위의 그림은 바로 이 부근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생폴 병원의 주방



고흐는 생폴 병원 2층에 침실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이 침실은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계단이 바로 그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지금 계단 벽에는 고흐가 생전에 이곳에서 그린 그림들로 가득 차 있다. 




별이 빛나는 밤(1889)



여기가 바로 고흐의 침실이다. 작은 방에 철제 침대가 하나 놓여 있고 이젤 위에는 그가 이곳에서 그린 그림 한 점(밀을 수확하는 농부)이 놓여져 있다. <별이 빛나는 밤>도 여기에서 그린 것이다.




고흐 침실 바로 앞 방. 이곳엔 환자들이 사용한 욕조와 의자식 좌변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위의 그림들은 모두 고흐가 생폴에 있을 때 그린 것이다. 특히 위의 두 점은 그림의 시점으로 볼 때 그의 방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그린 것이 틀림없다. 그림 속에 병원 담장이 보이는 데, 지금도 그 담장을 볼 수 있다.




생폴 병원 뒤의 정원이다. 고흐의 방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인데 과거에는 이곳이 밀밭이었던 모양이다.  위 그림에서 본 담장이 보인다.




병원 뒤의 정원이다. 고흐 시절엔 이곳이 한쪽은 밀밭, 또 한 쪽은 나무가 있는 정원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엔 고흐 그림이 한쪽에 도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