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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야기 32 튜빙겐 대학에서 촛불혁명을 이야기하다

박찬운 교수 2016. 11. 25. 18:57

영국이야기 32


튜빙겐 대학에서 촛불혁명을 이야기하다





튜빙겐 구도심 한 가운데를 흐르는 네카르 강에서 본 튜빙겐



이틀 일정(11월 22일-24일)으로 독일 튜빙겐(독일 발음으론 튜빙엔) 대학을 다녀왔다. 튜빙겐 대학! 500년 이상의 역사(1477년 개교)를 지닌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이자 신학, 의학, 인문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이다.


이 대학을 방문한 것은 그 대학 한국학과에서 특별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페이스북 친구인 한국학과 안종철 교수로부터 메신저를 받았다. 영국에 있는 동안 튜빙겐을 방문해서 독일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줄 수 있느냐고.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Sure!"라고 답신을 보냈다.


내가 튜빙겐을 방문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내게 늘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광란의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케 한 인물이다. 그는 나치 시대에 나치즘을 반대했고, 그 광기의 수괴인 히틀러 암살기획에 참여했다가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양심을 꺾지 않았고 급기야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바로 몇 달 전에 처형되고 말았다. 


바로 본회퍼가 이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튜빙겐은 가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본회퍼가 젊은 시절 공부한 곳이 어떤 곳이었을까?


또한 튜빙겐은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공부한 곳이기도 하고 독일 근대철학의 거봉 셸링과 헤겔이 공부한 곳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셀 수 없는 독일의 별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최근 인물로는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이곳에서 신학교수로 일했다. 


튜빙겐은 오로지 튜빙겐 대학을 위한 도시다. 독일에는 이런 대학도시가 하이델베르크, 프라이부르그, 게팅켄 등 몇 개가 더 있는데, 튜빙겐은 그 중에서도 역사와 전통, 배출인물, 도시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에서 경쟁 대학도시를 능가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튜빙겐 대학 본관, 이 건물 내에 법대도 함께 있다. 이 대학의 공식명칭은 Eberhard Karls Universität Tübingen 인데, 에버하르트는 1477년 이 대학을 설립한 이 지역의 백작의 이름이고, 칼스는 1769년 이 대학명칭을 부여한 이 지역 공작의 이름이다.




이 사진은 튜빙겐 대학 본관 건물 안에 들어가자 마자 오른쪽 벽에 붙어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을 런던대학에 있는 독문학 전공자인 이현선 박사에게 부탁하여 번역하였다. 


Freiheit, Dich suchten wir lange
자유, 그대를 우리는 오랫동안 찾았노라

In Zucht und in Tat und in Leiden
훈육하며 행동하며 고통 속에서

Strebend erkennen wir nun
애써서 우리는 이제 인식하네

Im Angesicht Gottes Dich selbst
신의 면전에서 그대 자신을
        - 디트리히 본회퍼

[...사망자 이름들]

In ihrer Jugend Studenten der Universität Tübingen.
청춘의 튀빙엔 대학교 학생들

Gingen sie mit anderen im Widerstand gegen Nationalsozialismus in den Tod.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치즘에 저항하며 죽음 속으로 갔다



11월 23일 저녁 나는 튜빙겐 빌헬름거리(빌헬름스트라세)에 있는 한국학과에 마련된 한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학과 학생들 40여 명과 한국학과 학과장인 이유재 교수와 안종철 교수, 방문학자로 와 있는 윤윤규 박사(노동연구원), 김동훈 교수(고려대)도 강의실 맨 앞에 앉아 있었다.


참고로 튜빙겐 대학의 한국학과는 유럽 대학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교수나 시설의 규모로는 내가 지금 있는 런던대학(SOAS)이 가장 크지만 입학생 수로는 단연 튜빙겐이 앞선다. 튜빙겐 대학이 최근 들어 한국학과에 집중 투자를 한다는 반증이다. 매년 100명 이상의 학생이 한국학과에 들어오고 있고 그들은 3년 과정 중 1년을 한국 대학에 가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대부분 여학생들인데 매우 어른스럽고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튜빙겐 대학 한국학과에서 강의하는 필자



내 강의주제는 세계화와 인권(Globalization and Human Rights). 나는 이 주제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세계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내 영어는 말그대로 Konglish이지만 두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그것이 인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짚어 보았다. 특히 한국인권에 준 영향이 무엇이었는지를 거시적 관점에서, 때론 미시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나아가 이 세계화 시대를 맞이해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인권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았다. 


하지만 이날 강의의 하이라이트는 내가 준비한 강의내용이 아니라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였다. 광화문 촛불집회! 나는 강의 중 참석자들과 함께 유투브 동영상 하나를 같이 보았다. 지난 주 전인권이 애국가를 부른 뒤  한 여성 사회자가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라는 구호를 외치자, 백만 시민의 촛불 쓰나미가 만들어지는 그 장면 말이다. 참석자들의 표정을 보니 한결 같이 놀라움과 함께 비장함까지 읽을 수 있었다.


어쩜 대한민국 대통령이 벌리고 있는 이 막장행위를 해외에 나가 말한다는 게 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왜 촛불집회에 대해 독일학생들에 말하는가? 내가 강의 시간에 말한 내용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보편적 가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사회가 존속하는 한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경험할 문제다. 따라서 이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다.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라도 민주주의와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면 방관하지 말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 공감하고 연대해야 한다. (음.... 맞는 말 아닌가?)


둘째, 한국에서 벌어지는 저 촛불집회는 인류사회에서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비폭력 저항운동이다. 백만시민이 광장에 모여서 촛불을 켰다. 그것도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독재자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얼마나 감동적인 모습인가, 어느 나라에서 저런 비폭력 반독재 투쟁을 볼 수 있는가. 저것은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교과서다.(음... 그렇지 않은가?)


셋째, 한국의 정치지도자는 수치스럽지만 그를 내쫓기 위한 국민의 저항은 영웅적이다. 나치 시대 히틀러를 쫓아내기 위해 백만 독일인들이 베를린에 중심에 모였다 하자, 아니 해외 독일인들이 영국 트라팔가 광장에 모였다 하자,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가? 아니지 않는가?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역사는 독일인들의 그 행위를 영웅적 행위로 찬양할 것이다. 지금 한국과 해외 각처에서 벌어지는 촛불시위는 바로 그런 것이다.(음...과연 그렇지 않은가?)


강의 전후로 안종철 교수의 안내를 받으면서 튜빙겐 시내를 둘러보았다. 시내에서 만나는 건물 중 조금 큰 건물은 모두 대학 건물이다. 안교수는 내가 좋아할만한 곳을 몇 군데 안내했는데, 모두가 나치즘과 관련된 곳이었다.




시내 어딜 가도 곳곳에 이런 표지판이 서 있다. 나치 시대 튜빙겐이 어떻게 나치에 부역했는지 그 역사를 그대로 알리면서 그 시대를 반성하는 내용이다.


튜빙겐은 나치시대 독일 대학 중 나치즘을 선두에 서서 찬양한 대학이다. 대학 역사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였고, 가장 부끄러운 시기였다. 나치 시대 그들은 모든 유태인들을 캠퍼스에서 내쫓았고, 심지어는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순수한 아리안 피를 이어받지 않았다고 의심되는 교수들, 아니 그런 배우자를 둔 교수들 마저 쫓아냈다.


나치즘이 종언을 고한 뒤 튜빙겐 대학이 취한 행동은 그 역사를 드러내 반성하는 것이었다. 튜빙겐 시내 곳곳엔 그 역사의 현장을 숨기지 않고 증거하고 있다. 곳곳에 사진과 설명으로 그 치욕의 역사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대학본관 건물 근처에 서 있는 표지판엔 이 시기 대학을 이끈 나치 부역자 교수들의 이름까지 선명히 새겨져 있다. 바로 이것이 독일인들의 역사인식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그 일본을 대하는 우리는... 어처구니 없이 이루어진 일본군위안부 합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울분보다 서글픔을 느꼈다. 우리도 뭔가 달라져야 하는 데... 도대체 무엇부터 시작하여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역시 독일은 질서의 나라다. 영국과 비교해 매우 다른 한 가지는 교통질서. 영국에선 보행인은, 차가 안 오면 빨간 불이라도, 그냥 걷는다. 독일? 얄짜 없다.  빨간 불이면 차가 없어도 무조건 기다린다. 영국에서 온 나는 몇 번 무단횡단을 감행했다.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 아, 여긴 독일이지!




튜빙겐 구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성에서 바라본 튜빙겐





튜빙겐 구도심의 이곳저곳





독일이 영국보다 확실히 나은 것은 빵이다. 영국에 있으면서 늘 불만 중 하나가 먹을만한 빵집이 제대로 없다는 것이었는데, 튜빙겐에 가보니 빵집이 지천이다. 맛도 좋다.






튜빙겐 대학 한국학과 안종철 교수와 함께, 튜빙겐 고성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