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의 선택을 가로막는 선거법 이대로 둘 수 없다
선거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이 거의 유일하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다. 이 기회마저 놓친다면 지금이 과거의 군주국과 비교해 다를 것이 없다. 마땅히 후보자는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후보자에 대해서 자유롭게 그 의사를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법은 이런 목적 하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법이다. 후보자간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선거운동 일부를 제한할 수 있지만 결코 과도해서는 안 되며 유권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나라의 공직선거법을 읽어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우선 법률내용이 너무 복잡해 선거법 전문가라도 헷갈리기 일쑤다. 후보자들로서는 도대체 어떤 행위가 허용되고 어떤 행위가 금지되는 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위법한 선거운동을 하지 않으려면 사사건건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해야 할 정도다. 만일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특정 후보자의 뒤를 밟으면 백 프로 선거법 위반으로 옭아맬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느 후보자의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돕느라고 “우리 아버지 진짜 훌륭한 분입니다. 이번에 국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거법 위반으로 보고 처벌해야 하는가? 우리 선거법은 처벌할 수 있다. 미성년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아들이 대학생이었다면 저 행위는 적법한 선거운동이 된다.
우리의 선거법이 이상한 것은 후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 유권자 입장에서도 얼마든지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있어야 하는 데 그런 행동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선거철이 되어 과거 의정활동을 토대로 모 후보자는 도저히 국회의원 감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유권자 개인이나 시민단체는 당연히 낙선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잘못하면 형사 처벌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판례도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이미 불법선거운동으로 보지 않았는가.
중앙선관위에서 나온 책자를 찾아보니 적법한 선거운동과 그렇지 않은 선거운동을 설명하고 있다. 그중 하나를 보자. 언론기관과 사회단체는 선거운동기간 전(선거일전 60일 이내)에 예비후보자를 초청해서 대담·토론회를 개최할 수 있을까? 선관위의 유권해석은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회단체가 선거운동기간 전(선거일전 60일 이내)에 경제현안 등 예비후보자의 정견을 알아보는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위 두 토론회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하나는 되고 하나는 안 된다니... 언론기관이나 시민단체에서 후보자를 불러 왜 자유스럽게 그의 정견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선거기간 중 유권자들은 후보자를 자유스럽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오로지 비방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면 그거야 적절하게 제재를 받아야겠지만 근거 있는 의혹마저 제기할 수 없다면 유권자가 후보자를 제대로 선택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선거과정에선 이런 의혹제기도 조심에 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의혹이 제기되면 상대는 무조건 명예훼손 등으로 반격을 가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보라. 나 아무개라는 여성 의원의 딸이 서울의 모 여대에 들어가면서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을 모 언론이 제기했는데, 그 나 아무개는 제대로 된 해명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형사고소부터 했다고 하지 않은가.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우리의 명예훼손이 허위사실을 유포할 때만 적용되는 게 아니고 근거 있는 사실을 적시할 때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금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면 모욕죄가 동원된다. 이러니 아무리 나쁜 후보자가 나타나도 쉽게 비판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유권자의 손과 입을 꽁꽁 붙들어 맨 상태에서 선거가 이루어지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선거는 주권자가 국민임을 확인하는 거의 유일한 기회다. 그것이 지금 불합리한 법률로 말미암아 위기상태에 있다. 후보자의 자유로운 선거운동과 유권자의 자유로운 비판을 옥죄는 법령을 고쳐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제대로 된 정치적 참여의 장을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2016.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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