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결정문 분석(4회-최종)
-결정의 의미와 과제, 법적 측면을 중심으로-
(며칠 간 탄핵결정문을 분석했습니다. 오늘 마지막 글을 썼습니다. 이제 윤석열 탄핵과 관련된 저의 임무는 여기서 끝내려고 합니다.)
이제 윤석열 탄핵결정문 분석을 끝내면서 이 결정이 준 의미와 과제를 주로 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 이 결정은 법적인 차원에서 여러 의미 있는 판단을 내놓았다. 이것은 이 결정을 넘어 헌재의 향후 탄핵사건에서도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이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은 향후 탄핵제도의 운용에 있어서 매우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번 탄핵 결정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원한 적절한 결정이라고 환영받고 있지만 많은 국민은 지금의 헌재가 앞으로도 대통령 탄핵의 최종 결정권자가 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안이 제기될 수 있을까. 오늘은 이들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1. 윤석열 탄핵결정 속에 담긴 법리적 의미
(1) 통치행위의 종언을 고하다
피청구인은 탄핵소추가 되자 우선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행위는 고도의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면서 탄핵심판이 부적법하다고 주장했다. 통치행위론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법치주의의 예외로서 논의가 되었지만 민주화 과정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춘 이론이다. 특히 헌법수호기관인 헌재가 만들어진 이후엔, 이 이론은 헌 책방의 고서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론이 되었다. 그럼에도 12. 3 내란 사태 이후 몇몇 학자들이 이 빛바랜 이론을 다시 꺼내 윤석열을 옹호했으며, 그의 변호인들이 그것을 헌재에서 정면으로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에 헌재는 계엄 선포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행위인 것은 인정했지만, 헌법이 정한 국가긴급권의 발동요건, 사후통제 및 국가긴급권에 내재하는 본질적 한계는 엄격히 준수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탄핵심판절차에서 헌법 및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더 이상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 운운하며 법치주의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헌재의 결연한 선언이며, 통치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독재의 망령과 영원히 작별했음을 뜻한다. 앞으로 어떤 대통령도 계엄을 선포하면서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사법심사를 피하려는 시도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2) 계몽령이란 비상계엄은 존재할 수 없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비상계엄을 헌법과 계엄법에서 규정하는 목적 외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했다. 헌재가 비상계엄 선포행위를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사법적 심사에서 배제할 수 없다고 선언한 이상, 비상계엄의 절차적 요건과 실체적 요건의 판단은 의당 사법의 몫이 되었다. 헌재는 우리 헌법 체제 하에서 계몽성 계엄령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전시 또는 그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발동하는 국가긴급권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명백한 권력남용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탄핵심판은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남용에 쇄기를 박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어떤 대통령도 계엄령을 원래 목적 외에 사용할 수 없다. 목적 외로 사용하는 순간 그는 민주공화국의 영원한 적이 될 것이다.
(3) 신속한 탄핵절차의 디딤돌을 만들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헌재의 탄핵심판이 최고 권력자를 권좌에서 몰아내 헌법을 수호하는 방법으로 본격적으로 이용되었지만 그 절차적 법리는 확고하지 못했다. 이번 탄핵심판은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 탄핵제도의 법리 발달에 크게 기여한 절차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절차적 법리 논쟁에서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된 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란죄 철회를 둘러싼 소추사유 변경과 관련된 법리 논쟁이었고, 또 하나는 탄핵심판에서 전문법칙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의 법리 논쟁이었다. 모두 신속한 탄핵절차 운용을 위한 불가피한 논쟁이었다.
(가)소추사유의 변경에 대한 법리가 정리되다
우선,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해 헌재에 제출한 소추의결서 상의 소추사유의 적용 법조를 국회 재의결 없이 수정, 변경, 추가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다른 측면에선 소추인 측 대리인의 권한의 범위와 한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 내에 국회 소추의결이 이루어지는 경우 소추사유의 법적 평가가 제대로 안 돼 적용 법조가 잘못될 수 있다. 이런 경우 대리인은 소추사유의 기본적 사실관계를 바꾸지 않고 적용법조의 변경을 헌재에 요구할 수 있다면 탄핵심판이 신속을 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마저 국회 재의결 없이는 안 된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탄핵심판 절차를 원활하게 끌고 갈 수 없다.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재의결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탄핵심판은 이 점에 대해 확고한 판단을 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 소추사유의 변경은 국회가 의결한 원래의 소추사유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는 국회의 추가 의결 없이도 가능하다(동일성을 넘는 소추사유의 변경은 국회 재의결이 필요).
2. 헌재는 소추의결서 상의 법규정의 판단에 관해서는 구속되지 않는다.
3. 소추인 측 대리인이 국회가 소추 의결할 당시의 적용 법조문을 철회, 변경하는 것은 국회의 재의결을 거칠 필요가 없다.
이 원칙의 선언은 향후 다른 탄핵사건에서도 절차적 법리로서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국회 측 대리인은 필요한 경우 소추사유의 동일성 범위 내라면 국회 재의결 절차 없이 적용법조를 철회, 변경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나는 국회 소추 의결 당시 표결에 영향을 끼친 적용 법조를 대리인이 제한 없이 철회, 변경하는 것은 헌재의 판단과 관계없이 절차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소추의결서상에 들어간 적용 법조를 변경함에 있어서는 대리인과 국회 간의 사전 협의절차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회법 등에 그 근거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나) 전문법칙의 적용방법이 해결되다
또 하나 탄핵절차에서 전문법칙 적용방법이 해결되었다. 탄핵심판에서 엄격한 형사 증거법(전문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심판절차를 신속하게 끝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을 그대로 적용하면 탄핵심판 절차에 수사기관이 작성한 각종 조서가 와도 피청구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국회 측 입장에선 엄청난 입증 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해당 조서의 진술자를 모두 헌재 심판정으로 불러 처음부터 수사기관에서 조사하듯 다시 물어봐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헌재는 이번 사건에서 탄핵심판이 원칙적으로 형사절차를 준용하지만 탄핵심판의 절차적 특성에 따라 형사절차에서 준수되는 증거법칙은 완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수사기관에서 해당 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적법성이 보장되었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진술과정이 영상녹화된 조서 또는 진술과정에 변호인이 입회하였고 그 변호인이 진술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확인한 조서에 대해서는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국회 회의록의 증거능력 인정으로 연결되었는데, 국회 회의록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이므로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문법칙을 완화시킨 것은 탄핵심판이 원칙적으로 형사절차를 준용하는 절차이기 하지만 신속한 파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선 형사재판의 증거법칙을 그대로 준용할 수 없다는 현실적 고려 때문이었다. 이번에 적용된 전문법칙 완화론을 통해 헌재는 최소한의 공정성을 담보하면서 신속성을 기할 수 있는 탄핵심판의 절차적 토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2. 파면 결정 이후, 대통령 탄핵제도의 미래
헌재가 국민의 압도적인 여망에 따라 8대0 전원일치로 윤석열을 파면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만일 결과가 그렇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혁명적 상황의 누란의 위기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탄핵심판을 경험하면서 대통령 탄핵을 헌재가 맡는 것이 적절한지 많은 사람들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밤을 새며 이제나저제나 헌재의 탄핵 선고를 기다리는 것이 과연 민주공화국다운 헌정질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권자들은 이 모습에서 주권재민의 원칙이 전도되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공화국의 운명을 가를 중대한 문제를 9명의 임명직 재판관들에게 맡기는 87년 헌법체제를 극복하자는 여론이 급격히 높아진 것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두 가지 방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대통령 탄핵의 최종 결정권을 헌재가 아닌 주권자인 국민에 주는 방안이고, 또 하나는 헌재에 대통령 탄핵의 최종 결정권을 계속 주지만 헌재 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방안이다.
(1) 국민투표로 탄핵 여부를 결정하자
대통령 탄핵의 최종 결정권을 국민에게 준다는 것은 탄핵 발의는 국회가 하고, 국민투표에 의해 파면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국민이 직접 뽑았으니 그 파면도 국민이 직접 하자는 것이다. 국회 발의는 지금처럼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이라는 요건이 필요하지만 헌재의 심판 과정이 없는 만큼 국회 조사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국민투표는 단지 대통령의 신임투표로 전락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대통령이 오히려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조사 과정이라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탄핵 발의 전에 조사를 한다면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고려할 때 원활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고 자칫 국회가 대통령에 의해 공격 당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국회 탄핵 발의 후 국민투표 전에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 시키고 조사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다. 이 경우 국회 탄핵 조사특위가 국민투표 전에 탄핵사유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그 결과를 발표한 다음 국민투표를 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2) 헌재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자
헌재가 대통령 탄핵을 계속 맡는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당파적 재판관 구성은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물론 이것은 꼭 대통령 탄핵만 염두에 둔 것이 아니고 헌재의 다른 기능도 염두에 둔 것임). 지금의 헌재는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무엇보다 재판관 구성에서 정치권의 영향이 너무나 크다. 9명의 재판관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이 나누어 지명, 선출해 임명하기 때문에 헌재를 사법기관이라기 보다는 정치기관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헌재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헌재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높인다는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위해서는 몇 가지 구체적 방법론적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하나는 헌재를 정치권에서 가급적 최대한 해방시켜야 한다. 지금과 같이 정치권이 직접 개입해 재판관을 임명하는 방식은 안 된다. 둘째 재판관의 임기는 가급적 대통령의 임기와 다르도록 해 대통령 입김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제 국가에선 대통령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헌재 구성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대통령 임기 중에 재판관 대다수가 임명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셋째, 헌재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 헌재를 특정 성이 독점해선 안 되고 법률가로 전원 구성돼 국민의 생각과 유리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위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획기적으로 추첨식 추천 임명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리스식 직접민주주의를 현대판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고대 아테네는 폴리스의 주요 공직자를 추첨식 임명방식(클레로시스)으로 했는데, 이는 시민들에게 공평한 정치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부패와 엘리트층의 정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였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우리 제도에 접목하면 지금 헌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상당한 정도 개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현대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선 재판관의 전문성이 있어야 하므로 그것을 추첨 방식에 어떻게 수정 접목시키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나아가 현대의 성평등을 중심으로 한 다양성의 인권의식을 헌재 구성에서도 구현해야 하는 일이 과제다. (이에 대한 구체적 방법은 필자의 아래 글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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