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결정문 분석(2)
-알기 쉽게 설명하는 탄핵 전문법칙-
(당분간 쉬려고 했지만 쉬는 버릇이 안 돼 새벽부터 탄핵결정문을 읽으며 관심 분야 글을 하나 썼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탄핵 뒷 처리입니다. 이 글은 좀 깁니다. 관심 있는 분들이 아니라면 지루할 수 있습니다.)
이번 윤석열 탄핵심판에서 여러 가지 법적 쟁점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 것 중 하나가 증거법칙, 곧 전문법칙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이것까지 꼭 알 필요는 없지만 탄핵 결정문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은 이 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주 알기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제가 인권법 교수지만, 주 연구 영역이 형사절차에서의 인권이고 한동안 형사소송법을 강의한 경험까지 있기 때문에, 형사증거법은 항상 제 관심 분야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번 탄핵 사건에서도 이 분야가 어떻게 정리될지 눈여겨보아 왔습니다.
1. 탄핵심판 절차의 증거법칙은 무엇이고 전문법칙은 무엇인가
헌법재판소법상 탄핵 심판은 기본적으로 형사소송 절차를 준용토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탄핵 심판에서의 사실인정은 형사소송 절차에서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법칙이 원칙적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형사절차의 증거법은 범죄사실을 인정함에 있어 매우 엄격한 증거를 요구합니다. 형사재판으로 사람이 죽고 살 수도 있으니 안 그렇겠습니까, 오염된 증거로 사실을 인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형사절차에서 오염된 증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가장 중요한 원칙이 전문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우선 이것을 알아야 이번에 문제된 증거 논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문법칙을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법학도도 이것을 공부할 때 혼란을 많이 느끼니까요. 이해하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증거법이 우리 법체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문법칙은 영미법의 배심재판에서 생긴 원칙이거든요. 우리나라 형사절차는 배심재판이 아닌 전문법관에 의한 재판이라 이 증거법칙을 적용하기가 원래부터 쉽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이 법칙의 이해도가 법률가 사이에서도 그동안 매우 달랐습니다. 그러니 전문법칙이 무슨 말인지 당최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씀하신다 해도 특별히 이상할 일이 아닙니다.
전문증거(傳聞證據, hearsay evidence)는 '원진술자가 법정에 나와 직접 증언하지 않고 그 사람이 예전에 했던 말이나 글을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 바로 그 말이나 글’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A가 B에게 “C가 D를 살해했어”라고 말했는데, B가 법정에 나와 그 말에 근거해 C(피고인)가 살인 범인이라고 증언한다면, B의 증언은 A(원진술자)의 진술을 근거로 하는 것이므로 전문증거입니다. 이런 증거를 그대로 증거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안 되겠지요. 이 증거는 A로부터 들은 것이라 A를 직접 (반대) 신문하지 않고서는 신빙할 수 없지요. 따라서 이런 증거는 증거로 받아주지 않는 원칙이 바로 전문법칙입니다.
이것은 법정에 제출되는 각종 서류 증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의 예에서 원진술자인 A가 수사기관에서 (참고인) 조서를 작성한 뒤, 검찰이 그것을 법정에 증거로 제출한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도 원진술자 A가 법정에 나오지 않은 것이라 피고인 C가 신빙성을 다툴 수가 없습니다. A에게 반대신문을 하지 못하는 한 증거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위 두 예에서 알 수 있듯 전문증거를 배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두 예 모두 피고인 C가 A에게 직접 반대신문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2. 우리나라 전문법칙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우리나라 형사절차에서는 이러한 전문증거를 배제하기 위해 형소법에 자세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경찰, 검찰에서 피의자나 참고인을 상대로 조사하면서 작성한 조서(피의자신문조서, 참고인조서)의 증거능력입니다. 우리 형소법은 일단 전문증거에 해당하는 증거는 증거능력을 배제하고 일정 요건이 충족되는 것을 전제로 증거능력을 예외로 인정합니다. 즉 조서가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예외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문법칙을 규정한 각각의 조문이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헌재 결정문의 해당 부분을 인용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형사소송법은 전문법칙을 채택하여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원칙적으로 부정하면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다(형사소송법 제310조의2, 제311조 내지 제316조). 특히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서는 그 피의자였던 피고인이 그 내용을 인정해야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수사기관이 피고인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나 수사과정에서 피고인 아닌 자가 작성한 진술서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반대신문이 보장되는 경우에 한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다(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 제3항, 제4항, 제5항).”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더 알 필요가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당해 피의자였던 피고인이 그 내용을 인정해야 증거능력이 있는데, 이때 자신의 피의자신문조서뿐만 아니라 그 피고인과 공범 관계에 있는 다른 피고인이나 피의자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형소법 규정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닌데 최근 대법원의 판례(대법원 2023. 6. 1. 선고 2023도3741)로 확립된 것입니다. 이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피고인이 관련된 공범들 피의자신문조서를 법정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그 조서는 휴지가 된다는 의미이니까요.
3. 탄핵심판에서는 형소법의 전문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가?
그러면 탄핵심판에서 위에서 말한 엄격한 형사 증거법(전문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까요? 이것을 그대로 적용하면 탄핵심판 절차에 수사기관이 작성한 각종 조서가 와도 피청구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으니 국회 측 입장에선 엄청난 입증 부담이 생기는 겁니다. 해당 조서의 진술자를 모두 헌재 심판정으로 불러 처음부터 수사기관에서 조사하듯 다시 물어봐야 하거든요. 그러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또 일부는 안 나온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것과 관련해 이번에 헌재에서 아주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피청구인 측에선 이것을 집중적으로 거론했거든요. 헌재가 수사기관으로부터 받은 각종 조서(특히 공범 관계에 있는 피의자들의 신문조서)에 대해 피청구인은 모두 (내용을) 부인했으니 그들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헌재는 심리 과정에서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자 피청구인 측은 심리가 끝난 뒤에도 이 문제를 언론 등에 공개하며 헌재의 사실인정에 위법이 있다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피청구인을 옹호하는 일부 법학자들이 이것을 이유로 국회 측의 소추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요.
이에 대한 헌재의 입장은 심리 과정에서 일부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번 탄핵결정문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헌재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전문법칙 적용 완화론과 강화론으로 나뉘어 내부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 논의는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뿐만 아니라 향후 탄핵사건에서도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잘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헌재는 형소법의 증거법칙 적용 문제에 관해 어떤 원칙을 정했을까요? 결정문 전체의 결론은 완화론 입장에서 정리했지만 이제까지 이 문제에 대해 헌재의 입장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화론을 대표해 이미선, 김형두 재판관이, 강화론의 입장에서 김복형, 조한창 재판관이 보충의견을 썼습니다.
이 두 입장은 비록 전문법칙 적용과 관련해 강온의 의견대립이지만 탄핵절차가 형사소송 절차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형소법상의 전문법칙을 그대로 탄핵심판절차에 준용할 수는 없다는 점은 공히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즉 고위공직자의 헌법 내지 법률 위반 여부와 공직으로부터의 파면 여부를 심판대상으로 할 뿐 형사상 책임 유무를 심판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국가형벌권을 실현하는 형사소송절차와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다만 완화론은 탄핵심판의 신속성을, 강화론은 탄핵심판의 공정성을 강조하면서 형소법 전문법칙 규정의 준용 정도를 달리했습니다.
4. 완화론과 강화론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이번에 문제된 전문증거는 크게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내란죄 관련 사건의 경찰, 검찰, 공수처 작성의 조서(피의자신문조서, 참고인조서), 또 하나는 12. 3. 내란 이후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 등의 의사록.
(1) 수사기관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등
이들 증거 중 수사기관 작성 조서에 대해선 전문법칙 완화론(이것이 이번 법정의견에서 채택된 의견임)은 수사기관이 작성한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등은 절차의 적법성이 담보되는 조서, 즉 진술과정이 영상녹화된 조서 또는 진술과정에 변호인이 입회하였고 그 변호인이 진술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확인한 조서에 대해서는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번 내란 사건 피의자들은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대부분 변호사 입회 하에 진술을 했기 때문에, 이 입장으로 보면 이들 증거가 모두 탄핵심판 절차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완화론의 입장을 꼼꼼이 보면서 하나 문제로 느낀 것은 이 견해가 스스로 형소법 제312조 제4항 준용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제4항 속에 나오는 반대신문권의 보장 요건에 대해 특별한 설명이 없다는 점입니다. 312조 3항의 일부 준용이라면 그 논거를 분명하게 밝혔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수사기관 작성 피의자신문조서 등에 대해 전문법칙 강화론은 약간 다른 입장을 취했습니다. 피청구인이 부동의한다고 해서 다 증거능력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반대신문권은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취했거든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경우에는 형소법 제312조 제4항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사기관 작성의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등은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4항에 따라, ①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되었을 것, ② 그 조서가 수사기관 앞에서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음이 ㉠ 원진술자의 변론준비 또는 변론기일에서의 진술이나 ㉡ 영상녹화물 또는 ㉢ 그 밖의 객관적인 방법에 의하여 증명되었을 것, ③ 피청구인 또는 변호인이 변론준비 또는 변론기일에 그 기재 내용에 관하여 원진술자를 신문할 수 있었을 것, ④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되었을 것이라는 요건을 갖추어져야 한다, 이러한 입장을 취한다면 피청구인의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아니한 일부 조서의 경우에는 증거능력이 부인되어야 할 것이다.”
즉, 이 말은 이번에 수사기관으로부터 받은 피의자신문조서는 그 조서의 진술자가 헌재 심판정에 직접 증인으로 나와 자신의 조서의 작성에 대해 진정성립을 인정하고, 피청구인 측으로부터 반대신문을 받았으면 그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지만, 조서만 제출되고 해당 진술인이 나오지 않은 경우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의견은 이번 사건에서 적용된 것은 아니고 앞으로 그렇게 하는 게 좋다는 의견입니다.
결국 이번 탄핵결정문에 나타난 (수사기관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등과 관련한) 전문법칙 완화론과 강화론의 결정적 차이는 반대신문권의 보장 여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화론은 조서가 절차적 적법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만들어졌다면 증거로 인정하자는 것이고, 강화론은 그것만으론 부족하고 피청구인에게 반대신문권까지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의 현실적 차이는 완화론은 해당 조서의 진술자를 헌재로 부르지 않아도 되지만 강화론은 모두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신속하게 탄핵사건을 처리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신속도 중요하지만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저도 지금 당장 결론을 낼 수는 없습니다. 좀 더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2) 국회 의사록
다음으로 국회 의사록의 경우 완화론은 형소법상 전문증거의 예외인 ‘기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형소법 제315조 제3호)로 보아 증거능력을 인정하자는 것이고, 강화론은 국회 회의가 형사법정과 같은 대심적 구소에서 관련자들의 진술이 당사자에 의해 탄핵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법칙의 예외로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 또한 탄핵심판의 신속성과 공정성에 관한 견해 대립인데, 저로선 강화론은 현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과도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탄핵이라는 것이 최고위 공직자에 대해 국민의 대표기관이 국회의 소추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라 그 자체로 무고의 가능성이 적고, 그 성격이 유무죄를 결정하는 재판이 아니고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징계절차이며, 원칙적으로 전 국민이 볼 수 있는 매우 신빙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전문법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형소법 규정을 그대로 준용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 강화론의 한 가지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적극적 대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국회 회의록을 탄핵심판절차에서 증거로 채택함에 있어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3호를 그대로 적용하기 곤란하다는 점을 밝혀둔다”라고 말하고 끝나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국회의사록은 전문증거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조건 하에서 증거능력이 있다는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다른 조건 하에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제안하지 않은 게 아쉽군요. 그런 측면에서 미완의 제안이라고 봅니다. (20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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