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세상 이곳저곳

강릉에 가면 꼭 가봐야 할 두 곳

박찬운 교수 2024. 7. 20. 16:57

많은 여행기를 써 왔지만 국내여행기는 많이 쓰지 못했다. 내 게으름도 한몫했겠지만 내가 아니더라도 쓸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산천에도 볼거리는 많다. 외국 여행지에서 느끼던 감동 이상의 감동을 받는 곳은 수없이 많다.
며칠 전 강릉을 다녀왔다. 가족 여행이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따라다니기만 했다. 눈 호강보단 그저 맛집기행이나 한다는 생각을 가지니 그것도 꽤 재미 있는 여행이었다. 한국은 여기저기 맛집이 많다. 어딜 가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이 있고 그것들은 예외없이 내 입을 호강시킨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눈 호강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눈 호강도 했다. 강릉에서 이런 볼거리를 만날줄 몰랐다. 집에 돌와 와 찍은 사진을 살펴보다가 내게 눈호강을 시켜준 두 곳은 기록해 둘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성목 영화박물관, 참소리 박물관, 에디슨 박물관
강릉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경포 호수다. 비오는 날 경포 호수를 갔다. 수 년 전 이곳에 왔을 때와는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이제는 호수 주변의 공사가 끝났는지 호숫가 산책로는 조용하면서도 운치가 있었다. 호수에 붙어 있는 가시연습지에서 피어오른 하얀 연꽃이 빗방울을 머금은 채 청초한 자태를 부끄러운듯 보여주고 있었다. 왜가리인듯한 새 한 마리가 호숫가 나뭇가지에 살짝 앉아 있는데 그 자태가 요염하면서도 고고하다. 

경포 호수와 붙어 있는 가시연습지
경포 호숫길을 걷다가 우연히 왜가리를 만났다. 요염하면서도 고고하다.

 
경포 호수를 걷다가 호숫가에 있는 박물관을 들어가기로 했다. 강릉의 명소라고 알려진 사립박물관인데 나는 여직껏 방문한 적이 없다. 잠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손성목이란 분이 50년 이상 사재를 털어 수집한 것을 박물관을 만들어 공개한 것이라 한다. 외관은 그저 값싼 시멘트 콘크리트 건물에 불과해 그 속에 무슨 대단한 소장품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박물관에 들어갔다.

박물관은 세 개로 구성되어 있다. 참소리 박물관은 축음기 박물관이고, 에디슨 박물관은 에디슨이 발명한 가전제품 박물관이며, 영화박물관은 영화 관련 기기와 자료를 전시한 곳으로 세 개 박물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영화박물관
영화박물관에는 영사기를 비롯한 영화 제작에 필요한 기기와 영화관련 자료가 천지사방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다.

 

영화박물관 지하에는 참소리영화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 영화를 직접 관람할 수도 있다.

기대하지 않고 들어간 박물관에서 눈이 휘둥그레질듯한 소장품을 연신 만나자 내 입에선 탄성이 절로 흘러 나왔다. 건물 외벽에 써진 '세계 최고의 영화박물관'이란 글자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아는 것은 단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손성목 관장이 세계 30여 개 국을 돌아다니며 모은 1만 5천여 점의 희귀 영화 관련 물품과 2만여 점의 부속자료를 전시한 세계 제1의 박물관이라는 것이다. 자료를 훓어보니 손 선생의 자부심도 보통이 아니다. 세계 이곳저곳에 영화박물관이 있지만 소장품의 양과 질에서 이곳과 비교할 수 있는 곳은 없다는 것이다.

원래 손성목 선생(1943년 생)은 함경도 원산 분인데 6세 때에 아버지로부터 축음기를 선물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소싯적부터 축음기 수집에 나섰다고 한다.

손성목 선생이 6살이 되던 해 선친으로부터 선물 받은 축음기. 이 축음기에서 시작된 축음기 수집이 지금의 참소리박물관을 비롯 손성목 영화박물관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다.
참소리박물관, 이곳에는 에디슨의 축음기를 비롯해 수 백 점의 축음기가 전시되어 있다.

 
축음기의 역사는 에디슨에서 시작된 것이라 에디슨 발명의 축음기를 열심히 모았고 거기에서 에디슨의 다른 발명품까지 수집 대상이 넓혀졌다. 1백 년 전에 세상에 나온 에디슨 축음기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생산한 축음기가 손 선생의 소장 목록에 올라왔고 그것이 수 백, 수 천 점에 이르렀다.

에디슨 박물관에는 에디슨이 발명한 수백  개의 에디슨 전구와 녹음기 심지어는에디슨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전기(밧데리) 자동차로 전세계 단 두 대밖에 없다는 자동차까지 전시되어 있다.

영화에 특별한 관심이 많았던 손 선생은 영사기를 비롯해 영화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영화제작 기기와 관련 자료를 모아왔다. 전부 합치면 그 수가 자그만치 수만 점에 달한다. 이곳에선 영화사에 길이 남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찍은 카메라도 볼 수 있다. 이 영화 관련 수집품이야말로 손선생 말대로 세계 최대, 세계 최고의 컬렉션이라 할 수 있다.

에디슨 박물관, 이곳에는 에디슨의 각종 발명품이 수집되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세 개에 전시되어 있는 수집품의 종류와 갯수는 한마디로 압도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곳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소장품을 전시한 박물관이 아니라 입추의 여지가 없는 박물관 수장고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이런 정도의 소장품을 제대로 전시한다면 박물관의 면적은 지금보다 적어도 3-4배 정도는 커야 할 것이다.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나는 한 인간의 광적인 수집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수천 수만의 소장품을 한 인간이 모을 수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그 의지는 어디서 나왔을까? 이것을 모은다고 해서 돈이 되는 것도, 큰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닐텐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런 무지막지한 수집을 할 수 있게 한 것인가. 전시물을 보면서 경탄과 함께 나오는 의문이다.

이것이 전 세계에서 두 대밖에 없다고 하는 에디슨의 전기자동차이다.

 
수집가들의 집요한 수집 열정은 나같은 범부는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잘 아는 고 최영도 변호사님은 수 십년 동안 토기를 모았다. 수 십억원의 돈을 들여 사라져 가는 고대 토기 2천 여 점을 모은 다음 그것을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고 돌아가셨다. 어떤 진귀한 토기는 집 한 채 값이라고 하는데 재벌가의 후손도 아님에도 그런 정도의 수집을 해 아낌없이 국가에 헌납한 것에 나는 항상 경의를 표해 왔다. 그런데 오늘 강릉에서 그 이상의 사람을 만난 것이다. 손성목 선생의 노고와 헌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사립박물관의 한계가 역력함을 발견했다. 알아보니 이 박물관 건물은 손 선생의 소유가 아니라고 한다. 강릉시의 지원을 받아 지어진 강릉시 소유의 건물이다. 평생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진 것을 다 털어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소장품은 수집했으나 이것을 온전히 전시할 공간은 스스로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손 선생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의 일은 다른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나서서 이 소장품을 제대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수집가의 뜻을 계승할 수 있는 획기적인 지원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슬라 아트월드
강릉에서 정동진까지 해안도로를 타고 차를 몰면 정동진 바로 못미쳐 오른쪽 산자락에서 화려한 건물 하나를 발견한다. 그것이 복합예술공간 하슬라 아트월드. 이곳은 동해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뮤지엄 호텔, 현대미술관, 피노키오박물관, 레스트랑, 카페, 야외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하슬라는 강릉의 옛지명.

 

하슬라 미술관
하슬라미술관에는 직경 2-3센티미터의 금속관을 사용해 별천지 숲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회색의 대나무 숲인줄 알았다가 가까이 가보니 금속관이었다.

 

넓은 부지에 설치 작품이 잘 조성되어 있다.

 
여유가 있다면 이곳에서 일박을 하면서 새벽엔 동해 일출을, 낮엔는 이곳의 뮤지엄과 공원을 빠짐없이 감상하고, 전망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품격 있는 식사와 차 한잔을 마시면 좋을 것이다. 그런 여유가 없다면 미술관을 관람하고 바다가 잘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는 것만으로도 강릉에 온 보람은 있었다 생각할 것이다. 

이곳은 미술가인 최옥영, 박신정 부부가 공동으로 일군 예술공간이다. 3만평이 넘는 넓은 대지 위에 이들 부부의 작품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건물 외관은 직경 2-3센티미터의 금속 파이프를 활용해 마치 별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신묘한 숲을 만들어 놓았다. 동해를 바라다 볼 수 있는 곳곳이 포토존이라 찍는 사진마다 인생샷이다. 정동진을 가는 경우 이곳을 빼놓고 지나쳤다면 두고두고 후회할지 모른다.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