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던 월 Dawn Wall>

박찬운 교수 2020. 8. 9. 07:02

 

 

 

 

 

 

계속 비가 온다. 역대 최장 장마가 될 것 같다는 기상예보다. 전국적으로 많은 피해가 속출했다. 산사태가 나고, 길이 끊어지고, 인명피해가 줄을 잇는다.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이 눈에 아른거린다. 하루 빨리 해가 뜨고 복구되어 일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연휴 5일째. 재난상황에서 피서를 떠날 수 없어 그저 집에서 책이나 보다가 머리가 아플 때면 영화를 본다. 어제 밤, 오래 전에 찜해 놓은 비장의 영화 한편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극영화가 아닌 등반 다큐 영화. 2017년 작 <던 월 Dawn Wall>.


살다보면 무료한 때가 있다. 내가 왜 사는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 때 남대문시장에 나가보면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의 그 치열한 삶을 옆에서 지켜만 봐도 나의 삶이 얼마나 나태한지, 내가 얼마나 감사함을 모르고 사는지... 집에 들어올 때쯤이면 신발 끈을 동여 맨다. 나도 억척같이 살아보자!

또 이럴 때 팽팽한 긴장감을 전해주는 산악영화 한편을 보는 것도 좋다. 화면에서 눈을 떼질 못하고, 심장은 멎고, 손바닥에선 연신 땀이 흐른다. 이런 시간이 단 몇 분만 지속되어도 그 영화는 오래 동안 기억 속에 남는다. 그런데 상영시간(100분)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면? 이 정도가 되면 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이야기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내가 보는 그 화면이 사실 그대로를 찍은 것이라면... 그 긴장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던 월>은 산악영화의 정수 <K 2>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영화다. K2는 산을 정복하고 환희에 찬 상태에서 돌아오다 조난을 당한 친구를 버리지 않고 다시 돌아가서 구해 오는 친구의 이야기다. 보는 이마다 산사나이들의 의지와 우정에 박수를 보내고 그 강렬한 화면이 길게 머릿속에 각인된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어느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가공의 이야기다. Man Made Story! 그 보다 몇 배의 긴장감 속에서 인간승리와 우정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Man Made History!

 

 

 

 

토미 칼드웰(1978년 생)

 

 

 

현존하는 최정상 암벽 등반가는 단연 미국의 토미 칼드웰(1978년 생)이다. 그는 어린 시절 인지능력 부족으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기 어려웠다. 그에게 꿈과 의지를 심어준 선생님은 바로 아버지. 등반가인 아버지는 그가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산으로 데려가 암벽등반을 시켰다. 그렇게 해서 소년 시절 이미 암벽등반 분야에선 독보적인 인물이 되었다.

세상사는 순탄하지만은 않은 법! 그의 앞에 몇 가지 사건이 터진다. 하나는 볼더링 대회에서 우승한 대가로 훈련 차 갔던 키르기스탄에서 반군 이슬람세력을 만나 인질이 된 것이다. 토미는 일행과 함께 도주를 기획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들을 지키는 반군 한 명을 낭떠러지에서 밀어 살해한다. 살기 위해 살인을 한 것이지만 토미에겐 큰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그것이 토미를 더욱 산으로 몰아 부쳤다. 산만이 유일하게 그를 위로해줄 수 있는 존재였다.

또 하나의 사건은 동반자인 베스와의 이혼. 그 둘은 산에서 만난 암벽등반 커플이었다. 함께 키르기스탄에 가서 사지를 벗어나온 운명의 동반자... 그런 커플도 언젠부터인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베스가 토미를 떠난 것이다. 토미의 상심은 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그의 삶 전체를 뺏는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베스와 살면서 엄청난 사고를 경험한다. 둘이 사는 오두막을 짓는 과정에서 전기톱에 왼손 검지 손가락을 잘린 것이다. 의사는 이제 암벽등반은 포기하라고 조언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 세계 최고의 암벽등반가는 이렇게 막을 내리는 것인가... 그러나 토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더 높은 산, 더 높은 암벽에 도전하는 것으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던 월에 올라가는 토미

 

 

 

그렇게 해서 새로운 도전 장소로 결정된 것이 요세미티의 <엘 카피탄> 그 중에서도 여명의 벽이라고 불리는 던 월(Dawn Wall). 엘 카피탄은 914미터의 직벽으로 세계 최고의 암벽등반가들만이 도전할 수 있는 암벽이다. 그 중에서도 던 월 루트는 어느 누구도 발을 디디지 못한 불가능의 루트. 구간구간 바늘 같은 틈새도 허용하지 않는 이 암벽의 특징 때문이다. 토미는 바로 이곳을 등반하기로 결심한다.

수년간 이곳을 등반하기 위해 루트개척을 외롭게 하는 과정에서 토미에게 새로운 등반친구가 생긴다. 토미를 우상으로 알고 볼더링(10여 미터의 돌출 암반을 특별한 장비 없이 오르는 행위)을 해온 케빈 요거슨(1984년 생). 그 또한 이미 볼더링 분야에서 각종 상을 휩쓴 최고수준의 등반가. 하지만 그는 토미와 같이 거벽을 탄 일이 없다. 둘은 몇 년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요세미티에 와서 던 월 공략을 위한 루트개척 및 훈련에 임한다.

 

 

 

 

케빈 요거슨(1984년 생)

 

 

 

드디어 2015년 해가 밝았다. 두 사람은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는 아니지만 던 월의 등반을 시작한다. 처음엔 아는 사람 몇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산 아래에서 이 둘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 세기적 도전은 곧 언론에 알려져 미국의 주요방송이 생중계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로써 총 19일의 악전고투의 일정이 전 세계에 송출되어 암벽등반의 꿈을 안고 사는 산악인뿐만 아니라 인간한계의 도전을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절대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중간 지점까진 잘 올라갔다. 그러나 연습과정에서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구간인 피치15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 구간은 직벽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약 90미터를 옆으로 이동해야 한다. 정말 바늘 하나 들어갈 틈새도 없는 구간을 이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미친 짓이다. 전 세계 어느 암벽등반가도 성공하지 못한 난공불락!

 

 

 

난공불락의 구간 피치 15를 건너지 못하고 손가락을 다친 케빈...과연 그가 그 구간을 넘을 수 있을까...

 

 

 

그러나 수십 번의 실패를 무릅쓰고 토미가 해냈다. 다음 차례는 케빈. 케빈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케빈은 토미처럼 거벽 등반을 한 경험이 없는 산악인이다. 역시 케빈은 토미의 뒤를 바로 따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수백 번의 시도가 이어졌지만 실패의 연속...이렇게 이틀이 지났다.

 

 

 

피치 15에 도전하는 케빈

 

 

 

케빈은 마음을 정리했다. 자신은 포기하고 토미가 정상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자고. 토미도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위로 올라간다. 던 월에서 인간이 유일하게 자일에 의존하지 않고 서거나 앉아 있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바로 와이노 타워. 여기까지 온 토미는 아래에 있는 케빈을 본다. 과연 나 혼자 정상으로 올라가야 하는가. 케빈과 함께 가야 하는가... 결론은 케빈과 함께 정상을 가는 것. 기다리고 도와주는 며칠이 흐른다. 드디어 케빈이 절대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피치15를 건넜다. 기립박수!!!!


이렇게 해서 역사적인 앨 캐피탄 던 월은 두 사나이에 의해 등정되었다. 세계 암반 등정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다. 불굴의 정신으로 무장한 토미와 케빈. 이 둘의 우정도 기록될 것이다.

그 보다도 이 영화를 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겐, 발달장애인 아들을 키운 토미의 가족 그리고 토미의 두 여인(첫번 째 아내 베스와 두 번째 아내 베스)의 사랑에서 진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영화상영이 끝나고 막이 올라갈 때쯤이면, 나도 뭔가를 해야 해! 이런 결심이 자연스레 설 것이라 믿는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