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교수가 로펌 의뢰의 의견서 작성할 때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박찬운 교수 2023. 7. 9. 03:46

 

 
교수가 로펌 의뢰의 의견서 작성할 때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권 모 교수의 의견서 작성 건을 통해 향후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논의와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로펌이 의뢰에서 돈을 받고 의견서를 써준 것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그들은 이렇게 반론한다. ⓵학자가 학술적인 입장을 법원에 의견서로 내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⓶학자가 학자적 양심에서 자신의 학술적 입장에 부합한 법률문제에 의견서를 작성해 법원에 내는 것은 선진국에서 하는 일이다. ⓷학자가 자신의 소신과 달리 로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의견서를 작성하지 않는 한 문제는 없다.
 
물론 학자가 특정 사건에서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론에 불과하고 이번 일의 적절성은 그것으로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그 적절성을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학술적 입장 개진의 방법에 문제는 없는가? 특정 로펌이 학자에게 의견서를 의뢰하는 것은 기존 선례나 학술적 견해가 충분치 못할 때이다. 이런 경우 학자가 쓰는 의견서는 그 내용이 전문적이라고 해도 그것을 학술적 견해라고 보긴 어렵다. 주문자의 의도에 따라 돈을 받고 써준 의견은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자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런 행위를 영리업무(영업행위)로 볼 수 있는가? 백보를 양보해 로펌이 의뢰하는 의견서를 써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교수가 해서는 안 되는 영리업무라면 문제가 크다. 교수는 관련법(이번 일은 서울대법, 사립학교법, 국가공무원법 등이 문제 됨)에 따라 교수의 본업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나 총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 한 번 의견서를 써주면 기본이 수천만 원이고 이런 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매년 교수 연봉보다 많은 경우라면 영리업무를 해왔다고 볼 여지가 크다. 이것은 특정 대학에 몸담고 있다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일종의 투잡(two job)을 뛰었다는 말이니 겸직의무를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일을 기회로 로스쿨(법대 포함) 교수사회에서 의견서를 작성하고 금전을 수수하는 관행에 대해 건설적 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 법학자가 학술적 견해를 의견서로 작성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사무소의 의뢰에 의해 작성할 수도 있지만 위와 같은 문제에 걸리지 않으려면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고민 끝에 우선 이런 기준을 제시해 본다.
 
1. 공익사건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을 제외하고는 특정 법률사무소의 의뢰에 의해 돈을 받고 특정사건 관련 의견서를 작성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해야 한다.
2. 법원에 계류된 특정사건과 관련해서 제출하는 의견서는 원칙적으로 법원의 요청을 받고 작성해야 한다. 이 경우 그 사건의 의뢰인과의 개인적인 접촉은 삼가야 한다.
3. 어떤 경우라도 의견서 작성에 일정 금액(예컨대 5백만원 혹은 1천만원) 이상을 받는 경우엔 학교에 신고하고 학내의 연구비 지급절차에 따라야 한다.
 
(2023.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