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특정 로펌의 요청에 따른 교수의 의견서 작성의 문제점

박찬운 교수 2023. 7. 8. 04:53
특정 로펌을 위해 로스쿨 교수가 큰 돈을 받고 의견서 작성을 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로스쿨 교수가 특정 로펌에 의견서를 써주고 거액의 돈을 받는 행위는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중대한 문제다.
 
우선 이런 일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은 대체로 이런 것이다. ⓵로펌에서 특정 사건을 처리하는 데 사건의 승패를 좌우하는 법률문제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문제에 대해 특별한 선례가 없다. ②로펌은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해서 권위 있는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그 분야 전문가인 어느 교수를 찾아냈다. ⓷로펌은 그 교수에게 법적 문제에 대해 로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의견서 작성을 의뢰한다. ⓸ 그 교수는 돈을 받고 로펌이 원하는 의견서를 써주고, 로펌은 그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한다.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교수가 의견서를 써주는 행위는 공적기관이 특정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의뢰해 만들어지는 의견서 작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나도 이런 의견서는 많이 써보았고 작성 후에는 일정 금액(보통 기십만원 정도) 작성료를 받은 바 있다. 공적기관에서 요청하는 의견서는 전적으로 전문가의 입장을 묻는 것이므로 기관의 의도와 관계없이 소신껏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로펌이 의뢰한 의견서 작성은 위의 메커니즘으로 작성되는 의견서이기 때문에 전문가라 할지라도 로펌의 입장에 맞출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로펌이 거액의 돈까지 주면서 불리한 의견서 작성을 의뢰하겠는가.
 
이와 같은 상황을 이해한다면 로스쿨 교수가 특정 로펌의 의뢰에 따라 의견서를 작성하고 돈을 받는 것은 일종의 영리 행위이다. 로펌은 그 특정 교수의 권위(여기에서 권위는 그 교수가 재직하는 학교와 관련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학벌주의와 직결되어 있다.)와 전문적 지식을 돈으로 사는 것이고, 교수는 그것을 파는 것이다.
 
국립대학의 교수이든 사립대학의 교수이든 관련 법률에 따라 동일한 의무가 있다. 그것은 교수로 재직하면서 영리 목적의 업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가 있다. 기업의 사외이사를 하는 경우인데, 이때는 학교의 사전 승낙이 있어야 한다. 위와 같은 영리 목적의 의견서 작성과 관련해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입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번 문제된 대법관 후보의 특정 로펌을 위한 의견서 작성은 영리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후보자가 변호사로 일하는 사람이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특정 법률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로 알려진 변호사라면 특정 로펌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의견서를 써주었다고 해도 누가 문제를 삼겠는가. 변호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팔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보자가 변호사로서 써준 것이 아니고 특정 로스쿨의 교수 이름으로 의견서를 써주고 돈을 받았다면 영리행위를 금하는 관련 법률(이번 건은 서울대법 제15조, 동법에 의하면 서울대 교직원은 교직원의 복무 등과 관련하여 사립학교법을 준용받음)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특정 로스쿨 교수들의 이런 행위에 대해서 심각한 반성과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수가 좋은 논문과 책을 써 다른 법률가(법관 포함)들이 사건 처리에서 그것을 참고하도록 하는 것은 학자의 영광이다. 그러나 이렇게 특정 로펌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그 로펌이 원하는 의견서 작성을 해주고 큰 돈을 받는 것은 학자의 수치다. 아무리 돈이 좋은 세상이라고 해도 이렇게 학자가 돈과 명예를 함께 취하는 것을 관용이란 이름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
 
마지막 한마디. 제가 이런 말을 부러워서 한 게 아닙니다. ㅎㅎ 저는 부러운 게 없는 사람입니다. (2023.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