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저의 일과는 새벽 3시 조금 넘어 시작됩니다. 기상과 동시에 책상 앞에 앉아 수업 준비를 우선 합니다. 오늘은 9시부터 로스쿨 인권법 강의가 있는 날입니다. 제 교과서로 강의하기 때문에 준비에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습니다. 일주일 내내 조금씩 준비도 했고요. 작년 강의와 비슷하지만 올해 특별히 강조해야 할 것을 중심으로 자료를 보강해 생각을 정리합니다. 올해는 AI의 도움을 조금 받고 있으므로, 제 강의 내용 중 일부에 대해 AI에 묻고 그 답이 괜찮으면, 강의 시 사용합니다. 이렇게 강의 준비가 얼추 끝나면 뉴스를 점검하고 세상을 향한 글을 씁니다. 오늘 새벽은 이런 내용의 글을 써야겠다고 며칠 전부터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
지난 10년 이상 나는 SNS에 꾸준히 글을 써왔다. 한 때 공직에 있었기에 SNS를 중단한 시절도 있었지만, 사회의 중대한 전환기마다 나는 침묵할 수 없었다. 특히 지난 12.3 내란 사태 이후, 나는 무려 80여 편에 이르는 글을 통해 이 사태의 법률적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지금도 나는 대선 국면에서 내란 세력을 강하게 비판하며,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지키고자 밤잠을 설치며 글을 쓴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왜 그렇게 쓰십니까?”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까 며칠간 고민했다. 이제 정리된 답을 하고자 한다.
나는 법학교수다. 내가 다루는 학문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법은 현실을 다루고, 인간의 존엄과 사회 질서,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수단이다. 그렇기에 법학은 현실에서 벗어나 있을 수 없고, 그것을 가르치는 교수 또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특히 국가의 근본 질서가 흔들리고, 헌법과 법치가 짓밟히는 상황이라면 법학교수는 더 이상 연구실에만 앉아 있을 수 없다. 법이 침묵할 때, 정의는 쓰러지고 사회는 무너진다.
나는 그런 위기 앞에서 법학자로서의 양심과 본분에 따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통해 시민들에게 법의 시각을 제공하고, 사태의 본질을 밝히려 했다. 내 글은 단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다. 나는 법률적 분석을 통해 내란 사태의 본질을 드러내고, 그것이 왜 우리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일인지 설명하려 했다. 지금도 나는 차기 정부가 헌법적 가치를 회복하고 내란 세력을 단호히 단죄해줄 것을 고대하며, 마땅히 해야 할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이것이 법학교수로서의 책무라고 믿는다. 학문은 사회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하며, 특히 법학은 사회에 대한 실천적 책임을 갖고 있다. 책상 위에서 이론만 다룰 것이 아니라, 사회의 흐름을 읽고, 필요할 때는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법학교수는 누구보다 시대의 질곡을 꿰뚫는 시각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시민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교수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참여가 곧 정치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학문을 훼손하는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수의 정치참여나 고위공직 진출이 비판받는 이유는, 거기서 진정성과 공공성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 또한 출사를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지만, 교수의 사회적 활동이, 특히 이런 글쓰기가, 권력을 향한 발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수는 무엇보다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아무리 사회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해도, 그 참여는 본분을 지키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족해질까 걱정을 한다. 그래서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교수로서의 본분을 지키고 있는가? 나의 글은 진정으로 공공의 선을 위한 것인가?
결국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헌법과 법치, 정의와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것은 나의 신념이며, 법학교수로서의 책무다. 나는 연구실을 근거지로 삼아 연구와 교육을 중심에 두면서, 사회적 참여를 병행하고자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나의 글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실 내가 이런 글을 이 새벽 쓰는 것은, 나의 다짐을 세상에 밝히면서, 내 가슴에 이것을 새기고자 함이다. 이 글은 나의 주문(呪文)이다. 아브라카다브라!
(2025.5.9)
(‘아브라카다브라‘는 히브리어로서 ’나의 말이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뜻임)
'나의 주장 > 2025대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요단상-한국의 정치를 생각하며- (1) | 2025.05.11 |
---|---|
대통령 불소추특권에 따른 형소법 개정안에 대해 (0) | 2025.05.10 |
주권자가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복잡한 이론이 필요 없다 (1) | 2025.05.06 |
다시 한번 파기환송심에 공판정지를 요구한다 (2) | 2025.05.05 |
파기 환송심은 선거 기간 중 공판 진행을 정지해야 한다 (1) | 2025.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