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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

박찬운 교수 2023. 7. 5. 04:36

나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

 

 

“복지국가를 이야기하려면 몇 십 년 앞을 내다봐야 하지만 한국은 당장 앞에 보이는 몇 년에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의 표만 의식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안심하고 세금을 내고, 그 이상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신뢰의 정치를 만들지 못하면, 결국 복지는 국민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사회는 빚더미 위에 올라 산산이 조각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최연혁, 『우리가 만나야할 미래』, 282쪽)

 

 


이 책을 쓴 최연혁 교수는,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스웨덴에서 교수생활을 하는 분인데, 현재 남스톡홀름 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필자가 오랜 기간 스웨덴에서 학자생활을 하면서 정치인을 비롯한 많은 스웨덴 시민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것을 기초로 만든 책이다. 스웨덴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까, 그들이 직접 경험하는 스웨덴의 사회복지제도란 무엇일까... 그리고 이 스웨덴 모델이 대한민국의 미래의 진정한 모습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담긴 책이다

 

나는 대학교수가 된 이후 한 가지 꿈을 꾸었다. 대학교수 외에는 어느 직업에서도 찾기 힘든 연구년(안식년)을 갖게 되면 북유럽 복지국가에 가서 1년 정도 살아보는 것이었다.(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교수들은 놀면서 월급 받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교수를 교수답게 만들고, 연구다운 연구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현장을 찾고, 아무 제한도 받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어떻게 창의적인 연구가 가능할까?) 사람들이 왜 자꾸 북유럽 복지국가를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모델이라고 하는지, 직접 가서, 보고, 경험하고 싶었다.

 

그 꿈이 이루어졌다. 나는 2012년 1년 동안 스웨덴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대학인 룬드대학(라울 발렌베리 인권연구소)에서 나의 체재를 허락하고 연구실을 내 준 것이다. 그해 여름부터 다음 해 여름까지 꼬박 1년 동안 나는 스웨덴 최남단 룬드(이곳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30분 거리다. 사실상 코펜하겐과 생활권이 같아, 덴마크 사회도 덤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에서 북구의 복지국가 실태를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 관찰결과를 잠시 공유하고자 한다. 나의 관찰이 보기에 따라서는 피상적이고, 과도한 일반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비난을 받더라도 이 말은 해야겠다.

 


이 책은 한국인으로서 스웨덴에서 20년간 생활하고 그곳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던 저자(신필균)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스웨덴의 복지제도를 분석 설명하였다. 스웨덴 복지제도의 실상을 꼼꼼히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독립사회 스웨덴

스웨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치를 꼭 집어 이야기하라면 나는 서슴없이 자유와 독립이라고 말하겠다. 그들은 자유스럽고 독립적이다.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보호자인 부모의 제일 역할은 자식이 자유스럽고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소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면 자신의 장래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고등학생들 졸업행사는 우리에 비하면 유난히도 요란하다. 졸업 전후 학생들은 반별로 별별 의상으로 치장을 한 다음 트럭을 빌려 그 위에 탄 다음 악기를 연주하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하루 종일 거리를 누빈다. 인생 독립을 선언하는 거창한 행사를 벌리는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ㅡ대학진학률은 유럽에선 매우 높은 편이지만 50%가 채 안 된다ㅡ 이런 저런 경험을 하거나 해외 배낭여행을 떠난다. 세상을 경험하기 위함이다. 그 넓은 세상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내가 만난 에밀이라는 소년도 고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와 함께 외국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반년 동안 인도를 비롯하여 동남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올 것이라 말했다. 그 뒤엔 대학 진학을 준비할 것이라면서... 그 때 내 머리엔 입시에 쪄든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생각났다.

 

결혼해 가정을 이루면 부부는 사랑으로 연대하지만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부부사이는 지극히 평등하다. 육아나 가사분담은 말하지 않아도 분담해야 한다. 그곳에선 장관이라 할지라도 저녁때가 되면 유아원에서 아이를 찾아 와야 한다. 이런 일은 그 사회에선 어떤 배우자도 상대 배우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며 결혼생활의 전제조건이다. 이런 관계에서 결혼생활이 이루어지므로, 남편이 허구한 날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제대로 가사를 분담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하루도 결혼생활을 할 수 없다. 이혼율이 높다는 비밀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부부생활이 평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함께 사는 이유는 사랑이다. 그것이 깨졌다고 느끼는 순간 그들은 이혼을 결심한다.

 

이혼을 한다 해도 그것은 선택의 문제일 뿐 인생을 옥죌 정도의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다시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게 중요하지 과거 파트너에 대한 나쁜 감정에 사로잡혀 살 이유가 없다. 재산문제 때문에, 아이들 문제 때문에 이혼해야 할 관계가 복원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쌍방이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고, 아이들 문제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사회에서 80이 넘은 어느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공원을 산책한다면ㅡ의외로 이런 부부가 많다!ㅡ나 같은 사람에겐 경외의 대상이다. 그들 부부는 평등한 가정에서 저렇게 사랑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나는 그들의 사랑은 두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사랑이라 믿는다.

 

노인이 되어 몸을 지팡이에 의존하는 상황에서도 자녀에게 기대지 않는다. 비록 고독은 노년에 참기 어려운 적이지만 죽을 때까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이곳에서는 자식을 위해 평생 고생하거나 연로한 부모를 위해 없는 살림을 쪼갤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부모는 연금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니 자식이 부모에게 생활비나 용돈을 줄 일은 없다. 노인이 병들거나 혹시 치매라도 걸린다면 그 모든 것은 사회가 책임을 져주니 자식들이 생업을 포기할 이유는 전혀 없다. 자식은 부모가 어찌 되든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스웨덴은 한 마디로 개개인이 자유와 독립을 구가하는 독립사회이다. 그것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복지제도다. 이 복지제도가 사람들의 물질적 기초를 만들어 줌으로써 삶에 여유를 주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회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들은 사회적으로 연대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의존사회 대한민국

이에 반해 한국사회는 의존사회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 모든 것의 근원이다.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하면 제대로 성장하기 힘들다. 부모의 책임은 죽을 때까지 무한대다. 세월이 가면서 자식의 부모의존도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올라가는 경향이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직장을 갖고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식들이 많아진 것이다. 집값이 너무 비싸고, 자녀 교육을 시키기에는 웬만한 월급으론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돈 많은 집안의 자식이라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돈은 항상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부모는 돈을 준만큼 자식의 삶에 간섭한다. 부부가 상의하여 할 일도 부모가 끼어들어 콩 놔라 밤 놔라 한다. 고부의 갈등을 돈으로 컨트롤하는 시어머니도 돈이 떨어진 순간 그 권위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불쌍한 부모여!

 

가난한 이는 부자에게 의존한다. 친구들끼리 식당에 가면 밥값은 의례 돈 있는 이가 내야 한다. 그것이 가진 자에게 부여된 도덕적 의무다. 한국에선 교수와 학생이 밥을 같이 먹으러 가면 당연히 교수가 밥값을 낸다. 그것은 교수의 당연한 의무다. 학생들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교수가 되어가지고 밥값도 안내면서 학생들과 밥 먹자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이상한 교수가 될 것이다. 스웨덴에선 교수와 학생이 밥을 함께 먹어도 교수가 밥값 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학생도 그 정도 밥값은 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부관계에서의 의존도 지나치다. 변호사 시절 이혼사건을 담당했을 때의 기억인데, 내 당사자는 다수가 여자들이었다. 상담을 통해 부부관계를 들어보면 뭐 소송할 것도 없이 당장이라도 집을 나와야 할 상황이다. 이미 부부사이는 파경을 맞은 지 한참이 지났다. 그럼에도 그러지 못한다. 스웨덴에서라면 일단 별거부터 들어갈 텐데 이곳에선 그렇지 못하다. 남편으로부터 온갖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도 살아야 한다. 남편이 경제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집을 나왔다간 살 길이 막막해진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문제다. 자신만 나와 버리면 그 아이들의 장래는 어찌될 것인가. 이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노인이 되면 상황은 역전된다. 노인은 자식에게 의존해야 한다. 젊어서 가진 것 모두를 쏟아 부어 키웠으니 이젠 자식이 돌려 줄 차례이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봉양 받는 것을 용이하게 해 주는 정신적 기초는 효도라는 이름의 도덕률이다. 효도는 인간사의 숭고한 감정이지만 그 실제는 불안한 노후문제를 가족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도구이념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까

스웨덴이 독립사회를 이룬 계기는 19세기 후반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불어 닥친 심각한 도전에 대한 대응이었다. 스웨덴도 그 때까지는 가난한 농경사회이었고, 가정과 사회는 가부장적이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의존했고, 자식은 부모에게 의존했으며, 늙은 부모에 대한 자식의 책임은 컸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되면서 농경 공동체와 대가족 문화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도시로 모여든 노동자의 삶은 각박했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도 예의 유럽국가 만큼이나 자주 일어났다. 19세기 말부터 1920년대 초까지 격렬한 노사대립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경영주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그 즈음 바로 옆 나라 러시아에서는 공산혁명이 일어났다. 피를 부른 혁명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끔직한 일이었다.

 

노동자들은 이미 노조라는 단체로 굳건한 대오를 형성하고 언제든 자본가와 일전을 겨룰 상황이었다. 자본가도 우물쭈물 대다가는 혁명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상황에서 스웨덴 선각자들이 선택한 것이 강력한 복지제도로 무장된 사회민주주의였다(1932년 노조의 지원 아래 사민당 정권이 세워졌고, 1938년 노사 간의 대타협인 살트셰바덴 협약이 이루어짐). 복지라는 물질적 토대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무릇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사람 앞에서 자유와 독립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결코 실현될 없는 종이 위에 써진 권리일 뿐이다.

 

우리는 수 천 년 농경생활을 하다가 지난 한 세기 갑자기 산업화 시대를 맞이했다. 현실은 스웨덴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사회적 대응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자유와 독립은 서구를 넘어 보편적 가치가 되었음에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사회구조는 너무나 빈약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온갖 성장통은 여기서 비롯된다. 노사의 극심한 대결, 돈과 권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 살벌한 입시경쟁과 취업경쟁 등 사회구성원간의 과도한 불협화음은 의존사회가 만들어내는 숙명적 사회현상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극빈자는 물론 소위 중산층에 속한 사람들도 미래가 불안하다. 한번 미끄러져 추락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극빈자는 생활고에 일 가족이 자살하는 사태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40대에 명퇴로 나온 가장이 자영업을 하다가 가진 것을 다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경우 그는 중산층에서 갑자기 극빈자로 전락한다. 인생의 반전을 해 볼 방법이 없다. 그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내가 이십여 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할 때 꽤 많은 노숙인(홈레스)들을 보았다. 그들은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흑인들만이 아니었다. 백인들도 많았다. 뒤에 살펴보니 미국의 홈레스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미국이란 곳은 직장에 다니다가 실직하면 쉽게 그렇게 되는 사회였다. 실직한 다음 재취업도 안 되고, 사회보장제도도 없다면, 가정은 파탄 나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것은 예정된 코스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쫓아왔던 아메리칸 드림의 실상이다.

 

나는 인간의 행복은 자유와 독립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며 살 때 인간은 행복하다. 하지만 그 자유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역량(독립적 존재)에서 나온다. 그 역량은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근본구조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 단초는 복지제도의 틀을 바꾸는 데서 열어야 한다. 건전한 복지사회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독립적 존재로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제 마무리하자. 나는 오늘도 복지사회에 대한 염원을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합심해야 한다. 반드시 그런 사회를 이루어내야 한다. 다만, 복지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여전히 암초는 정치다. 복지사회는 정치가 끌고 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정치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 글머리에서 최연혁 교수가 말한 것처럼 신뢰의 정치를 만들지 못하면 복지사회는 영원히 공염불이다. 우리가 이제부터 희망의 정치, 신뢰의 정치를 말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