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내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이것 뿐

박찬운 교수 2019. 9. 9. 05:13

나도 가끔 입시에 참여해 학생들이 쓴 자소서를 읽어보지만 크게 감동한 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 학생들이 화려한 스펙을 열거하고, 법률가가 되면 공익인권 변호사가 되겠다고 자소서를 쓰지만, 나는 그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런 자소서를 쓴 지원자 중 입학 후 내 인권법 강의를 선택하는 학생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 물론 근본적 이유야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입시에서 자소서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소서는 항상 그 내용이 과장되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게 평가자의 바른 자세다. 비록 그 내용을 입증하는 증명서가 첨부되어 있어도 마찬가지다.

만일 누군가가 어떤 학생의 입시를 문제 삼아 자소서상 기재된 스펙의 진위를 따진다면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진위를 따지는 주체가 수사기관이라면 삽시간에 비극적인 사건으로 바뀔 것이다..

봉사했다고 제출한 증명서는 본인이 일부만 참여하고 대부분을 엄마가 참여해 받은 것이고, 인턴십을 했다는 증명서는 하루 이틀만 참여한 다음 책임자가 선심으로 발부한 것일 수도 있다. 자소서 한 줄 한 줄을 이렇게 이 잡듯 진위를 가리면 아마도 지금 발 뻗고 자지 못할 유명대학 대학생, 로스쿨 생, 의전원 생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정의란 이름으로 이들을 색출해 내는 것이 맞다고 보는가. 슬프게도 2019년 여름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대단한 검찰 특수부에서, 그 대단한 언론의 지지를 받으면서 말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검찰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나라다. 검찰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 어떤 사람의 운명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한 손에 쥐고 있다.

감옥에 보내기 위해 수사를 개시할 권한, 인신을 체포하거나 구속하기 위해 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어느 때곤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 수색할 수 있는 권한,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수사를 계속하거나 덮을 수 있는 권한, 경찰수사에 간섭하고 때론 직접수사를 명목으로 가로챌 수 있는 권한, 기소/불기소를 할 수 있는 권한, (공소제기 이후) 공소를 유지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권한, 판결 선고 후 그것을 집행할 권한, 형 집행을 정지할 수 있는 권한 등등.

이런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음에도 그 권한을 제대로 견제할 기관이 없다. 그러니 정치권도, 시민사회도, 무슨 일만 있으면 고소 고발장을 작성해 검찰로 달려가 처분을 기다린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검찰에 많은 사람들이 법치주의의 수호자란 이름을 붙여준다는 사실이다. 검찰을 마치 정의의 수호신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니 그 폐해를 고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검찰도 인사권을 갖는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천양지차의 모습으로 바뀐다. 만일 대통령이 독재자라면 인사권을 휘둘러 검찰을 발아래에 두고 권력의 주구로 사용할 수도 있다. 과거 70-80년대의 검찰이 그랬다.

만일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신봉자라면 검찰은 검찰파쇼의 권력을 누린다. 무리한 수사에 대한 세상의 어떤 비판도 검찰의 중립적 수사를 방해하는 간섭이 될 뿐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전자의 시대인가 후자의 시대인가.

나는 사실 누가 법무장관이 되는지는 관심없다. 조국이 아니어도 좋다. 조국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검찰의 저 난폭한 운전을 막아주었으면 좋겠다.

자소서 한 줄 한 줄 따져가면서 진위를 파악하는 검찰 특수부를 해체하고, 수사는 경찰에게 맡기고,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경찰수사를 통제하는, 참다운 준 사법기관으로서의 검찰로 재탄생하길 바랄뿐이다.(2019.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