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수사절차의 개선이 시급하다
-개혁의 주도세력에게 특별히 당부한다-
1.
윤석열이 구속기소되었다. 며칠간 마음 졸이며 이 결과를 고대했다. 한고비를 넘긴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재판 과정을 예상하면 녹녹치 않을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긴커녕 싸우는 것만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한 재판절차는 지연되고 법정은 정치의 장으로 변할지 모른다. 사법절차가 정치의 무대가 되면 법 논리 논쟁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은 분통 터지는 일상을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
가급적 상황을 냉철하게 보고자 하는 법률가의 한 사람으로서 지난 50여 일간 내란 사태를 거쳐 오면서 현재의 사법체제가 우리 국민의 열망을 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특히 내란 사건을 처리하는 형사법 체제에 심각한 구멍이 뚫려 있음을 발견했다. 분명 엄청난 죄를 지은 자가 있는데도 수사절차가 문제가 되어 오히려 적반하장의 상황을 맞이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이 모든 절차적 문제가 지난 정부 시절 만든 형사절차 개혁에서 기인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검찰 개혁을 하기 위해 정권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법을 뜯어고쳤건만 결과는 도둑놈에게 갑옷을 선사한 결과가 되었으니 말이다.
3.
이글을 보는 분들 대부분이 동의하겠지만 우리 형사절차를 빨리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수사/기소분리(수기분리) 원칙이란 도그마에 빠져서는 안 된다. 현실적인 수기분리 원칙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야당 쪽에 있는 사람들이 꼭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수기분리 원칙은 경찰은 수사만 검찰은 기소만 해 검찰권 남용을 막자는 것이다. 나는 큰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현실에서 작동하기 어려운 제도는 제도로서 가치가 없다. 수기분리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면 경찰이 검찰에 송치한 사건도 검찰이 보완수사를 할 수 없게 된다(지금 형소법은 불충분하지만 이것을 지향하고 있다.). 지금 야당의 개혁방향은 이 원칙을 앞으로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검찰이 직접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현재의 검찰청을 없애고 기소청을 만들자는 것임).
수기분리 원칙을 그렇게까지 적용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할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수기분리 원칙이 필요한 수사란 전체 수사 총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제까지 수사를 보면 99%의 수사에선 특별한 문제를 찾기 힘들다. 문제는 1%의 정치적 사건 등에서 생기는데 그것을 위해 검찰 수사 전체 나아가 형사절차의 근본적 틀까지 바꿀 필요는 없는 일이다.
물론 이제껏 검찰권 남용을 지긋지긋하게 본 사람이라면 이것을 해결할 원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이 수기분리 원칙이라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수기분리 원칙은 수사 개시에서만 관철되면 되지 송치 후까지 적용될 필요가 없다. 송치 후에는 검찰이 보완수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수사를 지연시켜 실체적 진실추구를 방해하는 수많은 문제가 일어난다. 구속 사건의 경우엔 촉박한 시간 때문에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더 어려운 문제는 보완수사를 못하게 하면 현재의 검찰에서 수사인력을 완전히 떼 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이 진짜 필요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무모한 일이다. 여론이 양분된 사회에서 이런 개혁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끊임없이 국론 분열만 야기할 뿐이다.
검찰이 보완수사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검찰권 남용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것은 과잉반응이다. 그것은 검찰을 사실상 악마화하는 것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이번에 보완수사와 관련해 법원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원은 공수처에서 검찰에 보낸 윤석열 사건에 대해 보완수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는 거기엔 생각을 달리한다.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검찰로서는 당연히 공소유지를 위해 필요한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 검토한 결과, 이 정도로는 공소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하면 수사를 더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지점에서까지 검찰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공수처든 경찰이든 수사를 끝내고 검찰로 보낸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유지를 위해 보완수사가 필요하면 검찰이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지금 형소법에는 규정이 미비함에도 검찰은 필요한 경우 보완수사를 하고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보완수사 요구가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수사권 조정 이후 많은 사건에서 검사들이 보완수사를 직접하지 않고 경찰에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사건 처리가 하세월이다. 피해자가 있는 경우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구조다. 검찰이 간단히 수사해 결론을 낼 수 있는 사건도 이렇게 하면 어느 국민이 그 수사에 동의하겠는가.
나는 이런 식의 수기분리 원칙보단 보다 현실적으로 실무가 감당할 수 있는 수기분리 원칙을 제안한다. 수사를 1차 수사와 2차 수사로 나누어, 1차 수사는 경찰이, 2차 수사는 검찰이 담당하는 것으로 원칙화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검찰은 애당초부터 수사 개시를 할 수 없어 직접 수사를 둘러싼 분쟁을 막을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검찰의 수사역량도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방법은 형소법을 위의 내용으로 개정하는 것으로 족하다. 현재 검찰은 검찰청법을 통해 직접 수사를 예외적으로 하고 있는데, 그 해석을 둘러싸고 분쟁이 잦다. 수기분리 원칙이 위와 같이 정리되면 형사절차는 형소법 규정만으로 충분하므로 검찰청법의 이런 규정은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둘째, 수사구조가 복잡하다. 국민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순한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 수사구조는 당사자는 물론 일선 수사관마저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변호사들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답하는 사람들이 없다. 사건을 담당할 때마다 형소법 규정을 해석하면서 미로를 찾아가야 할 상황이다. 이런 식의 수사구조는 안 된다. 수사구조는 일반인도 선명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야 절차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선명하지 못한(혹은 과도한 목표의) 수기분리 원칙에 따른 법률 규정의 난해함에 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적 개혁의 결과다.
더욱 수사구조가 복잡해진 것은 이번 내란 사건에서 보듯 공수처의 존재다. 공수처가 특정 사건에서 참전을 하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국민들이 도저히 이해를 못한다. 수사를 하면서 수사 주체를 두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국민에겐 어떤 절차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적정한 방법으로 범인을 잡아 재판에 넘기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을 누가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셋째, 공수처가 옥상옥의 새로운 권력기관이 되지 않도록 권한과 수사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이번 수사에서 보았듯 공수처를 지금처럼 두어선 안 된다. 공수처가 제대로 기능하긴 위해서는 우선 수사대상 범죄를 손봐야 한다. 대통령을 수사할 수 있는데도 내란 외환죄는 수사할 수 있다는 명문 규정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공수처 수사대상 범죄의 재조정보다는 공수처를 특정 신분에 있는 공직자의 모든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수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수사대상 범죄 논의는 의미가 없다. 이것은 군인에 대한 수사를 생각하면 쉽다. 군인은 범죄를 저지르면 군수사기관이 담당한다. 그 범죄 내용은 관계가 없다. 이런 식으로(그렇다고 전속관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 공수처의 수사권이 바뀌면 지금과 같은 수사대상 범죄와 관련한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수사대상 고위공직자의 범위는 줄일 필요가 있다. 광범위한 고위공직자에 대해 그들이 저지른 모든 범죄를 공수처가 수사하게 되면 또 하나의 과도한 권력기관이 탄생해 또 다른 권력남용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검찰과 경찰이 수사를 하는 경우 이첩 요구권은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번과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디테일한 관련 규정을 만들어 절차를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공수처는 수기분리 원칙의 예외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처럼 수사 따로 기소 따로 하는 일이 있게 되면 절차만 번잡하고 실속 없는 일이 계속 될 것이다.
요건대, 공수처는 제한된 범위 내의 공위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일반 수사기관의 보충적 수사기관으로서 수사 및 기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25.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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