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말쉐버와 윤석열의 변호인

박찬운 교수 2025. 1. 3. 05:23

말쉐버와 윤석열의 변호인

 

말쉐버 (Malesherbes, 1721-1794)

 
말쉐버(Malesherbes, 1721-1794)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프랑스의 18세기 법률가다. 내가 이 사람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작고하신 강신옥 변호사님이 70년대 민청학년 사건 피고인들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긴급조치 위반으로 법정에 섰을 때 직접 작성한 항소이유서를 통해서다. 강변호사님은 항소이유서에서 변호인의 임무를 말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군주를 변호한 말쉐버의 일화를 소개한다. 
 
말쉐버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루이 16 때 고관대작을 지내다가 프랑스 혁명기엔 이미 은퇴하여 스위스에서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국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급기야는 자신이 모시던 왕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리에서 오는 소문 중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루이 16세를 위해 변호하겠다는 변호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말쉐버는 고민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나이 70이 넘었고, 자신은 조국을 떠나 있으니, 모른 척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더욱 자신이 나서서 변호를 하겠다고 파리로 들어가면 그 자신도 군중의 손에 의해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어떤 결론을 냈을까?
 
말쉐버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파리로 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루이 16세는 자신을 위해 변호해 줄 변호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말쉐버를 포함한 3명의 변호사가 루이를 위해 끝까지 변호했다. 물론 결과는 역사가 말해주듯 루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말쉐버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도 루이 16세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기요틴에 의해 목이 잘린다. 이 말쉐버 변호사의 증손자가 바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알렉시스 토크빌이다.
 
내가 오늘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윤석열의 탄핵사건이나 내란사건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의 행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기 때문이다. 저런 식으로 변호하는 게 과연 의뢰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저렇게 변호하는 것은 변호사로서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은 아닐까?

말쉐버는 루이16세를 변호하다가 결국 자신도 죽었지만 역사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민중의 공분을 자아낸 루이 16세도 변호를 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죽음을 불사하고 그것을 실행한 변호인은, 법률가의 정도를 걸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어떤 흉악범이라도 변호하거나 대리할 수 있다.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변호사가 흉악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프랑스혁명 이후 확립된 ‘변호권’의 최소한이다. 말쉐버는 그것을 몸으로 증명했다.
 
지금 진행되는 탄핵심판과 내란범 수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50년 뒤로 후퇴시킨 국헌 문란행위를 심판하는 역사적 법적 절차다.  이런 사건에서 변호인이 취하는 입장이, 후일 역사에 의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선, 변호사로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말쉐버같은 정도의 생각은 못할 지라도 이 사건에서 변호인은 왜 윤석열을 위해 법률적 조력을 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고민 없이 변호사가 마치 당사자와 한 몸이 된 듯 아무 말 잔치를 하는 것은, 민의를 정면으로 부정해 분노를 살 뿐만 아니라, 자칫 변호의 역사에서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될 것이기에,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025.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