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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수주의를 이해하는 필독서 -배리 골드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을 읽고-

박찬운 교수 2019. 3. 16. 10:33

미국 보수주의를 이해하는 필독서

-배리 골드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을 읽고-

 



미국 보수주의를 이해하는 필독서 <보수주의자의 양심>

보수와 진보를 둘러싼 이념논쟁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이것은 국가운영의 기본적 틀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그 속에 살아가는 구성원의 삶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따라서 이런 논쟁은 피할 수 없으며 어쩜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들은 미국으로 교육을 떠나 거기에서 미국의 보수주의를 배워와 우리 사회에 이식시키고자 노력했다. 우리 보수정당의 많은 의원들이 증세에 반대하고 복지정책에도 반대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시대와 정반대의 길을 간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런 길을 걷고 있는가. 잘 따져보면 이들이 이런 판단을 하는 것은 미국의 영향이 크다.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와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미국파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보수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보수주의를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공화당은 보수를, 민주당은 진보를 표방한다. 유럽에 비해 미국 정당의 이념적 차이는 미미하지만 양당의 정책방향은 분명히 다르다. 공화당은 작은 정부, 연방예산 억제, 감세, 사회보장 축소 등을 내세우는 반면 민주당은 그 반대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현재 각 정당이 추구하는 정책을 보면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은 미국의 공화당을, 진보를 표방하면 민주당(나아가 유럽의 진보정당)을 따라가는 측면이 있다.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두 권의 필독서가 있다. 하나는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 또 하나는 배리 골드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 이들 책은 미국 보수주의나 그것을 실천하는 공화당 노선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 두 권의 책은 반세기 전에 미국에서 출판된 책이나 아쉽게도 한국에선 오랫동안 번역이 안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 이 두 권이 한 꺼 번에 출간됨으로써 한국 독자도 미국 보수주의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이 두 책 중 <보수의 정신>(이재학 옮김)을 읽고 이미 긴 리뷰를 쓴 바 있다. 이제 나머지 <보수주의자의 양심>(박종선 옮김)을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보수의 정신>이 학문적 사상서라면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정치적 선언문이다.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아리조나 출신의 상원의원으로 1964년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배리 골드워터(1909-1998)1960년에 쓴 책이다. 이 책은 초판 이후 350만 부 이상이 발간되었고,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미국 보수주의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골드워터가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적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해 미국 보수주의의 기반이자 공화당 노선의 전범이 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책에서 말하는 보수주의의 핵심가치와 그것이 현실정치에서 구현되는 모습을 알아보자.


보수주의의 핵심가치

골드워터가 말하는 보수주의의 양심이란 글 전체를 통해 판단하면,보수주의자가 양보할 수 없는 신조혹은 보수주의의 핵심가치. 그가 말하는 보수주의의 핵심가치는 사실 러셀 커크가 말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러셀 커크가 이것을 설명하면서 학자답게 매우 장황하게 이론적으로 설명했다면 골드워터는 현실 정치인답게 간명하게 골자만 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것은 보수주의를 사람들의 일종의 성향이나 일종의 본성으로 본다는 것이다. 골드워터가 보수주의자들의 신조라고 말하는 것 중 핵심부분을 옮기면서 그의 생각을 알아보자.

 

우선 보수주의의 본질이다. 그는 보수주의는 하나의 인간본성 혹은 하느님의 창조적 원리로 이해한다.

보수주의적인 정치적 입장이 근거하는 원칙들은 시대에 따라 또한 나라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황과는 전혀 관계없는 과정에 의해 확립되었다. 이러한 원칙들은 사람들의 본성으로부터, 또한 하느님이 그의 창조에 관해 드러내 보인 진리로부터 유래한다. 상황은 변한다. 그래서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문제도 변한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을 관장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41)


골드워터는 보수주의와 사회주의의 본질적 다름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의 물질적 행복에 다른 모든 고려 요인들을 종속시키는 것은 사회주의다. 물질적인 것을 적절한 위치에 놓는 것, 곧 인간 존재와 인간 사회에 관해 구조화된 관점을 갖는 것이 보수주의이다. 인간 사회에서 경제는 단지 보조적인 역할을 행할 따름이다.”(48)


위에서 말하는 인간 존재와 인간 사회에 대한 구조화된 관점이란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인간은 물질 혹은 경제에 의해 영향은 받지만 (물질이 좌우할 수 없는) 그 이상으로 정신적 창조물로서 정신적 욕구와 정신적 욕망의 존재라는 관점이다. 따라서 사회의 인간에 대한 중요한 임무는 정신적 창조물로서의 인간의 정신적 욕구와 욕망을 적극적으로 키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보수주의자는 인간 전반을 고려하는 데 비해, 진보주의자는 인간 본성의 물질적 측면만을 바라보려고 한다. 보수주의자는 인간이 부분적으로 경제적 창조물이요 동물적 창조물이지만, 동시에 정신적 욕구와 정신적 욕망을 가진 정신적 창조물이기도 하다고 믿는다. ... 보수주의는 인간의 정신적 본성의 고양을 정치철학의 가장 중요한 관심으로 간주한다. 이해 반해 진보주의자들은 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이라는 미명 아래 경제적 필요의 충족을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간주한다.”(49)


골드워터가 말하는 보수주의의 신조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모든 사람이 각각 독특한 창조물이라는 관점이다. 모든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획일적인 다수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를 노예 상태로 몰아넣는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 본성의 경제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은 나눌 수 없이 뒤섞여 있다고 보는 점이다

사람이 정치적으로 노예가 된다면 그는 결코 경제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거나 심지어 그는 경제적으로 효율적일 수도 없다. 반대로 사람이 그의 경제적 욕구를 위해 국가에 의존한다면 그의 정치적 자유는 환상일 따름이다.”(51) 

세 번째는 정신적 측면이나 물질적 측면에서 사람의 발전이 외부의 힘으로 좌우될 수 없다는 관점이다. 인간의 발전은 바로 그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발전은 자유의 성취와 관계있는 것으로서, 사회질서와 조화되는 개인의 최대한의 자유를 성취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자유를 지키고 확대, 극대화시키는 것이 보수주의자의 제1의 관심사이며, 그것을 성취시키는 기술이 정치라는 것이다.


권력

보수의 핵심가치를 갖는 보수주의자가 국가(혹은 정부) 권력을 보는 관점은 그것이 갖는 개인의 자유의 제한 가능성이다. 국가 권력이 확장되면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을 막기 위해선 국가의 기능은 가급적 축소하고 개인과 자치정부로 넘기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란 자고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권력을 어떤 특정의 사람들의 손에 쥐어주게 마련이다. 나아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급적 제한적인 작은 정부이어야 한다.

나는 권력을 일부 사람들의 손에 집중시키려는 우리의 경향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 우리는 폭탄이나 파괴에 의해 정복당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부주의에 의해, 곧 헌법을 경시하고 제한적 정부라는 원칙을 무시함으로써 정복당할 수도 있다.”(71-72)


세금

보수주의자는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는 국가운영을 반대한다. 과도한 세금은 그 대표적 예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의 소득에 부과하는 소득세 운영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개인이 번 소득에 정부가 세금으로 가져가는 몫을 높이면, 그만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느는 것이므로, 개인의 자유는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무거운 세금이야말로 자유의 제한이라는 것이다. 세금을 많이 거두어 큰 정부를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개인에겐 자유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좀 달리 설명하면 이렇다. 소득의 3분의 1을 세금으로 정부에 낸다면, 그것은 내가 생산한 것 중 그만큼 나 자신의 용도를 위해 이용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을 생산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압수되어 사용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보수주의자들의 눈으론 내 소득의 3분의 1은 사회주의화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사물의 본성이 아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정부는 개인의 소득에 대해 궁극적인 권한이 없다. 자연법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사람이 재산을 소유하거나 사용할 권리이다. 따라서 사람의 소득은 자신의 토지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산이다. ... 사람이 자유를 행사하는 수단을 거부당한다면, 그가 진정으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기 노동의 과실을 처분할 때는 자신의 것이 아니고, 그 대신에 공공적인 부라는 공동 저수지의 일부로 다뤄진다면 그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재산과 자유는 분리될 수 없다. 정부가 세금의 형태로 전자(재산)를 취하는 만큼, 그것은 후자(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142)

그렇다면 정부가 거두어가는 세금의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그것은 정부의 기능, 헌법이 연방정부에 부여한 기능에 맞추어 그 비용을 세금으로 걷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헌법이 부여한 기능을 초과하여 일하고 거기에 필요한 재원으로 세금을 걷는다면 그것은 위헌인 것이다.

정부의 타당한 청구액의 크기, 곧 정부가 세금으로 취할 수 있는 총액은 우리가 정부의 적법한 기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연방정부와 관련하여, 헌법은 적법성의 적절한 기준이다. 정부의 적법한 권한은 우리가 보아 왔듯이 헌법이 그것에 위임한 권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헌법에 충실하다면, 연방정부의 과세총액은 우리 대표자들이 국익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러한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는 비용일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연방정부가 위임한 권한에 의해 승인되지 않은 사업을 벌린다면, 그러한 사업에 지불하기 위해 필요한 세금은 우리의 부에 대한 정부의 타당한 권한을 초과하게 된다.“(145)


복지

미국의 복지는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복지제도가 있지만 유럽기준으로 보면 최소수준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미국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복지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는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보다는 개인을 국가에 의존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이므로 사회 전체적으로 장려하고 확장할 일이 아니다.

국가 복지주의의 장기적인 정치적 결과는 아주 명백하다. ... 시민들을 비보호자나 부양가족으로 취급하는 국가는 자신에게 무제한적인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모으게 되고, 따라서 어떤 동양적 독재 군주처럼 절대적으로 통치하게 될 것이다.”(164)

국가복지주의의 수령자는 ... 혜택의 대가로 정부에 대해 자신의 궁극적인 정치적 권한을 양보한다. ...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영향(해악)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복지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의 복지에 대한 책임 의식의 상실이다. ...그것은 개인을 품위 있고 근면하고 자립적인 정신적 존재에서, 본인도 모르게 의존적인 동물로 변모시킨다. 복지국가 아래에서는 인격에 대한 이런 손상을 피할 길이 없다.“ (167-168)


맺으며

골드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이 나온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가 말한 보수주의의 핵심가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런 가치는 앞으로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만큼 보수주의란 인간의 본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강하다

사회 양극화가 심한 대한민국 사회를 생각하면 이런 보수주의에 쉽게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양극화를 해소해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선 국가의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권력을 사용하여 사회질서를 잡아야 하고 자원을 분배해야 한다. 세금을 올려 그 재분배의 재원을 만들어 복지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다만, 보수주의의 실체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도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이 보수의 가치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상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한 번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