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민변 없는 대한민국을 생각할 수 있는가 -민변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박찬운 교수 2018. 5. 23. 09:41

민변 없는 대한민국을 생각할 수 있는가
-민변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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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식당 종업원 문제가 남북관계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 적십자사는 어제 대변인 발표를 통해 “남조선 당국은 박근혜 정권이 감행한 전대미문의 반인륜적 만행을 인정하고 사건 관련자들을 엄하게 처벌해야 하며 우리 여성 공민들을 지체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북남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이 문제는 올 8.15로 예정되어 있는 남북이산가족 상봉과도 연계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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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민변의 역할이 크다. 민변 변호사들은 이 사건 초기부터 공작 입국 가능성을 제기했고 그 진실을 캐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종업원들에 대한 접견을 시도했고 법원에 인신구제 청구를 하기도 했다. 나 역시 여러 번에 걸쳐 이 사건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정부에 그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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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변호사들의 이런 활동에 대한 극우 보수층과 극우 언론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변과 민변 변호사들에게 이런 야유를 퍼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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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대한민국이 분단국가인 것 모르는가. 당신들의 그 행동이 북한을 이롭게 하지는 않을지 생각해 보았는가. 분단국가에서 나라를 운영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데, 민변이 그것을 꼬투리 삼는 것은 저의가 있는 게 아닌가. 민변은 우리나라를 북에 바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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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런 야유에 대해 민변 변호사들은 의연하게 대처하리라 생각한다.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민변은 일해오지 않았는가. 우리사회엔 민변 활동에 박수를 쳐주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많다. 만일 저런 생각이 이 사회의 주류를 이룬다면, 70년대 유신독재로 회귀하자는 것인데, 설마 우리 국민들이 그걸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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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 주 금요일(5월 25일)은 민변 창립 30주년이다. 1988년 5월 2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나도 민변 회원이다. 1991년 초 가입했으니 올해로 만 27년이 넘었다. 내가 가입했을 때 민변 회원은 100명 남짓, 그러나 현재 민변 회원 수는 1천 명이 넘는다. 지난 30년 민변의 역사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라고 말한다면 과한 평가일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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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이 단체가 지난 30년 간 대한민국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 잠간 설명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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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은 1988년 창립된 이후 초기엔 주로 시국사범을 변호했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얼마나 많은 시국사범, 양심범이 탄생했는가. 민변과 소속 변호사들은 이들을 도왔다. 돈도 되지 않는 사건을 맡아 동분서주했다. 이런 일은 지금도 민변이 마다않고 하는 일들이다. 민변이 없었다면 이런 정치적 양심수를 누가 보호했겠는가, 앞으로 누가 보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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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사건 하면 사람들은 엄청난 범죄행위일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 사건 대부분은 허접한 것이다. 민주사회라면 의당 허용되어야 할 일을 그 법은 금지하고 억압해 왔다. 누구도 정권에게 잘못 보인 사람은 그 법에 의해 희생될 수 있다. 그것은 이 법이 탄생된 후 오늘까지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를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민변은 그 남용을 막기 위해 역사의 현장에서 몸으로 싸워 왔다. 민변이 없었다면 이런 일을 누가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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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은 지난 30년간 이 나라의 인권제도의 발전을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썼다. 인권상황을 조사해 발표하고, 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입법이 필요하면, 법안을 만들어 정치권에 호소했다. 이걸 한다고 해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보고서, 이런 법안을 만들어 내려면 민변 변호사들은 밤을 새워야한다. 민변은 수시로 국회의원, 언론인, 인권단체 운동가들을 초청해 우리가 개혁해 나가야 할 것들을 놓고 토론한다. 이런 일들을 민변을 빼놓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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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은 인권문제를 우리나라의 특수한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인권문제는 인류사회의 보편적 문제다. 그래서 인권문제를 논의하고 개선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연대해 왔다. 민변 변호사들은 매년 몇 번씩 제네바에 가서 유엔의 인권논의에 참여하고, 한국의 인권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제안을 경청한다. 이런 것을 토대로 한국의 인권수준을 국제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국내 여론을 만들고 정치권과 언론에 호소한다. 이런 일들을 민변을 빼놓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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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은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소수자와 약자를 위해 전문적인 인권옹호 활동을 벌려 왔다. 민변 변호사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받는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난민에겐 든든한 벗이다. 민변 변호사들은 이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이런 일들을 민변을 빼놓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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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난 30년을 생각하면 민변이 해온 모든 일을 칭찬할 순 없다. 민변엔 사실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다. 보수적인 회원도 있고, 진보적인 회원도 있다. 그러니 민변 변호사 사이에서도 합의 되지 않는 일이 많다. 민변도 분명 실수를 한다. 1천명이 넘는 조직에서 실수가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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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이 너무 정치 지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난 20년 간 민변 변호사 여럿이 국회에 진출하였다. 급기야는 2명의 대통령까지 배출했다. 하지만 정치인 민변 회원이 민변을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 민변을 움직이는 이들은 법정에서, 산업현장에서, 때론 거리에서 민주시민과 함께 행동하고, 묵묵히 펜으로 글을 쓰는 변호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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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회원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대한 사명이다. 그 실현을 통해 민변 변호사들은 무엇을 목표하는 것일까. 두 말 할 것도 없이, 민변의 명칭대로 ‘민주사회’다. 민변의 이 사명만은 그 어떤 회원도 이론의 여지없이 받아들인다. 나도 그랬기에 지금까지 민변에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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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없는 대한민국을 원하시는가. 나도 그런 날이 죽기 전에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도, 완전한 인권, 완전한 사회정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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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민변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있는가. 불의가 판치는 대한민국에 민변마저 없다면 우리는 누굴 믿고, 어디에서 희망을 걸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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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 제일의 선택은 민변 회원이 된 것이다. 이 선택은 법조인으로서의 내 운명을 바꾸었다. 비록 지금은 민변 회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졌지만 언제나 내 마음은 그들과 함께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이 민변 30주년을 맞이해,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