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시민은 얼마든지 법률가들의 판단을 비판할 수 있다

박찬운 교수 2017. 1. 24. 14:30

시민은 얼마든지 법률가들의 판단을 비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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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과 조윤선이 구속되었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국민을 탄압한 책임자라는 혐의가 분명한데다, 증거인멸까지 시도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구속은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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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재용의 영장기각에서 많은 실망을 느낀 사람들이라도 오늘은 희망을 말할 것이다. 법률가들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들의 결정 하나가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고, 좌절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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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는 세상의 흐름을 열진 못하지만, 그 흐름을 구체화시키는 존재들이다. 세상의 흐름은 시민과 촛불이 열지만 그것만으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법치주의 하에 사는 우리에겐 그 마무리를 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게 법률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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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을 바꾸는 큰 물줄기는 분명 촛불민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그것 없이 철옹성 같은 대통령에 대해 탄핵결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겠는가. 그것 없이 어떻게 특검이 만들어져 대통령을 상대로 수사가 진행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대통령 탄핵과 관련자의 처벌에서 가장 큰 이해관계자는 촛불시민이다. 시민은 탄핵절차와 수사 및 재판절차를 지켜보면서 필요한 경우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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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사법절차는 법원, 헌재, 특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관련자에 대해 책임추궁을 담당하는 국회와 특검은 상대 법률가들로부터 수많은 법리논쟁을 요구받고 있다. 뇌물죄와 관련해서는 대가성, 부정청탁, 직무관련성 여부에 관한 논쟁이, 박근혜와 피고인들에 불리한 증거에 대해선 위법수집증거 배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논쟁 자체는 우리 사법체제가 일응 당사자의 인권보장을 위해 충분히 기능하고 있다는 증거니 환영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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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률가들이 벌리는 이런 논쟁이 때론 정의 그 자체와는 거리가 멀 때가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죄형법정주의 혹은 위법증거배제법칙과 같은 법리논쟁은 어떤 사건에서나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법률가들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 선택은 법률가의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결정된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법률가들의 법리논쟁도 그렇다. 그들은 이 논쟁을 그저 단순히 기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나름 철학과 가치관을 갖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법률가들이 법리논쟁을 벌이면서 자신의 주장은 정치나 철학과 관계없는 절대적으로 중립적인 것인 양 주장하는 것은 허위이거나 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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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자유로이 법률가들의 판단에 대해, 비록 그것이 사법부의 판단일지라도, 비판의 자유가 있다. 세상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시민이, 그것을 구체적으로 바꿔나가는 데 참여하는 것은, 권리 중의 권리다. 비법률가인 시민이 하는 비판은 순수법리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것은 그 법리를 말하는 법률가들의 정치적 행위(철학과 가치관)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 비판이야말로 역사를 바꾸는 주체로서의 시민들에겐 어쩜 가장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이재용에 대한 영장기각결정을 시민사회가 비판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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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는 명심하자. 비판을 하되 예의를 지키자. 담당판사의 신상을 털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비판의 한계를 넘은 것이다. 육두문자를 쓰면서 모욕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우리의 비판은 이성에 호소하면서 상대도 무시할 수 없는 격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 힘있는 비판임을 믿어 의심치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