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폴리페서란 무엇인가-폴리페서에 대한 나의 입장-

박찬운 교수 2019. 5. 2. 14:21

한거례신문

 

제가 가끔 정치색 짙은 글을 쓰고, 급기야는 자유한국당 해산시켜야 한다는 글을 썼더니, 누군가 저를 기가 막힌 ‘폴리페서’라고 하더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를 그리 보십니까?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해, 간단히 제 입장을 밝힙니다.

폴리페서란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치인이란 뜻의 politician과 교수라는 뜻의 professor의 합성어입니다. 일반적으로 ‘폴리페서’란 “학자 본연의 임무인 학문연구와 강의를 뒷전으로 미룬 채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교수”를 말하지요. 좀 더 리얼하게 정의하면, “교수라는 직함을 이용해 정치인(국회의원)이나 장차관 등 정부 고위직 혹은 정부출연기관 등의 장이 되려고 정치권력의 언저리에서 기생하는 사이비 교수”를 말합니다.

제가 그 정의에 맞는 폴리페서입니까? 제가 학자 본연의 학문연구와 강의를 뒷전으로 미룬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을까요? 실무가 출신의 교수로서 10여 권의 전공서를 냈고, 30-40편의 논문을 썼으며, 6권의 인문교양서를 쓴 사람입니다. 근 30년 간 불모지대인 우리나라에 국제인권법이란 분야를 개척해 온 사람입니다.

제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정치인 혹은 고관대작이 되고자 정치권력과 선을 댄 적이 있습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고 자랑도 아니지만, 저는 이제까지 어떤 정당과도, 어떤 정치인과도, 특별한 연을 갖고 살지 않았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이런 면에서 저 같은 사람을 찾긴 쉽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제가 경찰 개혁위원으로 일하자 그것을 큰 특혜인양 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우선 그게 뭐 대단한 것인가요? 그게 무슨 돈 버는 일입니까? 그게 무슨 끝 발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그거 시간 무지하게 깨지는 일입니다. 한 번 회의하면 3시간 4시간 혹은 한 나절을 보냅니다. 머리 아픈 일입니다. 그런 일은 열정과 열망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런 저를 폴리페서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만일 폴리페서를 폴리티컬 프로페서(political professor),‘정치적 지향성이 분명한 교수’의 의미로 사용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정치적 지향성이 분명한 교수입니다. 그것을 폴리페서라 부른다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법학을 전공했고, 그 중에서도 인권법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정치가 개판이면 인권도 개판입니다. 그러니 제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시시때때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제 본연의 임무입니다.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현실정치에 문을 닫고 산다면, 어찌 그를 제대로 된 연구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현실정치를 제 학문 연구의 중심에 두고 삽니다. 그러니 그것 때문에 폴리페서라고 한다면, 그것은 저에겐 욕이 아니라 훈장입니다.

그럼에도 저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말 한마디를 더 하지요. 출사(出仕)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는 학자가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 될 수 있고, 장차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그들 모두를 폴리페서라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능력이 있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도 가능합니다. 퇴계 선생도, 율곡 선생도 관직에 나갔지 않습니까. 저라고 못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제가 언젠가 쓴 ‘지식인의 책무’란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말로 제 글을 마치겠습니다. 그것은 ‘폴리페서’라는 오명을 듣지 않기 위해 항상 다짐하는 저의 결심이자 좌우명입니다. 

1. 능력을 쌓자. 그것은 단지 기술적, 기능적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나라와 인류사회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연마해야 한다.

2. 행동하자. 지금 살아 있는 현재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진실을 말하고, 글을 쓰자. 만일 그것을 도저히 할 수 없다면 적어도 돈과 권력에 양심은 팔지 말자.

3. 적재적소에서 활동하자. 학문의 세계에 있는 지식인들은 세상을 위해 몸을 일으킬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곳에 가서 능력을 발휘하자. 설혹 권력자가 높은 벼슬로 부른다 해도, 그것이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다면, 일언지하 거절할 수 있는 양심 정도는 갖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