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142

나라가 어지럽다

나라가 어지럽다. 나는 지난 정부 경찰개혁 과정에 열심히 참여했다. 개혁의 핵심은 검경수사권 조정만이 아니었다. 경찰 공권력 행사의 근본을 바꾸어 인권경찰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개혁위는 많은 것을 제안했고 경찰은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 하나하나 제도를 바꾸고 현실을 바꾸어냈다. 그 중에는 국민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있었다. 더 이상 차벽은 불가하고 더 이상 백골단은 불가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각종 규정과 관행을 바꾸었다. 그런 이유로 지난 정부 내내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경찰의 과잉대응은 없었다. 나는 몇 달 전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했다.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경찰의 인권침해를 막는 역할이었다. 관련 소위원장 임무를 3년 임기 중 2년을 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인권..

격세지감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도통 알 수가 없다. 미국이 대통령실에 대해 도감청을 한 것이 거의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용산의 반응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언론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몇 개의 지면과 방송 뉴스를 제외하곤 이 사건이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1978년 청와대 도청사건으로 전국이 들끓었다. 대한민국 모든 단체가 거리로 몰려 나와 미국을 비난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대학생은 물론 심지어 고교생들도 이 항의에 동참했다. 당시 나는 교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벚꽃이 필 무렵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우리는 분개한 나머지 운동장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잠겨진 교문을 향해 달려갔다. 몇 몇 친구들은 학교 담장을 넘었다. 거리에 나가 반미 데모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생각하면, ..

공수처 논란에 대해-몇 가지 질문에 답하다-

조국 장관이 사퇴하자 공수처 논쟁으로 불길이 번지고 있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는 이제 공수처 설치라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해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자유한국당은 검찰개혁은 동의하지만 공수처 설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야당의 반대에 동조하는 전문가들 중엔, 공수처를 중국의 공안식 사정기구로 폄하하면서, 설치되는 경우 독재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문재인 정부가 공수처를 설치하겠다고 한 것이 2년이 넘었지만, 아쉽게도 그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은 부족했다. 우리는 중요한 정책을 왜 이렇게 정략적으로만 접근하는지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라도 공론을 모으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내가 아는 한도에서 이 문제의 쟁점을 짚어보도록 ..

검찰이 특수수사를 하지 않는다면... 이제 경찰이 답할 때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열기가 높다. 이 기회에 꼭 실현되길 바란다. 검찰개혁의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검찰의 직접수사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며칠 전 검찰은 직접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부를 서울중앙지검 등 몇 곳에만 두겠다고 발표했다. 막 활동을 개시한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한 발 더 나아가 특수부를 (중앙지검 외에는) 전면적으로 폐지하는 방안도 논의한다고 한다. 이것은 검찰에게 집중된 형사절차의 권한을 수사 기소 분리원칙을 적용해, 검찰은 기소기관으로 경찰은 수사기관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검경 권한을 조정하겠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방향은 맞다. 그런데 일각에선 이런 목소리도 일고 있다. ‘이제까지 검찰이 맡아온 특수수사를 하지 않는다면 경찰은 이런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

검찰개혁의 민심은 무엇이고, 조국 장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난 토요일 서초동에선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시위가 있었다. 100만인지 200만인지, 그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그 숫자를 축소해 폄하하고자 해도, 촛불집회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시위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검찰개혁의 실체는 무엇일까? 저 분노하는 민심을 무엇이라고 읽어야 할까? 단순히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 ‘조국 수호’라고 보아야 할까? 민심을 그렇게 읽는 것은 우리 국민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는 태도다. 조국 사건은 검찰개혁의 이유를 설명하는 사건일 뿐, 그 수사를 막는 게, 서초동에 모인 시민들의 요구라고 할 수는 없다. 민심에 나타나는 검찰개혁의 요구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확실한 것은 검찰권 남용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눈엔 검찰권이..

조국 사태에서 우리가 품는 의문-선택적 정의에 분노함-

어제 조국 장관 자택에서 11시간에 걸친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 이 상황에 대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검찰이 칼을 뺐다고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와 이 공간의 수많은 친구들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수사는 아무리 보아도 잘못된 수사다. 저 수사는 아무리 보아도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검찰의 수사권 남용이다.” 나는 조국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 번 이곳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내가 그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나만의 의문이 아니라 이 수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문(우리의 분노이기도 함)이기도 하다. 첫째, 이 사건은 인사 청문 과정에서 야당과 언론이 조국 후보자를 주저앉히기 위해 고발한 사건에서 비롯된, 지극히 정치적 사건이다..

진정으로 언론사에게 부탁한다

참으로 진절 멀미가 난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런 기사를 쓸 것인가. 이런 부탁이 먹힐 리 없고, 이런 말에 귀를 기울일 리 없겠지만, 역사의 기록이라도 남기기 위해, 한마디 한다. 좋으나 궂으나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이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해서다. 정확한 정보에 의해 형성된 여론은 국민의 의사라고 볼 수 있지만, 부정확한 정보에 의해 형성된 여론은 국민의 의사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언론은 첫째도 둘째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사회가 언론에 부과한 최소한의 임무다. 아무리 보아도 요즘 조국 장관 관련 사건에서 언론이 보도하는 태도는 정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대부분의 언론이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의도적으로 흘렸다고 의심되는 정보를 생중계하는 식..

조국 장관에게 부탁하는 말

조국 후보자가 드디어 장관에 임명되었다.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입에서 나오질 않는다. 이제부터 그 앞에 펼쳐질 험난한 일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신새벽 나는 조국 장관에게 두 가지를 고언하고자 한다. 하나는 장관으로서의 자세다. 언제나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시라.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지난 몇 주 동안 조장관과 가족들은 반대자들에 의해 저잣거리로 내몰려 갈기갈기 찢겨졌다. 보통사람이라면 분노의 마음이 일고 복수의 마음까지 일 상황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잘 한 것처럼, 앞으로도 조국은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조장관을 죽이고 매장하려 했던 사람들 앞에서도 그래야 한다. 행여 사람들의 입에서 조국이 장관되더니 자세가 달라졌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나는 그러..

조국론(V)-나의 조국론, 후회는 없는가-

나는 지난 몇 주간 조국 후보자 관련 글을 써왔다. 결론적으론 그의 장관임명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내 주변 분들조차 내게 직간접으로 우려를 표해왔다. "박교수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박교수마저 부화뇌동 할 겁니까"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한 말 중 내 기억 속에 남는 가장 유명한 말은 이것이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 합리적으로 따져보고 결론에 이른 판단이라도 그 이면엔 정념 곧 감정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의 어떤 판단도 감정을 떠나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나는 조국 사태에서도 이런 인간의 본성을 여실히 본다. 조국이 법무장관으로서 결격자라고 판단하든, 충분한 자격자라고 판단하든, 그 판단을 이끄는 것은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그것과는..

내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이것 뿐

나도 가끔 입시에 참여해 학생들이 쓴 자소서를 읽어보지만 크게 감동한 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 학생들이 화려한 스펙을 열거하고, 법률가가 되면 공익인권 변호사가 되겠다고 자소서를 쓰지만, 나는 그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런 자소서를 쓴 지원자 중 입학 후 내 인권법 강의를 선택하는 학생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 물론 근본적 이유야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입시에서 자소서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소서는 항상 그 내용이 과장되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게 평가자의 바른 자세다. 비록 그 내용을 입증하는 증명서가 첨부되어 있어도 마찬가지다. 만일 누군가가 어떤 학생의 입시를 문제 삼아 자소서상 기재된 스펙의 진위를 따진다면 웃기지도 않은 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