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격세지감

박찬운 교수 2023. 4. 17. 03:37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도통 알 수가 없다. 미국이 대통령실에 대해 도감청을 한 것이 거의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용산의 반응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언론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몇 개의 지면과 방송 뉴스를 제외하곤 이 사건이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1978년 청와대 도청사건으로 전국이 들끓었다. 대한민국 모든 단체가 거리로 몰려 나와 미국을 비난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대학생은 물론 심지어 고교생들도 이 항의에 동참했다.

당시 나는 교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벚꽃이 필 무렵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우리는 분개한 나머지 운동장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잠겨진 교문을 향해 달려갔다. 몇 몇 친구들은 학교 담장을 넘었다. 거리에 나가 반미 데모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생각하면, 이 당시 이런 반미시위가 가능했던 것은 한미관계에서 코너에 몰린 박정희 정권의 계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코리아 게이트로 미국 조야에서 박정권은 버려지는 패였고, 인권외교를 표방하는 카터 행정부로선 대한민국 인권상황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도청사건은 박정권으로선 미국과의 협상에서 더 없이 중요한 레버리지였다.

그러나 당시의 반미 분위기를 그저 박정권의 계략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언필칭 대한민국의 보수는 공공연하게 청와대를 도청하는 미국을 적어도 외면적으론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항의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것이 최소한의 체면이라 생각했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중앙일보의 기사를 보라. 뭐라고 써 있나.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지 않는가. 여기 사진을 보라. 대한민국의 단체란 단체는 모두 거리에 나와 저렇게 미국의 도청에 분개하고 있지 않은가.
 
45년이 흐른 오늘의 대한민국은 변했다. 외국 정보기관에 의해 백주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실이 도감청되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의 보수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굴욕적인 사태가 일어났다면 모두 광화문으로 집결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손가락을 잘라 혈서라도 써야 할 판인데, 도대체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청와대 도청 | 중앙일보 (joongang.co.kr)

청와대 도청 | 중앙일보

미국기관에 의한 청와대 도청설의 일부가 「포터」전 주한 미 대사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청와대 도청설이 처음 제기된 것은 박동선 사건이 폭로되기 시작한 재작년 말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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