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단상

새벽단상-몸이 기억한다는 것-

박찬운 교수 2024. 9. 24. 06:02

새벽단상

-몸이 기억한다는 것-

 

인권위 근무시절 사무실에서 틈틈히 한자쓰기를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이란 머리로 하는 것으로 알지만 몸으로도 합니다.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지, 나도 그런 게 있지‘ 라고 말할 겁니다.
 
제 경우는 한자 쓰기가 그렇습니다. 요즘 세대는 한자를 잘 모릅니다. 법률 용어는 거의 100 프로 가깝게 한자어임에도 정작 그 한자를 모른 채 공부를 합니다. 법학도가 그런 정도니 일반 학생들의 한자 이해력은 바닥 상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많은 분들이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데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강의를 할 때 판서의 절반은 한자로 채웁니다. 어려운 한자를 쓸 때는 한자를 먼저 쓰고 한글을 달아줍니다.
 
이번 학기 교양과목에는 한자 쓰기 판서를 더욱 치열하게 합니다. 수강생 120명 중 외국 학생이 40여 명이고, 그 학생들 대부분이 한자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들 학생들에게 한자로 판서를 하면 이해하기 쉬우냐고 물어보았더니 훨씬 낫다고 합니다. 언어 장벽이 있는 학생들에게 제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서비스가 현재 상황에서는 한자 쓰기입니다.
 

 
저는 한자를 굉장히 빠른 속도로 씁니다. 한글 쓰기보다 빠르지요. 이렇게 빨리 쓰는 이유가 있는데, 정자로 획순에 따라 한 획 한 획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런 순간이 오면 그렇게 많이 써왔던 한자도 더 이상 다음 획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정자를 쓰더라도 일필휘지로 쓴 다음 그것을 정서하는 방식으로 쓰는 일이 많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했더니 제가 판서하는 많은 한자를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기억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한석봉의 어머니가 깜깜한 밤에도 정확하게 떡을 썰었듯이 말입니다. 그 어머니의 떡 써는 솜씨야말로 몸이 기억하는 기술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몸이 기억하는 것의 예는 이런 것 말고도 여럿 있을 겁니다. 예컨대 자전거 타는 기술도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탔을 뿐인데도 몇십 년이 지나서 바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분명히 자전거 타는 기술은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스개 소리입니다만, 연전에 티브이에서, 외국의 한 해변에서 남녀가 눈을 가린 채 짝을 찾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연인의 체취를 코로 맡고 몸의 특징을 손으로 더듬어 확인하는 방식인데 재미있게도 절반 이상의 참여자가 틀리더군요. 그것이야말로 몸의 기억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절반 이상이 틀렸다는 사실은 둘의 사이가 몸으로 기억할 정도가 아니라는 반증이겠지요.
 
분명 몸이 기억하는 경지가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 주변을 돌아보니 같이 법률공부를 한 친구들도 이제는 한자 쓰기는 못한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 많은 한자를 거침없이 쓰게 된 것은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한자 쓰기를 삶의 일부로 생활화해 몸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의 매일 같이 한자로 일기를 쓰고, 한자 중심으로 판서한 것이 몸이 기억하는 한자 쓰기의 배경입니다. (2024.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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