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 38

반 고흐그림이야기 45화(고흐 그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팔리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이야기 제45화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제대로 평가를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많은 위인들이 죽은 다음에야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화가들의 세계를 보면 더욱 그렇다. 야속하지만 이들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그림 값으로 결정된다. 생전엔 종이 값도 받지 못하다가 사후엔 천문학적 가격으로 거래되는 그림들을 그린 화가들이 있다. 그들 삶을 생각하면 할수록 애석하기 그지없지만 이미 그들은 이생의 사람들이 아니다. 한국인 누구라도 최고의 화가로 좋아하는 이중섭(1916-1956)! 그는 나이 40에 가족과도 연락이 끊긴 채 쓸쓸히 병사했다. 이중섭은 생전에 대표작 을 비롯해 적지 않은 그림을 남겼지만 한 점 제대로 팔아본 게 없다. 이중섭만이 아니었으리라. 식민지..

빈센트 반 고흐 49화(고독한 존재여, 우리 모두는 고흐다!)

고흐 그림이야기 제49화(최종) ㅡ나의 이야기를 끝내며ㅡ 오늘 드디어 마지막 회다. 지금 시각 새벽 4시. 나는 이 글을 온 정성을 다해 쓴다. 가족들 모두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이 신새벽에, 소리 없이 일어나, 고흐의 그림과 씨름을 한 지 어느덧 세 달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쓰려고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여기까지 왔다. 지난 8월 페북에서 우연히 ㅡ이것은 제48화에서 쓴 네이퍼와 그레고리가 쓴 고흐에 관한 새 전기 의 페이지였다ㅡ를 발견했다. 무심결에 를 눌렀더니 일주일이면 두세 번 고흐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 그림 중에는 내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볼 때마다 탄성을 질렀다. 고흐가 이런 그림도 그렸단 말인가? 그림에 감동하였고, 한편으론, 평소 고흐 그림에 대해 좀 안..

빈센트 반 고흐 48화(고독한 천재의 최후)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이야기 제48화 고흐는 1890년 7월 29일 동생 테오의 품안에서 죽었다. 공식적 사인은 자살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그는 광인으로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고 최후도 광인답게 권총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고흐가 사후 신화적인 존재가 된 데에는 자살도 한 몫을 했다. 만일 고흐가 생전에 그 천재적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고 하자. 피카소처럼 90세 정도까지 살면서 그림 값도 제대로 받아 억만장자가 되었다고 하자... 이렇게 되었더라도 지금과 같이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흐를 좋아했을까? 아닐 것이다. 그가 건강하고 마침내 장수까지 했더라면 그의 그림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가 말했다시피 그림은 고뇌의 표현이어야 하는데 건강하고 오래 산 고흐의 ..

인문명화산책1아이들의 놀이

인문명화산책1[피테르 브뤼헬의 ] 일요일 밤이다. 글쓰기 좋은 시간이다. 잠시 읽던 책을 덮고 페친들과 그림 하나를 감상하고자 한다.-----피테르 브뤼헬(1525-1569). 네덜란드 화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명 중 하나다(다른 한 명은 요하네스 베르메르). 미술사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엔나 예술사미술관(비엔나 쿤스트)에 가서 브뤼헬의 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거기서 13-4점의 그림을 보았는데, 내겐 큰 충격이었다. 16세기 작품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나는 브뤼헬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유럽의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내겐 그 어떤 작품보다 브뤼헬 작품을 보는 게 최우선이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

인문명화산책2김상환 판사, 한 장의 그림 그리고 코소보 역사

인문명화산책2[김상환 판사, 한 장의 그림 그리고 코소보 역사] 김상환,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 부장판사. 이 사람을 오래 동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 그가 원세훈을 법정구속했다. 사필귀정의 판결이지만 쉽게 나올 수 있는 판결이 아니다. 원세훈에 대해서 1심을 맡았던 이범균 판사는 국정원법에 의한 정치 관여는 인정했지만 공직선거법상의 선거개입은 인정하지 않았다. 국사범임이 분명했지만 원세훈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범균 판사의 이 판결에 대해 수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나도 그 대열에 섰다. 선거철에 국정원이 인터넷 상에서 댓글을 달면서 정치에 관여했는데 그것을 선거개입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이 무슨 해괴한 판결이란 말인가. 누구는 이 판결이 다가올 법원 인사와 관계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아닌 것도 ..

인문명화산책3생명의 가치를 그린 예술가들

인문명화산책3[생명의 가치를 그린 예술가들] 요 며칠 사이 뭔가 자꾸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림 한 점을 보면 그냥 예사롭게 넘기질 못한다. 비탄에 빠진 인간을 그린 작품을 볼 때는 마음이 더욱 심란하다. 그 마음이 이 글쓰기를 재촉한다.----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그 생명은 신성하다. 이 믿음이 바로 인권사상의 주춧돌이다. 다른 모든 인권은 여기에서 파생하는 권리다. 그런 이유로 세계인권선언은 인간의 존엄성(제1조)과 생명권(제3조)을 최우선 권리로 선언하고 있다(우리 헌법은 제10조에 인간 존엄성을 선언하고 있지만 생명권은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생명권이 인간 존엄성에서 파생하는 기본권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 예술사에서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창조적 예술로 승화한 예는 근대 이..

인문명화산책4(피테르 브뤼헬의 네덜란드 속담)

인문명화산책4[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그러나 매우 유쾌한 그림] 며칠 전 피테르 브뤼헬의 를 소개하면서 17세기 네덜란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았다. 덧붙여 아동의 인권도 이야기했다. 오늘은 브뤼헬의 다른 그림 하나를 보면서 재미있는 속담을 말해 보자. 요즘 학생들의 말과 글을 유심히 살피면 옛날 사람(?)들과 비교해 다른 게 많다. 그 중 하나는 순수 한글 세대여서 그런지 한자에서 온 사자성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글세대라면 정작 알아야 할 우리말 속담도 잘 모른다. 말과 글에서 구수한 우리 속담이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단순히 세대차에서 기인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래가지고서야 우리글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쓸데없는 우려인가? 그렇다면 나야말로 걱..

대충주의, 결코 한국인의 DNA가 아니다

상가에서 귀한 분을 만났다. 이성낙 선생. 이 분은 독일에서 공부하여 의학박사가 되었고, 이후 귀국하여 한국의 유명 의과대학의 교수로 일하다가 가천의대 총장으로 은퇴하신 우리나라 최고의 피부과 의사 중 한 분이다.그런데 내겐 피부과 의사로서가 아니라 우리 고미술과 관련하여 각인된 분이다. 나는 이분을 오주석이 쓴 를 읽다가 알게 되었다.오주석이 조선 후기 초상화 과 이 사실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 이채를 그린 초상화라고 말할 때, 그것을 피부과적으로 감정한 분이 바로 이성낙 선생이다.백문이불여일견! 초상화 「전 이재초상」과 「이채초상」을 보자. 둘 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전 이재초상」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이재의 초상화로 알려진 작품이다.그렇지만 그림 어디에도 이재의 초상..

우리는 아직 야생에 산다

우리는 아직 야생에 산다진화론을 철저하게 믿는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 인간이 진화하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인간이 진화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인간이 가진 감정, 특히 예술적 감정도 몇 천 년 시간이 가면 진화적 관점에서 상당히 달라질까?과연 그럴까?몇 년 전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거기 제1관의 문을 열자마자 나타난 4천여 년 전의 조각품. 우리가 크레타 문명이라고 말하는 에게해 섬에서 발견된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었다.그 조각품들을 보는 순간 나는 경악을 했다.내가 4천년 전의 조각품 전시실에 간 것이 아니라, 혹시 20세기 추상조각 전시실에 들어온 것은 아닌가?세부적인 표사를 생략한 채 사람들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미적감각이 이미 추상적 수준..

인문명화산책(5)아버지를 넘지 못한 아들…피테르 브뤼헬 부자 이야기

인문명화산책 5[아버지를 넘지 못한 아들…피테르 브뤼헬 부자 이야기] 요즘 그림을 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것들을 보면 뭔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서 한 점 한 점 설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지난 번 처럼 열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단지,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내가 선정한 명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해볼 참이다. 명화를 감상하면서 인권, 평화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피테르 브뤼헬(Peter Brueghel the Elder, 1525-1569)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아들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브뤼헬은 두 아들을 낳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가 죽을 때 큰 아들 피테르(Peter Brueghel the Younger, 1565-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