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역사

‘시오노 나나미’를 읽느니, 차라리 ‘박찬운의 로마’를 읽어라

박찬운 교수 2015. 9. 26. 21:01

아래 글은 소설가 김갑수 선생님이 저의 책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을 읽으시고 페이스북에 쓴 서평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를 읽느니, 
차라리 ‘박찬운의 로마’를 읽어라

오래 전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가 도중에 책을 던져 버린 일이 있다. 그리고 나는 15권이나 되는 책 중에서 일단 1~3권만 구입한 나의 신중함을 기특하게 여겼다. 한국인으로서 로마를 알기 위해 15권이나 되는 책을 다 읽을 필요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친서구적이며 용(容) 제국주의적인 책이다. 도처에 남성 중심, 승자 중심의 사고방식도 노출된다. 일본 여인으로서 로마제국과 카이사르에 대해 지나친 경도를 보이는 것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잘라 말해서 그녀는 일본 판 ‘된장녀’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게다가 이 책은 별 의미도 없는 ‘장황한 서술’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에 한국인 박찬운이 쓴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나남, 2014)는 단 한 권으로 로마 문명의 정수를 알게 해 주는 책이다. 로마의 미덕과 부덕을 함께 말하는 저자의 시각에는 균형과 절제가 있다. 

박찬운은 사학자도 아니고 로마 전문가는 더욱 아니다. 그는 전직 인권 변호사이고 현직 로스쿨(한양대) 교수이다. 결국 이 책은 전문가가 아닌 애호가가 집필한 책이다. 사람들이 책에 관해 잘 모르는 것 중의 하나는 전문가가 아닌 애호가의 저작 중에서 의외로 명저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로마에 관한 세계적인 저작물 13개가 소개되는데, 그 중 하나인 『문명 이야기』의 저자인 윌 듀란트도 엄밀히 말해서 전문가가 아닌 애호가이다. 나는 ‘문학 이야기’ ‘철학이야기’ 등으로 한국에 번역, 소개된 윌 듀란트의 책들을 젊은 시절 아주 재미나게 읽은 기억이 있다. 

박찬운의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가 갖는 강점은 이미 제목에서 알려 주듯이 로마 문명을 한국의 현실에 적용시켜 서술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저자는 로마의 카이사르와 한국의 박정희는 변태 이상의 엽색행각과 민주파괴, 그리고 측근에 의한 죽음 등의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고 말한다. 동시에 정적에 대한 관용과 포용 면에서 카이사르와 박정희는 크게 달랐다고 말하기도 한다.

‘변호사의 아버지’이자 ‘수사학의 대가’로 추앙 받는 로마의 키케로가 한국에 나타난다고 해도 이석기 의원을 내란으로 엮을 수는 없을 거라고 말하는 저자의 시각은 또한 얼마나 건전한가? 저자는 로마를 말하면서도 수시로 한국의 정치인과 한국의 교육과 한국의 언론 등에 비판을 가한다. 이처럼 저자는 로마문명을 사색하다가도 끊임없이 대한민국을 되돌아본다. 

저자는 로마황제의 초상화 이야기, 로마법의 기원과 실상, 로마의 공공건축물 등을 말할 때에도 우리의 현실과 연계시킨다. 2,000년을 버텨온 판테온 앞에 서서 그 구조적 완벽함에 감탄하다가도, 문득 한국 국회의사당의 기이한 모습과 그 안에 담긴 정치문화를 떠올리고 비판한다. 이것이 바로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가 가진 강점이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강점은 의외의 것에 있다. 사실 우리는 로마제국에서 시공 양면으로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다. 전공자가 아닌 한 로마를 알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과다하게 소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그리스와 함께 로마는 유럽인들의 작위적인 정신적 ‘본향’일 따름이다. 우리는 중국을 알기 위해서도 시간이 부족하다. 중국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로마를 능가하는 제국을 최소 세 번 이상은 구축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박찬운의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는 한국인으로서 최소의 시간과 노력으로 딱 필요한 만큼만 로마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로마를 더 잘 알고 싶다면 세드릭 A 요의 『로마사』나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그리고 저 유명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등을 읽어도 된다.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더 읽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15권짜리 시오노 나나미를 읽을 바에야 차라리 박찬운의 ‘한 권’을 선택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