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로 보는 장대한 인류의 역사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신이 될 것인가-
인문학의 기본적 관심은 인간에 대한 이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 왔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등등의 문제는 역사, 종교, 철학, 문학 등 인문학의 각 분야가 공통적으로 관심을 갖고 자신의 입장에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십 수 년 만에 맞이한 혹한의 주말에 2014년 출판된 이래 세계적으로 문제작이 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완독했다. 웬만한 책이라면 책을 사서 일주일을 넘기지 않는데 이 책은 읽는 데만 3주나 걸렸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 보다도 책 자체가 주는 부담감이 큰 원인이었다. 600쪽 가까운 볼륨에서 오는 부담감과 곱씹어서 읽지 않으면 의미를 파악하기기 쉽지 않은 부분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 부담되는 책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 읽었다면 완독했다는 것으로 끝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그 내용을 정리해 두는 게 필요하다. 그게 바로 이런 책에 대한 예의이다. 또한 이 책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누군가에게도 이 정리가 나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망외의 기쁨이 될 것이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독자의 가상질문을 받아가며 답을 하는 형식으로 이 책을 정리해 보자.
질문: 우선 이 책을 완독한 소감 한 마디 해주시지요. 간단한 감상평 말입니다.
답: 괜찮은 책입니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후회 없습니다. 일주일이든 이주일이든 시간을 내서라도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인간의 본질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 이 책은 어떤 성격의 책입니까?
답: <사피엔스>는 빅 히스토리의 일종으로 인류의 역사를 다룬 것입니다. 영어 원문 제목도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입니다. 여기서 빅 히스토리에 대해 좀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를 다룹니다만 기본적으로 특정 연대의 사실관계에 천착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은 인간의 기록에 의해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활동과 업적을 그 연구대상으로 합니다만 빅 히스토리는 빅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지구의 역사가 역사연구의 대상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은 인간의 활동을 구체적 기록에 근거해 가급적 진실에 가깝게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빅 히스토리로서의 인류의 역사는 인간을 생물종의 하나인 인간종으로 이해해 그 탄생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다룹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서 인간종의 역사를 진화론적으로 다루는 것이지요. 인간종으로서의 사피엔스가 어떻게 탄생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 지구의 다른 생물종을 지배했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 지구상에 인간 아닌 외계인이 도착해 지구상의 생물종중에서 인간종인 사피엔스를 발견하고 그것이 어떻게 탄생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화해왔는지를 살피는 것과 유사합니다.(이런 식으로 보면 사피엔스가 아닌 코끼리의 역사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코끼리는 이 지구상에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진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역사적 서술은 <사피엔스>가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다수 시도되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책 중에도 이를 정면으로 다룬 게 신시아 브라운의 <빅 히스토리>입니다.
질문: 그럼 이 책의 저술 목적이라고나 할까요,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 무엇일까요?
답: 이 책을 그저 책 내용대로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해해선 곤란합니다. 사실 그런 내용을 다룬 책은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에서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정도라면 이 책을 문제작이란 반열에 올릴 순 없습니다. 이 책은 그런 단순 지식을 전달하기 보다는 우리가 속해 있는 인간종 사피엔스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그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군요.
“나는 이 책이 독자 스스로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또한 이 같은 이해 덕분에 생명의 미래에 우리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서문)
질문: 그럼 지금부턴 이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죠. 이 책은 크게 4부로 되어 있는데 제1부가 인지혁명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인지혁명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답: 저자가 설명하는 인지혁명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사피엔스에게 나타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방식을 말합니다. 즉, 이 시기에 사피엔스는 과거 네안데르타르 인에게 볼 수 없는 언어체계를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뇌의 내부 배선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간종이 탄생했다는 것이지요. 사피엔스의 말은 사피엔스를 개별적 존재에서 집단적 존재로 만들어 내는 원초적 동력입니다. 이로서 사피엔스는 지구상 먹이사슬 구조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된 것입니다.
질문: 저자는 인지혁명과 함께 사피엔스의 사회적 연대를 가져온 것으로 ‘허구의 등장’을 들고 있는 데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제가 보기엔 저자가 사피엔스에게서 발견한 가장 큰 능력은 바로 이거라고 봅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기 위해서도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협력하도록 만드는 ‘집단적 상상력’입니다. 곧 신화를 만드는 능력, 신화를 믿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개별적 인간으로 말하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150명 이상과는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그 이상과 관계를 맺고 살잖습니까.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이룬다는 게 다 이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저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사피엔스가 갖는 허구를 믿는 능력이라는 것이지요.
우린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도 종교를 통해 형제애를 느끼고, 법률을 통해 하나의 국가체제를 이룹니다. 그런데 종교도, 법률도 다 허구이거든요. 보이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 내용을 우리들이 믿는 것이지요.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수로만 행동했지 수백 명의 사회를 만들지 못하고 진화과정에서 사피엔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는 것이지요.
질문: 다음으로 농업혁명인데요, 대체로 농업혁명은 인류사에서 대단한 진보라고 말하잖습니까? 그런데 저자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내용은 무엇입니까?
답: 예, 저자는 농업혁명을 사피엔스가 저지른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말합니다. 자기(사피엔스)가 사기를 치고 자기가 당했다면 가해자가 피해자인 셈이니 본질적으론 사기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농업혁명이 사피엔스 개인에겐 결코 행복(이익)을 가져다 준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저자는 농업혁명은 결과적으로 수렵시대에 비해 인간을 영양실조와 과 노동에 시달리게 했다고 합니다. 잉여생산물이 전부 땅을 경작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농업혁명은 사회체제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거기에서 정치엘리트가 탄생했고 잉여생산물은 바로 그들의 것이 되었다는 겁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 그것과 다름없는 말이지요.
다만 이 농업혁명은 사피엔스의 수를 증가시켰습니다. 그런 면에서 진화론적으론 성공이었지요. 진화란 결국 같은 종의 수의 증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종인 사피엔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그들 개개인의 삶은 수렵시대와 비교해 나아지지 않았다. 저자는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저자의 말로 생생히 들어볼까요?
“그것(농업)은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의 토대였다.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슬프게도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153)
질문: 지금 세계는 하나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저 아프리카의 오지에 사는 사람이나 저 남미 아마존 한 가운데에 사는 사람도 전부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떻게 해서 세상은 이렇게 통합된 것일까요? 저자가 제3부에서 말하는 인류의 통합은 어떻게 해서 가능해진 것인가요.
답: 인류는 농업혁명 이후 도시를 만들었고 그것은 더욱 확장시켰습니다. 그 확장은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사피엔스가 만든 문화입니다. 특히 지난 3천 년 간 이 문화 중에서 3 가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바로 돈, 제국 그리고 종교입니다.
인간은 돈을 만듦으로서 서로 알지 못하고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을 서로 협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돈이라는 매개체가 있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장사가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종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히 보편종교가 탄생함으로써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집단적 상상력이 가능해졌습니다. 아프리카의 사람과 아시아의 사람이 형제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지요.
거기에다 강력한 제국이 탄생합니다. 이 제국은 돈과 종교를 뒤에서 밀어주는 동력과 같은 것이지요. 지난 2천 5백년 간 세계 역사는 제국의 역사입니다. 제국이 일어나고 망하고 다시 다른 제국이 일어남으로써 세계는 하나가 되어 간 것이지요.
질문: 사피엔스가 이렇게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그리고 인류의 통합을 이루면서 살아오면서 16세기 전까지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그런대로 조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사피엔스는 자연과 적대적 관계를 형성한 것일까요.
답: 바로 이게 이 책 제4장에서 말하는 과학혁명의 문제입니다. 사피엔스는 1500년 이전에는 인간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16세기에 들어서 사피엔스는 새로운 인간의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대화시킵니다. 그것이 과학의 진보인데, 과학이 이렇게 진보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하나는 자본주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국주의입니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과학 발달로 이어졌고 국가는 제국화하는 과정에서 과학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질문: 과학혁명의 끝은 무엇일까요? 사피엔스는 과학을 통해 무엇을 종국적으로 얻을 수 있을까요?
답: 과학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과학혁명의 극단적인 상황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직접 들어봅시다.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하는 중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561)
이 말은 사피엔스, 즉 우리 인간이 신의 영역까지 도전장을 던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사피엔스는 더 이상 지구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종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생명공학, 유전공학, 나노과학, 사이보그 공학 등의 발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 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종국적으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이제까지의 생물종의 하나로서의 사피엔스는 종말을 맞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선생님은 저자의 이런 예견에 동의하십니까?
답: 현 시대의 과학수준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자의 이런 주장에 갑론을박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저자가 예견하는 미래과학이란 과학윤리가 전혀 배제된 고삐 풀린 과학에서나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이 결실을 맺는 것은 과학자만의 몫이 아니잖습니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교육이고 정치입니다. 과학자 혼자서는 어떤 과학도 결실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아인쉬타인이 상대성원리를 밝혔지만 그것으로 원자탄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 원리를 이용한 수많은 과학자와 기술자 그리고 그들의 등을 민 정치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과학을 교육이, 정치가 관리할 수 있다면 그 비극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정치의 주인이 우리들인 것을 생각하면, 결국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질문: 마지막으로 저자에 대해 한 마디 해주실 수 있습니까?
답: 솔직히 이런 책을 읽으면 공부하는 사람으로선 주눅이 듭니다.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제 막 나이 40(1976년생)에 접어든 젊은 학자입니다. 그런 젊은 학자가 이런 도전적인 책을 낸다는 게 대단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그의 무지막지한 독서량과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수많은 사례로 논증하는 그의 번득이는 문장력은 탄복할 정도입니다. 인류의 장대한 역사를 과학과 결합시켜 인간존재의 근원과 방향을 밝히고자 한 그의 시도에 경의를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번역가인 조현욱 선생의 수고도 빠질 수 없겠네요. 이런 외서를 유려한 필체로 독자가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번역가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의 번역수준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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