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의 침묵, 도올 김용옥이 고구려 기상을 안고 귀국하다
--도올 김용옥의 중국일기 1-3권을 읽고--
도올 김용옥. 대한민국 학자 중 이 사람만큼 유니크한 인물은 없을 듯하다. 아마도 도올이 세상을 등지는 날이면 그 주검 앞에 목 놓아 우는 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리라. 나도 그 한 사람이 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죽음은 나이순이 아니니 도올이 나보다 더 장수하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 나이도 14살 차이밖에 나지 않으니 그리 큰 차도 아니다.
도올 김용옥, 누가 뭐라해도 도올 김용옥은 21세기 대한민국 최고의 사상가이다. 사진 JTBC.
그는 동서양 철학과 종교를 깊이 연구했다. 공자와 맹자를 설하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등 서양고대철학자와 칸트, 헤겔, 러셀 등 서양 근현대철학자를 종횡무진 비교한다. 종교에 대한 깊이는 그 이상이다. 금강경 등 불교경전을 주석했고 동시에 성경에 관한 과감한 해석도 이미 시도했다. 그 과감성에 정통 교단이란 곳은, 그의 말대로, 그를 ‘왕마귀’로 취급할 정도다.
그는 단순한 연구자가 아니다. 엔터테인먼트가 사람을 즐겁게 하고 본능을 자극한다면 그의 강의야말로 바로 그것이다. 그의 강의는 우리를 지적향연으로 안내해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선사하고 심연의 지적본능을 흔들어댄다. 그러니 그를 지식예능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2006년 도올이 새만금 방파제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새전북신문
그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80년대 그가 제도권의 철학과 교수로 있던 시절 우리는 그에게서 기대했던 사회적 참여를 발견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비겁하다고 욕도 얻어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그의 행보는 거침없다. 정치적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금기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설악산이 파헤쳐질 것에 반대하는 제문을 대청봉에서 읽었고, 새만금 갯벌의 보존을 위해 방파제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였다.
도올은 2012년 대청봉에 케이블카가 건설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대청봉에 올라가 반대하는 제문을 읽었다. 사진 연합뉴스
그에겐 안티도 만만치 않다. 내 주변의 학자그룹은 대체로 그를 싫어한다. 김용옥은 학문의 깊이가 없는 사람이다, 동양고전을 제대로 해석할 능력도 없으면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무리한 주장을 한다, 강의를 완전히 코미디로 한다 등등...내가 보기엔 대부분 헛소리다. 과연 이들이 도올의 그 많은 책을 몇 권이나 읽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그의 책을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그의 이야기가 기존의 지식과 거리가 있다는 이유로, 그저 그의 빡빡 밀은 머리가 싫다는 이유로, 말투가 점잖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를 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책을 찬찬히 읽어보라. 몇 권만이라도 그의 책에 밑줄을 치면서 읽다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가 깨어 있는 지식인이며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를 종횡으로 엮을 수 있는 석학이라는 데에 토를 달 수 없다. 그는 분명 잘 난 사람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끌어내릴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이 삭막한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 그와 함께 산다는 것에 긍지를 느껴야 한다. 우리가 그 정도의 아량도 없다면 어찌 지식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공부하는 사람으로 도올에게 많은 빚을 졌다. 지난 20년간 그가 쓴 수 십 권의 책은 비천한 교양밖엔 없었던 나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나는 그로부터 직접 배운 바는 없지만 책을 통해 꾸준히 사숙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에게도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은 욕망이 없지 않다. 아니, 나 또한 누구보다도 그게 강하다.
그래서 나도 글을 쓴다.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건 내게도 업이다. 그 능력은 분명 평균이상이다. 하지만 도올을 보는 순간 한계를 느끼며 절망한다. 단 며칠 내에 두툼한 책 한 권을 써낸다는 그의 천재적 문필능력에서 몇 번이나 무력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모차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르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나는 그가 나와 동시대인이라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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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작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한 신문에 박근혜 대통령을 엄히 꾸짖은 다음 그렇게 대통령할 것이라면 당장 하야하라고 일갈했다. 그렇게 준엄했던 그의 글과 음성이 한 동안 들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을 것이다. 그가 어디에 갔었을까?
그가 돌아왔다. 한 동안의 침묵을 뒤로 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을 심어줄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그는 이 침묵의 시간 중국 연변에서 중국의 젊은이를 상대로 강의하고 고조선-고구려를 연구했다.
도올은 그 결과물을 책으로 엮어 최근 출간했다. <도올의 중국일기> 3권이 그것이다(도올의 저술계획에 의하면 앞으로 3권이 더 나온다고 한다). 그의 거침없는 글과 함께 도올이 직접 찍은 화려한 사진이 압권이다. 이 책은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진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사진 한 장 한 장의 감상을 통해 문자가 전달하지 못하는 수많은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나는 지난 2주 동안 틈나는 대로 이 3권을 읽었다. 꼼꼼히 밑줄을 치면서 읽고 사진을 감상했다. 중국일기 3권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다루었다. 1권에선 도올이 작년 가을 연변대학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강의한 경험담을, 2권과 3권에선 고구려 유적 답사결과를 다루었다.
도올은 왜 중국에 갔는가. 그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에게 있어 세계 근현대사 2대 사건은 미국과 신중국의 탄생이다. 2백 년 전 미국의 탄생으로 서구 근대문명은 지난 세기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미국은 서구가 주도하는 현대문명의 패러다임을 만들었고 그 패러다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를 비롯한 세계는 이 패러다임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 패러다임이 영속될 수는 없다. 지금 그 문명은 서서히 종언을 고할 단계다.
신중국의 탄생은 현대사가 낳은 또 다른 기적이다. 중국은 단순히 큰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명을 대표하는 초국가다. 따라서 중국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새로운 문명창조를 의미한다. 그만큼 중국은 거대하고 엄청나다. 모택동의 공산당이 만들어낸 신중국은 몇 단계를 거쳐 지금 새로운 단계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니며 미국과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명실상부한 G2다.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의 부상은 새로운 문명으로서의 패러다임 시프트다.
거대중국이 어떤 철학을 갖느냐에 따라 세계의 앞날이 달라질 수 있다. 중국이 선진국의 뒤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세계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중국인 모두가 미국인들처럼 살기를 원한다면 에너지 문제가 어떻게 될까? 화석에너지 고갈을 앞당기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것을 핵 발전으로 대체한다면 중국에 도대체 몇 기의 핵발전소가 건설되어야 할까?
도올은 그것을 걱정한다. 중국이 리드하는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은 미국의 그것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 그래야 인류의 미래가 있다. 중국은 그것을 찾아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도와야 한다. 도올은 그 지혜의 원천을 고전에서 찾는다. 중국이 자랑스러워할 선현의 음성에서 그 지혜를 찾고, 그것을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천하의 도올이라도 그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제대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시진핑이 도올의 자문을 받겠다고 하든지, 강연을 해도 변방인 연변대가 아니라 중국의 내일을 짊어지고 나갈 베이징대나 칭화대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어디 그게 맘대로 될까. 도올 스스로 인정하듯이 이 바람은 도올을 원하는 연변대를 통해 중국사회에 매우 제한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족해야 할 것 같다. 언젠가, 도올이 베이징대나 칭화대에서 몇 날 며칠 포효하는 그날이 오길 바란다!
도올의 첫 번째 목적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라면 도올 중국행의 의의는 고조선-고구려 연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는 작년 10월 답사단을 이끌고 초기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환인지역과 집안지역의 고구려 유적지를 돌았다. 그 답사단엔 도올 외에 또 다른 석학들이 참여했다. 도올의 화려한 학자가족이 그들이다.
부인인 최영애 교수(연대 중문학), 처남 최무영교수(서울대 이론 물리학)와 그 부인 이금숙 교수(성신여대 인문지리)가 참여했고 여기에 도올의 제자들과 출판사 및 연변대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도올의 안내를 받아가며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광대한 만주 땅 한 가운데에 펼쳐졌던 찬란한 고구려 문명을 오감으로 체험한다. 도올은 이 경험을 유장하면서도 그만의 자신만만한 언어로, 그리고 혼이 들어간 사진으로 재현해 낸다.
2권과 3권에서 도올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구려 역사에 대한 재인식이다. 우리의 역사는 언제부터인지(김부식의 삼국사기?) 신라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역사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2천 년 전 저 만주 지역을 무대로 한 고조선과 고구려인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역사는 다시 써져야 한다.
중국일기 3권 첫 부분의 고구려패러다임 지도
도올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그가 만든 한 장의 지도다. 이 지도는 제3권 첫머리에 나온다. 고구려 패러다임 지도라고 명명한 이 지도 옆에 도올은 이런 설명을 붙였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태평양 중심의 걸개지도는 세상을 도착적으로 바라보게 강요한다. 그리고 민족이동이나 문화전래에 관하여 터무니없는 가설들을 회의적 시각이 없이 수용하게 만든다. ... 이 책은 읽는 사람들은 이 지도를 놓고 우리 역사의 흐름을 생각해야만 고조선-고구려패러다임의 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지도를 잘 보라. 저 바이칼 호수 쪽에서 한반도와 중국 중원지방을 내려다보면 무언가 큰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저 바이칼 호에서 시작해 대흥안령을 넘어 만주를 호령했다고 생각해 보라. 실제 그렇지 않았는가. 수와 당의 백만 대군이 고구려에 패한 것은 고구려가 단순한 중국 변방국가 아님을 알려주는 증거가 아닌가.
고구려는 현재 중국의 절반에 가까운 영역을 호령했다. 2천 년 전 동아시아는 만주를 호령하는 고구려와 중원의 한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저 지도를 보면 한반도는 지세적으로 고구려 기상이 내려갈 수밖에 없는 위치다. 저 지도를 보면 만주의 기운이 한반도와 저 일본 그리고 중원의 베이징 일원까지 확 미쳤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도올의 중국일기 4-6권을 기대한다. 거기에서 고조선-고구려의 기상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 (2015.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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