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일반

눈물겨운 나의 폐강 이야기 ㅎㅎ -<90년생이 온다>를 읽고-

박찬운 교수 2019. 3. 27. 09:13

눈물겨운 나의 폐강 이야기 ㅎㅎ

-<90년생이 온다>를 읽고-

 

 


사실 몇 년 전부터 불안한 조짐이 보였지만 막연한 낙관론을 믿고 그냥그냥 넘겼다. 그러다가 지난 학기부터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내 학부 교양과목에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자유의 인문적 사색이라고 하는 이 교양과목은 내가 수 년 전 대학본부로부터 정부 지원금을 보조받고 만든, 한 마디로 나의 야심작이며, 우리 학교 명품교양 과목 중 하나다. 그런데 그게 설강 초기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더니 급기야 폐강사태까지 간 것이다나로선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어떤 과목보다 성의를 다했고, 그것 때문에 없는 시간 쪼개 글을 써, 교양서까지 한 권(자유란 무엇인가)을 출간했는데...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뭔가 내가 학생들의 마음을 잘못 읽고 있는 게 분명하다. 요즘 학생들의 트렌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과거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공부하는 둘째 딸에게서 카톡 문자가 왔다. 아빠가 읽어야 할 책 한 권을 소개한 것이다. <90년생이 온다>(임홍택). 82년생의 저자가 10 년 후배 세대들을 관찰하고 쓴 책이다.


카톡을 받자마자 책을 구매해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몇 부분에서 무릎을 쳤다. 탄식이 나왔다. , 내가 이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내가 요즘 가르치는 90년대 생들에겐 이런 특징이 있었구나.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90년대 생의 특징 하나, 그들은 간단한 것을 좋아 한다


“..모든 길고 복잡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심지어 피해야 할 일종의 악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간단함이다.“(69)


요즘 친구들이 간단한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별로 새로운 게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감히 따라갈 수가 없다.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도대체 언어가 다르니 다가설 수가 없다. 이 친구들이 말하는 것은 유추가 불가능하다.


90년대 생 친구들은 카톡 대화를 해도 이렇게 한다. A: ㅇㄱㄹㅇ ㅂㅂㅂㄱ   B: ㅁㅊㄷ ㅁㅊㄷ

(이것 아는 분들은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아도 좋다.) 초성만으로 카톡 대화를 하는 이 친구들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 ㅇㄱㄹㅇ ㅂㅂㅂㄱ(이거 리얼 반박불가), ㅁㅊㄷ(미쳤다)


우리 둘째는 90년대 초 생인데, 이 아이와 카톡을 하다보면 참 허무할 때가 많다. 나는 무슨 말을 해준다고 꽤 정성스레 문자를 보내도 답변은 고작 이모티콘 한 개다. 이 세대에겐 문자를 잘 쓰거나 빨리 쓰는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들을 따라가려고 자판을 얼마나 빨리 두드리는지 모를거다. 솔직히 말해 나만큼 빨리 자판을 치는 50대를 본 적이 없다.) 이들에겐 그런 능력보단 적절한 타이밍에 보유한 이모티콘이나 ’(아마 이 말 모를 사람 많을 것이다. 긴 설명이 필요할지 모르는데 여기선 그저 이미지사진정도로 이해하길 바란다.)을 보내는 것이 더 인정을 받는다.


이 친구들은 글을 잘 안 쓴다. 긴 글은커녕 짧은 글도 잘 안 쓰려고 한다. 내가 요즘 맡고 있는 과목에선 큰 맘 먹고, 글쓰기를 훈련시키려고 매주 짧은 과제를 하나 내 글을 쓰게 하고, 그것을 첨삭해 준다. 나로선 보통 일이 아니다.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글을 읽고, 코멘트하고, 거기에다 빨간 펜으로 첨삭을 한다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는 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런데 가끔 그것을 하면서 걱정이 앞서고, 때론 한 숨이 나온다. 내가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한다고 과연 몇 명의 친구들이 좋아할지...


폐강된 교양과목은 인문고전을 통해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목이다. 한 학기에 다루는 책이 20여 권이 넘는다. 학생들이 어려워 할 것 같아서, 그것을 잘게 잘게 풀어서 책 한 권을 썼고, 그것을 기본교재로 하면서 가끔 원전을 보도록 하는 과목이다. 사실 이 과목을 한 학기 잘 들으면, 적어도 한 동안 유식한척 하며 살 수 있다(ㅎㅎ). 그런데 이런 과목을 기피한다? 알 수 없는 일이나 요즘 친구들을 알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책 속에 이런 대목이 있다.


”90년대생들은 기존의 세대들과 달리 더 이상 정보를 책에서 찾지 않는다. 심지어 웹검색을 통해 정보를 찾지도 않으며,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찾아낸다.“(88) 이들에겐 가만히 앉아서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실“(87)이다.

 

90년대 생의 특징 둘, 그들은 비전형적 재미를 추구한다


”90년대 생의 두 번째 특징은 재미. 80년대 생 이전의 세대들이 소위 삶의 목적을 추구했다면, 90년대 생들은 삶의 유희를 추구한다. 이들은 내용 여하를 막론하고 질서라는 것을 답답하고 숨 막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질서를 요구하거나 진중해지는 모습을 보면 바로 어디서 진지국 끓이는 소리가 들리는데?“라며 응수한다. 진지한 척 하지 말라는 것이다.”(97)


나는 이 두 번째 특징을 듣는 순간 내 시대가 완전히 갔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전형적인 진지국이고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었으니. ㅠㅠ


이들의 재미는 그냥 재미가 아니다. 그것은 병맛이어야 하고, 거기에 드립력까지 있어야 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참 살다가 ㅂㅈㄹ을 다한다. ㅎㅎ) 요즘 기승전병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기승전결에 병맛이라는 신조어가 결합된 또 다른 신조어다. ’병맛이란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 기승전병은 이야기가 시작되고 전개되다가 절정 및 새로운 전환을 보여주고, 병맛스러운 결말을 짓는다는 뜻이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고 할까?


이러니 웃기더라도 종래의 패턴에 맞게 웃기면 답답한 놈 소리 듣기 딱 알맞다. 여기에서 요즘 의문 하나가 풀렸다. 티브이에서 과거 유명했던 개그맨들이 사라진 이유 말이다. 이젠 웃겨도 아주 비정형적으로 웃겨야 한다. 4차원, 5차원적으로 웃겨야지 과거 개그맨들이 웃기듯 해서는 애들이 웃지 않는다.


여기에서 드립력이란 새로운 말이 중요하게 되었다. '드립'은 임기응변이란 뜻의 애드리브가 변형된 인터넷 신조어다. ‘특정한 상황이나 행동에 대한 발언으로서 부정적 의미의 즉흥적 발언이다. 요즘은 헛소리나 실언, 막말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드립력은 드립을 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일종의 개그 능력인데, 기존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단순히 남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 짧은 말이나 글로써 촌철살인의 웃음을 주는 것이다. 나의 세대에서 이런 능력은 초인의 능력이다. 여기서 나는, 우리는 시대의 종언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ㅠㅠ

 

90년대 생의 특징 셋, 그들은 정직함과 솔직함으로 무장되었다


“90년대 생을 대표하는 마지막 특징은 정직함이다. 사실 정직함은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보편적인 가치 중 하나로 특히 신세대를 지칭하는 표현 중 하나였다. 하지만 90년대 생들에게 정직함이란 기존 세대의 정직함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직함이란 성품이 정직하다거나, 어떤 사실에 대해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Honest’와 다르다. 나누지 않고 완전한 상태, 온전함이라는 뜻의 ‘Integrity’에 가깝다. 그들은 이제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완전무결한 정직을 요구한다. 당연히 혈연, 지연, 학연은 일종의 적폐다.”(110)


요즘 학원가는 공무원 시험 열풍이다. 주된 이유야 청년실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제대로 된 직장을 찾기 힘드니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업인 공무원으로 몰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뿐 만일까? 그렇지 않다. 기업을 다니는 취업 성공자도 1-2년 다니고 때려 친 다음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도 한다. 회사원보다 공무원이 뭔가 나은 게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 하나의 원인으로 공시가 다른 회사 공채보다 정직하고, 공무원 생활이 기업생활보다 좀 더 정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의 정직함은 솔직함으로 연결된다. 그들의 솔직함은 자신만의 그것을 넘어 남들의 솔직함까지를 포함한다. 사장이 휴가는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했으면 휴가 가는 사람에게 딴 말을 하면 안 된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내 앞에서 담배 피워도 된다고 했으면 회의하다가도 맞담배 피워도 괜찮아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 하면 꼰대 소리 듣기 딱 알맞다. 근무시간이 끝난 뒤 상사가 저녁 먹자고 하면, 옛날 직원들은 군말 없이 따라갔지만, 요즘 90년대 생들은 그냥 따라가는 법이 없다. 자신의 약속이 먼저다. 이런 것 보고 군기 빠졌다고 하는 상사가 있다면 정신병자 취급받기 딱 알맞다.


눈물겹게 나를 돌아본다


우리 집 큰 아이는 80년대 생이다. 큰 애와 작은 애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둘은 위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특징에서 상당히 차이가 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젊은 친구들을 지난 13년 간 만나왔다. 나의 무심함에 큰 책임을 느낀다. ㅠㅠ 이제부터라도 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배전의 노력을 해야겠다. 그런데 사실 자신이 없다. 내가 과연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태도에 공감할 수 있을까. 시시때때로 나의 꼰대 본성이 나타나 학생들을 훈계하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입에 거품을 물지나 않을까.


그런데 말이다. 나도 지난 날 이런 풍조를 보면서 준비 안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것만은 우리 친구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 대표적인 예가 SNS 초단편 소설의 창작이다. 이 공간에서 여러 차례 선보였지만 나는 그동안 200자 원고지 10장 내외 분량의 소설을 쓴 바 있다. 복잡하고 긴 것 싫어하는 세대를 위한 나의 야심작이었다.


이것은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고 누구의 선례도 따르지 않은 나의 독창적 기법의 글쓰기다. (그런데 놀란 것은 이 책을 보니 나 같은 기법으로 소설을 쓰는 기성작가들이 이미 여러 명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 먹고 살기 어렵다! ㅠㅠ) 이렇게 노력하는 나다. 나도 그들을 따라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는 사실, 그것만큼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다음 학기 폐강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다. 오늘은 이 정도로...‘할많하않!’


)할많하않: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의 축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