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일반

'배움의 발견'(Educated), 교육이란 무엇인가?

박찬운 교수 2022. 2. 13. 10:03

오랜만에 책 한 권을 감동 깊게 읽었다. 타라 웨스트오버(Tara Westover)의 ’배움의 발견‘(Educated, 김희정 옮김). 얼마 전 둘째 딸과 대화 중에 소개받은 책인데, 2018년 출판되어 뉴욕타임지 최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비롯해 40개국 이상으로 번역되어 수백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16세까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17세가 되어서야 대입자격시험을 통해 대학에 들어간 뒤, 급기야 케임브리지 역사학 박사가 되었다는 미국 어느 깡촌 출신 여성의 입지전적인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책을 주문해 지난주부터 새벽 시간을 이용해 읽었는데, 진도를 나가지 못하다가 이번 주말을 이용해, 500쪽이 넘는 책 전체를 비교적 꼼꼼히 읽었다.

타라 웨스트오버. 1986년 생이니 올해 36세, 우리 집 큰 아이보다 딱 2살 더 많은 젊은 친구다. 현재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의 연구원으로 근무 중. 이 책은 그녀의 성장 회고록이다. 소설 같은 필체와 구성으로 교육이 얼마나 그녀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섬세하게 그렸다.

타라는 미국 서부 유타주 옆의 아이다호의 산골짜기에서 몰몬교도 부모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머니가 가르쳐 주는 것 외에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집안의 사업(아버지는 폐철처리업을 하고 어머니는 산파를 하다가 에센스 오일을 제조함)을 도우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녀의 아버지는 몰몬교도 중에서도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성도로 세상의 종말을 믿으며 정부를 불신하고 현대의학, 공교육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위험한 폐철 처리업을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그 피해자가 자신의 자식들임에도 병원 한번 가지 않는다. 아들이 떨어져 뇌를 다쳐 사경을 헤매도 집안에서 아내의 민간요법에 맡긴다. 다행히도 아들이 살아나자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자랑하며 병원 가지 않은 것을 자랑한다. 큰 며느리가 500그램 미숙아를 조산할 때도, 미숙아 상태로 둘째를 낳을 때도 병원을 가지 않고 직접 집에서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낳는다.

다행이라면 타라의 어머니의 사업이 번창해지며 돈을 번다는 것. 에센스 오일이 날개 돋친 듯 팔려 제법 큰 돈을 버는데, 아버지는 번 돈으로 종말을 대비해 지하실을 만들어 거기에 유사시 사용할 생활용품을 비축한다. 이 집안에서 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다. 어머니는 그런대로 딸의 입장을 이해하고 미래를 걱정하지만 아버지의 위세에 눌려 도와주지 못한다.

그녀가 17세가 되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은 오빠 타일러의 영향이었다. 이 집안에는 7남매 중 타라를 제외한 2명의 이단아 자식이 생긴다. 타일러와 리차드. 이 두 오빠도 어린 시절 홈스쿨 외에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지만 대입자격시험을 통해 모두 대학에 들어가고 이공계 박사가 된다. 타라는 이 오빠들의 영향을 받아 드디어 집을 탈출해 유타의 브리검 영 대학으로 간다. 이 대학은 몰몬교 지도자 중 하나인 브리검 영의 이름에서 비롯된 대학으로 학생 대부분이 몰몬교 집안에서 온 친구들이다.

그중에서도 타라는 유별난 집안에서 온 친구, 타라처럼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대학을 온 학생은 거의 찾기 힘들다. 타라는 수업 시간에 들어가 누구나 아는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고 60년대의 민권운동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대학교육을 따라가기는 무리해 보였다.

하지만 기적같이 그녀는 수업을 따라가고 졸업할 때는 우등졸업을 하며, 교수의 눈에 띄어 더 넓은 세계에 가서 공부하길 권유받는다. 그리하여 그녀는 게이츠 장학재단의 도움을 받아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고 거기서 역사학을 공부해 석사 그리고 박사를 받는다.

이런 중에도 그녀의 뒷다리를 강하게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아이다호의 집이다. 그녀가 공부할 때 부딪치는 모든 혼란의 원인은 가족, 그 중에서도 아버지란 존재다.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여자의 역할에 대한 강력한 설교를 받으며 자랐고 그것을 거부하지 못했다. 원래 그녀의 삶은 아내, 엄마의 길이었지 박사가 되어 세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8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아이다호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힘은 그만큼 강력했다. 과연 그녀는 이것을 끊어버릴 수 있을까.

이 책은 타라의 그 극복의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녀는 박사가 되고 과거를 회고하는 글을 씀으로써 그 길에 들어선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집안은 그녀를 인정하는 두 오빠와 그녀를 부인하는 부모와 형제,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책을 읽고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니 타라의 아버지는 이 책에서 부모의 역할을 잘못 그린 타라에 대노한 모양이다. 아마 이 책으로 인해 타라는 부모와 법정 다툼을 할지도 모른다. 슬픈 일이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히 교육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가정이 종교적 신념에 의해 자녀들을 옥죌 때 자녀는 어떻게 그것에서 탈출해 자유의 공기를 마실 수 있을까. 자유의 국가 미국에서 이런 것이 문제 된다는 것이 신기하다. 한국 사람으로서 적어도 이 땅에선 이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고 말하면 현실을 안일하게 보는 것일까? 우리 집에서 내가 타라의 아버지처럼 군림한다면ㅡ감히 상상도 할 수 없지만ㅡ 나의 두 딸이 타라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고민할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이 책은 미국교육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몰몬교에서나 있을 수 있는 극단적 상황 그리고 그것에서 탈출한 어떤 용감한 여성의 이야기 정도에 불과한 것일까?

아무튼 타라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가 이제 날개를 펴고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드 넓은 학문의 세계에서 별 같은 존재로 거듭나길 빈다.(2022.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