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반 고흐 그림이야기(선집)

빈센트 반 고흐 48화(고독한 천재의 최후)

박찬운 교수 2015. 9. 27. 17:58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이야기 제48화


<고독한 천재의 최후>


고흐는 1890년 7월 29일 동생 테오의 품안에서 죽었다. 공식적 사인은 자살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그는 광인으로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고 최후도 광인답게 권총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고흐가 사후 신화적인 존재가 된 데에는 자살도 한 몫을 했다. 만일 고흐가 생전에 그 천재적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고 하자. 피카소처럼 90세 정도까지 살면서 그림 값도 제대로 받아 억만장자가 되었다고 하자... 이렇게 되었더라도 지금과 같이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흐를 좋아했을까? 아닐 것이다.


그가 건강하고 마침내 장수까지 했더라면 그의 그림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가 말했다시피 그림은 고뇌의 표현이어야 하는데 건강하고 오래 산 고흐의 작품에서 그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고흐의 요절과 그의 그림에 대한 감동은 어쩜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일지 모른다. 아, 일찍 죽어야 감동한다? 이것이 고흐의 운명이란 말인가.


하지만 고흐의 최후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점이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것은 그가 1890년 7월 27일 복부에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다가 이틀 뒤에 죽었다는 사실 뿐이다. 고흐가 진짜 자살을 했는지, 자살을 했다면 그 동기는 무엇인지, 사후 120년이 넘었지만 확연히 드러난 사실은 없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년 7월). 이 그림은 고흐의 수많은 그림 중에서도 전설에 속하는 작품이다. 공식적으로는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인정받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에서도 이 그림은 전시물 중 맨 마지막 부분에 위치한다.


고흐가 자살을 했다는 데 의문을 품는 이유로는 크게 보아 서 너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고흐의 자살 동기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베르에 도착한 뒤 고흐는 건강을 회복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편지에서도 오베르가 조용히 그림을 그리기에는 적격이라고 하면서 매우 흡족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그는 간난 아기를 키우고 있는 테오에게 아기와 엄마의 건강을 위해 그곳에 와서 요양을 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무서울 정도의 기세로 그림을 그렸다. 70여일을 사는 동안 무려 80여점을 그렸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의 생애 그린 그림 중 화폭이 가장 큰 작품 여러 점을 이곳에서 그렸다. 하루에 한 점 이상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거의 신기에 가까운 작품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이 받쳐주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수년 내로 그의 건강은 최상이었고, 그러면서도 생활은 엄격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예전보다 술을 적게 마셨으며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했다. 또한 많은 시간을 걸었다. 그런 고흐가 갑자기 자살을 한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가 자살하기 직전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아도 자살 동기를 찾아내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는 자살을 했다고 하는 날 사흘 전인 7월 24일자였다. 그것을 읽어보아도 자살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는 없다. 더욱 거기에는 그가 오베르에서 만난 화가 히르쉬히를 위해 화구를 사서 그것을 자신에게 보내는 짐에 비용청구서와 함께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대목도 있다. 사흘 후 죽을 사람이 그런 부탁을 태연히 동생에게 한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행동이다.


(다만, 나는, 고흐가 정말 자살을 했다면, 다른 각도에서 그의 자살동기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생 테오와 관련된 문제다. 당시 테오는 병중에 있었고,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고흐는 이것을 알았고, 테오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했다. 그렇다면... 테오 죽음 이후 자신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10여 년 간 테오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면서 화가 생활을 해왔는데, 동생 없이 살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 동생이 죽기 전에 미리 죽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고흐가 했다면 그의 자살 동기는 어느 정도 이해되지 않을까.)


또 다른 의문은 자살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데, 당시 자살에 사용된 총(권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권총자살이라고 해도 그가 어떻게 권총을 입수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진 게 없었다.


고흐 사후 여러 사람들이 그의 사인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대부분 가설적 수준을 넘지 못해 자살은 정설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최근 이 자살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이 제기되어 고흐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011년 출판된 <Van Gogh: the Life>라는 책에서이다. 이 책은 스티븐 네이퍼와 그레고리 스미드라는 두 연구가가 쓴 최신 고흐 전기로 95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고흐 자살설을 반박하면서 사고사를 주장했다.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밀밭>(1890년 7월). 이 그림은 내 눈에는 첫 번째 그림만큼이나 대단한 그림인데 어쩐 일인지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그림에서 오는 느낌은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1890년 7월 10일)에서 말한 “절대적인 슬픔과 고독감”이다.


나는 이번 가을 고흐 그림이야기를 써오면서 거금을 들여 이 책을 구입해 그동안 참고해 왔다. 오늘 이야기도 이 책에 기초하는데, 여기에서의 주장은 고흐가 총을 맞긴 했지만 그것은 자살이 아니라 당시 오베르에 와 있던 10대 소년들에ㅡ시그리통 형제인데, 이들의 아버지는 파리의 돈 많은 약사로 이곳에 여름 별장을 갖고 있었다. 여름이면 이들 가족은 이곳에 와서 한 철을 보내고 갔던 모양이다.ㅡ의해서라는 것이다. 그들은 카우보이 장난을 하던 중 권총을 발사하여 예기치 않게 고흐의 복부를 맞혔다. 하지만 고흐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소행을 밝히지 않고 죽었다.


이 책에 의하면, 고흐 사후 수 십 년이 흐른 다음, 이들 형제 중 한 사람인 르네 시크리통은 고흐가 죽을 때 사용된 권총은 자신들의 총이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다만 이 인터뷰에서 그가 고흐를 죽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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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이 어떻든 고흐는 죽었다. 자살이 아니고 사고사라도 그가 37세에 요절했다는 사실을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다만 이 문제는 그의 작품을 해석하고 감상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 자살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베르에서 그린 작품 중 상당부분, 특히 죽음에 임박해서 그린 작품들은 자살과 연결시켜 해석하기 쉽다. 만일 사고사였다면 오베르에서 남긴 그림 모두에 대해 죽음을 직접 연결시킬 필요 없이 좀 더 순수하게 미학적 관점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오늘은 그의 생애 마지막 시기에 그린 작품 두 점을 보도록 하자. 모두 밀밭 그림이다.


첫 번째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년 7월). 이 그림은 고흐의 수많은 그림 중에서도 전설에 속하는 작품이다. 공식적으로는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인정받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에서도 이 그림은 전시물 중 맨 마지막 부분에 위치한다. 고흐의 사인이 자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그림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것이다.


짙은 어둠이 깔린 하늘과 검정색 까마귀는 비극적인 영웅의 임박한 죽음을 암시한다. 그림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은 어쩐지 끝이 꽉 막혀 있다. 이것을 보면서 관객들은 이제 나의 시대는 끝났다고 외치는 고흐의 음성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흐의 자살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본다면 여기에서 바로 고흐의 죽음을 느낄 필요는 없다. 수많은 고통으로 멍들어 있는 화가의 영혼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받아들이면 될 뿐이다. 생레미 정신병원에서도 그랬지만 고흐가 얼마나 많은 그림에서 자신의 아픈 영혼을 그렸는가. 이 작품도 그런 그림의 연속일 뿐이다.


그런 눈으로 이 그림을 보면 이 작품은 힘이 넘친다. 붓 칠의 강력한 힘과 그 속도감이 화판을 뚫고 보는 이의 눈앞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다. 생각해 보라, 고흐가 이 밀밭 어느 끝에서 이젤 위에 캔버스를 놓고 신 들린듯한 붓놀림으로 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두 번째 그림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밀밭>(1890년 7월). 이 그림은 내 눈에는 첫 번째 그림만큼이나 대단한 그림인데 어쩐 일인지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그림에서 오는 느낌은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1890년 7월 10일)에서 말한 “절대적인 슬픔과 고독감”이다. 여기에서 고흐는 어떤 사물도 정확하게 그리지 않았다. 이 그림에선 오로지 노란색, 녹색, 파란색, 흰색의 붓 칠만이 존재한다. 밀밭의 구획을 볼 수 있지만 그것도 그저 붓 칠 방향으로 결정된 것이다.


지평선을 보면 밀밭의 경계가 분명하게 보이면서 짙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다. 원근법적으로 그린다면 지평선 부분은 명확하게 그리는 것보다는 불분명하게 그리는 것이 맞지만 여기에선 정 반대다. 오히려 가까운 하늘이 희미하다. 가까운 하늘의 구름은 흰색으로 처리하고 저 멀리 지평선 근처 하늘은 짙푸른 색으로 처리했다. 이런 방법으로 고흐는 임박한 그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여기에서도 누군가는 죽음을 느낀다고 할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불길하고도 음울한 심리상태를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제 말을 맺자. 고흐가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린 그림에서 나는 그의 절대적인 고독을 느낀다. 내 마음도 흔들린다. 고흐는 이 그림들을 그린 뒤 얼마 후 죽었다. 37세의 나이, 불꽃 같이 산 인생이었다. 특히 죽기 전 10년간은 화가로서 살면서 절대 고독 속에서도 세계 회화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그림을 지칠 줄 모르게 그렸다.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 이 그림은 고흐의 작품을 전기와 후기로 나눌 때 전기의 대표작이다. 검은색 주조의 음울한 그림이다. 하지만 농부들의 정직한 삶을 이보다 더 진솔하게 그린 그림이 어디에 있을까!


그 짧은 기간 중 화가로서의 발전 속도는 보는 이의 찬사의 대상이다. 그가 죽기 5년 전, 스스로 만족해했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ㅡ 이 그림은 고흐의 작품을 전기와 후기로 나눌 때 전기의 대표작이다.ㅡ과 오늘 그림 두 점을 비교해 보자. 이것이 바로 5년 만에 이루어낸 한 위대한 화가의 변화였다. 그 변화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한 평론가는 그 변화를, 짧지만 극적으로, 이렇게 평가했다.


“주목할 만한 최초의 작품인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린 지 겨우 오 년이 지났을 뿐이다. 반 고흐의 예술이 그린 궤적은 짧았지만 그 발전 속도는 전광석화와 같았다.”(페데리카 아르미랄리오, <반 고흐>, 208쪽)

(2014. 11. 17)







위 이야기는 필자의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사곰)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