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사상

엔트로피

박찬운 교수 2015. 9. 26. 18:21

지적 호기심과 영감을 자극한 책 <엔트로피>(제러미 리프킨)


일반적으로 좋은 책으로 불리는 책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권위 있는 지식을 주는 책이다. 이런 책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유식해진다. 예를 들면 러셀의 <서양철학사>나 풍우란의 <중국철학사> 같은 책이다.

두 번째는 영감을 주는 책이다. 이런 책은 책 속의 지식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삶의 방식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던져 준다.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와 같은 책이다.

세 번째는 위 두 가지 내용 모두를 포함한 책이다. 지적 호기심도 자극하고 삶에 영감도 주는 책 말이다. 내가 가장 읽기를 원하는 책이 바로 세 번째 종류의 책이다.

그런데 이런 책은 수백 권을 읽어도 발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학교로 삶의 근거지를 옮긴 지난 8년간 꽤 많은 책을 읽었다. 대략 1천여 권 이상의 책이 내 손을 거쳐 갔다. 그러니 그 중에서 한 권만 추천해 달라고 누군가가 요청한다면 꽤나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 권을 감히 추천한다면 <엔트로피>(제러미 리프킨)이다. 이 책이야말로 나에게 지적 호기심과 영감을 동시에 준 흔하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은 리프킨이 30대 말에 저술한 것으로 그의 많은 저서 중 초기 저작에 속한다. 내가 보기엔 이 책은 리프킨의 모든 저서의 총론에 해당한다, 그의 다른 책(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육식의 종말 등등)은 이 책의 각론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리프킨의 책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리프킨은 이 책을 통해 내게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를 이해시켰고, 그것이 우주의 원리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었다.

 엔트로피를 순수 열역학적 개념으로 설명하면 물리학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리프킨이 사회과학적으로 변환한 개념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지만(이를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라 한다. 열역학 제1법칙이라 함) 엔트로피 총량은 계속 증가한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우주의 에너지는 늘 일정하지만 그 형태는 끊임없이 바뀌며 한번 바뀐 에너지는 일방적이어 다시는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엔트로피는 사용가능한 에너지의 손실을 나타내는 물리량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달리 말하면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의 물리량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도, 비행기를 타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도, 우리가 에너지를 사용하여 움직이는 모든 것이 엔트로피적 관점에서 보면 엔트로피 증가이고, 이것을 물리학적으로 보면 에너지는 한 번 변환하면 결코 원래의 상태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번 달구어진 쇠부짓갱이는 식어서 열평형 상태가 되면 다시 불에 넣어 달구기 전에는 저절로 뜨거워질 수가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바로 이것이 엔트로피가 증가한 현상이다. 나아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엎지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말은 엔트로피 법칙을 생활법칙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이다

이 책은 내게 몇 가지 면에서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금만 따져보자.

첫째, 세상사-특히 인류의 발전, 과학문명-를 물리학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었다. 인간이 하는 대부분 일은 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결국 그것은 에너지 문제로 환원된다. 이 책은 그것을 분명하게 알려 주었다.

둘째, 과학문명의 발전이 인류에게 행복만 주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였다. 과학의 발전은 엔트로피의 증가를 가져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에너지 고갈을 앞당기는 측면이 있다. 어쩌면 인간의 과학은 종말을 앞당기는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셋째, 우리가 세상과 우주에 기여하는 삶은 엔트로피를 낮추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쉽게 말하면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 삶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가 차를 타기보다는 걸어야 하는지, 왜 육식문화에서 채식문화로 가야하는지 이 책은 궁극적으로 설명한다.

엔트로피 이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있고, 리프킨의 철학을 종말론적 철학이라고 하면서 혹독한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내게 있어, 적어도 당분간은, 이 <엔트로피>와 비견될 책을 발견하기 힘들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한 번 숙독해 볼 것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