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고독과 슬픔

일요단상 -2500년 전의 은혜, 배은망덕의 전쟁-

박찬운 교수 2025. 6. 22. 12:53

일요단상
-2500년 전의 은혜, 배은망덕의 전쟁-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 페르세폴리스(필자 촬영)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폭격했다고 한다.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확전되는 것 같다. 21세기에도 이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도무지 비현실적인 전쟁이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에서 해방된 것은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 창시자인 고레스(키루스) 대왕의 은혜 덕분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를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 부르며 성경에 찬미까지 남겼다. 이란, 곧 페르시아는 유대 민족에게 역사적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민족이었다.

[이사야서 45장 1절: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왕들의 허리를 풀며 성문들을 그의 앞에 열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그로부터 2500년이 지난 지금, 그 역사는 기이하게 뒤틀렸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선제공격을 퍼부었고, 오늘 미국이 그 뒤를 따랐다. 중동의 하늘은 다시 미사일과 드론으로 뒤덮였고, 예언자들이 살았던 땅은 불길과 연기로 가득하다.


나는 문득 '배은망덕'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물론 오늘의 국제 정세와 고대의 은덕을 동일선상에 둘 순 없다. 하지만 역사는 단절되지 않는다. 고레스의 이름을 기억하며 국가의 재건을 노래하던 이스라엘이, 지금은 페르시아 후예의 수도를 향해 정밀유도탄을 날리는 현실은 서글프다.


그러나 이란을 무시해선 안 된다. 이란은 결코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다. 인구는 1억에 가깝고, 영토는 서아시아에서 가장 광활하다. 수천 년의 제국 전통과 굴하지 않는 민족적 자존심은 그 어떤 폭격으로도 무너뜨리기 어렵다. 첨단무기가 하룻밤에 도시를 초토화할 수는 있어도, 이란이라는 나라 전체를 굴복시키는 일은 현실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깝다. 이것은 내가 10여 년 전 이란을 여행하면서 갖게 된 확신이다.


이 전쟁의 목적은 무엇인가. 위협의 제거인가, 체제의 교체인가, 아니면 정치적 쇼인가. 어느 것이든 간에, 이 전쟁은 승리보다 상처를 남길 것이다. 군사적 승리는 일시적이지만, 기억의 상처는 오래 남는다. 그것이 바로 중동의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이 아닐까. 2500년 전, 고레스의 관용이 이룬 평화는 전쟁 없이도 역사를 바꿨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가.
(2025.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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