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안데스에 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8)-티티카카호를 거쳐 라파스로-

박찬운 교수 2024. 1. 22. 05:05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8)

-티티카카호를 거쳐 라파스로-

 
 

라파스의 야경. 라파스의 낮 풍경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성냥갑 같은 집들로 인해 볼리비아인들의 지난한 삶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성냥갑 집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여행 열흘째(12월 22일) 일행은 쿠스코 버스터미널에서 푸노행 2층 버스를 탔다. 푸노를 거쳐 국경을 넘어 볼리비아로 들어가 라파스로 가는 이틀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페루의 경제력은 우리보다 분명히 아래이지만 장거리 버스는 꽤 수준이 높다. 버스 내부도 고급스럽고 실내 화장실까지 있으니 쉬지 않고 장시간을 가도 크게 걱정할 일이 없다.
 

위 푸른색 부분을 알티플라노라고 부른다. 페루와 볼리비아 고원지대로 3천 미터 이상 고지대이다.

 

이제부터 여행의 주된 무대는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안데스 알티플라노(고원지대)다. 이 고원지대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바다같은 위용을 자랑하는 티티카카호,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도 라파스 그리고 안데스 고원의 정점인 우유니 사막이 있다. 이 지역 면적을 합하면 한반도의 몇 배가 되니 그 광대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쿠스코에서 푸노를 갈 때 탄 2층 버스
쿠스코에서 푸노를 가는 길엔 이런 풍경이 계속 나타난다. 해발 고도가 3천 미터를 넘은 곳이라 나무는 거의 없다. 이런 초지에서 라마와 알파카가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이 계속된다.


버스는 쿠스코에서 5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 푸카라스라는 곳에서 잠시 정차했다. 그곳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잠시 주변을 걷다가 Museo라는 간판에 이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루에 몇 사람 올지 모르는 박물관 같지 않은 박물관이다. 그래도 호기심이 발동해 내부를 둘러보니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이 맞다.

이곳도 기원전부터 사람이 살면서 일정한 문명을 일으켰다. 머지않은 곳에 티티카카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건조한 고원지대이지만 사람들이 마시고 농사짓기 충분한 거대한 호수가 있다면 문명을 일으킬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되지 않는가. 발굴된 토기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남미대륙에 우리가 잘 모르는 문명사적 흔적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푸노를 가다가 우연히 들른 이름 모를 박물관. 티티카카호에 가까운 이곳 주변엔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고 거기서 상당한 문명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저녁 무렵 버스가 푸노에 도착할 때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인다.  저것이 바로 페루와 볼리비아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장 큰 호수(정확히 말하면 운송로로 이용 가능한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 티티카카호다. 그 크기(8천 평방 킬로미터)가 우리나라 충청남도 전체 면적과 비슷하다. 푸노는 티티카카호를 옆에 둔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페루 남동부 고원지대의 거점도시다.

어릴 때 퀴즈 프로그램에서 이 호수 이름을 들은 이후 그 발음이 특이해(티-티-카-카) 잊지 않고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나 드디어 이 호수를 만나니 한마디로 감개무량이다.

어린 시절부터 말로만 듣던 티티카카호에 왔다. 환호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푸노 도착 후 일행 중 일부는 티티카카 호수 내에 있는 갈대섬 우로스섬으로 떠났지만 나는 푸노에 남았다. 그 섬에 대해서는 티브이에서 여러 차례 본지라 어떤 섬인지 잘 알고 있었고,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호수만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대신 짧은 시간이라도 푸노 시내를 보고 싶었다. 때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시내는 한참 들떠 있는 것 같았다. 몇몇 분들과 의기투합해 시내를 들어가니 과연 인산인해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거리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축제를 하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원주민들 속에 들어가니 평상시 뻣뻣한 내 몸도 순간적으로 유연해져 나도 모르게 몸을 흔들었다. 잠시 뒤엔 어린이를 앞장세운 큰 퍼레이드가 진행되었다. 푸노 주민 모두가 나와 함성을 지르며 연중 최고의 순간을 즐기는 것 같다. 가톨릭은 이제 이곳 티티카카 호숫가에서 더 이상 외래 종교가 아니다. 대중의 마음을 완전 장악했으니 말이다.

푸노의 크리스마스 축제

 
다음 날 아침 푸노를 뒤로 하고 티티카카 호수를 옆으로 한 채 두어 시간 달리니 국경 마을 데사아구아데로다. 여기에서 볼리비아 입국 절차를 마친 후 국경을 넘었다. 일견 페루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리 하나 건너 두 나라의 차이를 피부로 느끼니 국가라는 공동체가 이리도 중요한지 모르겠다.

볼리비아에서 나온 전용버스에 타니 현지 가이드가 이곳저곳 설명을 한다. 특히 그가 말한 것 중에서 유심히 들은 것은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 있는 티와나쿠 유적. 이 유적은 아직도 발굴 중인데 그의 말에 의하면 여기가 볼리비아의 마추픽추라고 한다. 기원 전후부터 티티카카호 근처에서 문명이 일어났고, 티와나쿠가 그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문명은 기원후 1000년 무렵까지 꽃을 피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정상 발굴 현장을 못보고고 지나치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으나 이런 사실을 알았다는 데에 만족했다.

이날 저녁 나는 라파스의 시장에서 기념품 하나에 눈이 가 즉석에서 사버렸다. 알고 보니 이것이 티와나쿠 유적에서 가장 유명한 ‘태양의 문’에 새겨진 태양신이었다.
 

티와나쿠 유적 중 '태양의 문'(위키피디아)

 

내가 라파스 시장에서 산 기념품, 알고 보니 이 것은 티와나쿠 유적 중 '태양의 문'에 새겨진 태양신을 기념품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날 오후 우리의 눈에 볼리비아 최대도시 라파스(La Paz)가  들어왔다. 라파스! 스페인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라파스는 해발 3600미터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볼리비아의 행정수도로 여기에 대통령과 행정부 그리고 의회가 있다. 사법부는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수크레에 있다.

라파스는 16세기 스페인 식민 통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로 당시 최대 은광 도시 포토시와 리마를 잇는 중간 거점도시였다.  도시는 절구 모양으로 절구의 바닥부분은 부자가, 가장자리 부분에 빈자가 산다. 그 표고차가 무려 700미터에 이른다.

라파스는 현재 거의 20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밀집해 살고 있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그런 이유로 1980년대 이후 라파스를 둘러싼 절벽 위에 있는  엘 알토(스페인어로 Alto는 높다는 뜻임)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텔리펠리코에서 본 라파스(위)와 엘알토(아래)

 
이날 안내를 맡은 에드윈은 매우 지적인 사람이었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볼리비아의 역사를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간명하게 설명했다. 그는 볼리비아는 다민족 국가(볼리비아 다민족 공화국, Estado Plurinacional de Bolivia)로서  36개의 공용어가 있고, 스페인어는 37번째 공용어일뿐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이날 그와 함께 라파스의 교통상황을 직접 경험한 것은 특별한 체험이었다. 엘 알토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라파스에서 일하는 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라파스에 들어가기 위해선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최근(모랄레스 대통령 시절) 해결되었다. 공중으로 이동하는 케이블카(텔리펠리코)를 설치하면서 말이다.

현재 케이블카는 엘알토에 3개 라인, 라파스에 8개 라인이 설치되어 있어, 엘알토에서 라파스로 순식간에 내려 올 수 있다. 4천 미터가 넘는 신도시 엘알토에서 그 아래 도시 라파스로 케이블카가 쉴 새 없이 다니고 있는 것을 목도하니 지난 10여 년간 볼리비아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변화를 일으킨 이가 원주민(티티카카 호수 주변의 최대 부족 아이마라족) 출신 최초의 대통령 모랄레스다. 모랄레스는 2019년 그의 반대파에 의해 부정선거 의혹(이 의혹은 후일 근거없는 것으로 밝혀짐)으로 쫓겨났지만 아직도 그에겐 열렬한 지지자들이 많다. 나는 에드윈에게 조용히 그러나 직접적으로 물어보았다. “당신은 모랄레스를 지지하는가?” 그의 대답은 명료했다. “그렇다”
 

라파스 시내의 숙소로 들어가기 전 시 외곽에 있는  '달의 계곡'을 잠시 방문했다. 닐 암스트롱이 언젠가 이곳에 와 달 표면과 유사하다고 한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가 라파스 시내에 도착할 무렵 이곳도 크리스마스 축제가 한창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성당 앞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볼리비아의 이름은 시몬 볼리바르에서 온 것이다. 이곳까지 와서 그의 흔적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밤 시간 볼리바르 동상을 찾아 한참 헤매다가 마침내 그의 동상 앞에 설 수 있었다.

 
저녁 시간 라파스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낮에 보았던 성냥갑 같은 집들이 밤 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그렇지만 나는 이 야경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한 가지 더 보고 싶은 게 있었다. 볼리비아를 독립시키고 볼리비아라는 이름을 갖게 한 인물 볼리바르를 찾아 나섰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의 동상이 있다는 에드윈의 말을 듣고서다.

호텔에서 500미터 내에 있다고 해 찾아나섰지만 내 스페인어가 서툰 것인지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잘못 알려준 것인지 한참을 헤매다가 마침내 거리 한 복판에 있는 그의 동상을 찾아냈다. 한밤중이었지만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에서 온 여행자가 남미의 영원한 영웅 시몬 호세 안토니오 데라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볼리바르 팔라시오스 이 블란코(1783-1830)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 8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