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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무엇인가(소극적 자유)

자유란 무엇인가? 이것은 제 학부 교양과목의 제목입니다. 16주 동안 48시간에 걸쳐 강의가 진행됩니다. 저는 이 내용을 인권위 시절 15분짜리 동영상 두 개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48시간의 내용을 30분으로 축약해 만든 것이지요. 여기에 그 동영상을 올립니다. 첫 번째는 '소극적 자유'에 관한 강의입니다. https://youtube.com/watch?v=2uGux9FGPSE&si=EnSIkaIECMiOmarE

"인권위는 제 인생 전부였습니다" 인권위원 퇴임 인터뷰

http://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819 [인터뷰] 노란봉투법 권고한 박찬운 전 인권위원 “尹정부, 대결적 접근 우려” - 시사저널e - 온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차별금지법, 양심적병역거부, 사형제, 난민, 노란봉투법, 성소수자”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결정은 종종 우리 사회에 민감한 화두를 던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 www.sisajournal-e.com 인터뷰를 했지만 지면사정상 기사화되지 않은 내용이 많다. 그 중에서 주요한 문답을 여기에 올린다. Q1. 교수님은 지난 30년 이상 인권문제에 천착해 왔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회고해 줄 수 있습니까? A . 처음부터 그렇게 살고자 결심했던 것은 아닌데 살다 보니 그렇게..

새벽의 작은 결심

또 한 해의 마지막에 섰습니다. 매년 이때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는 결심을 했지만 언젠가부터 그저 조용히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돌아보면서 마지막 날 새벽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올해 저는 환갑을 넘겼습니다.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고 새로운 육십갑자를 향해 발을 내딛는 해였습니다. 이제 머리는 반백이 아니라 올백이 되었고 어딜 가나 영감님 소리를 듣습니다. 가끔 다리가 아프면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에 앉는 것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3년 임기의 인권위원이란 공직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갑니다. 제 인생에서 일로 인해 몇 번 몰입한 시기가 있었는데, 아마 지난 3년이 그런 시기의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제 능력의 한계가 있었지만 일에 대해선 큰 여한이 없습니다. 그만큼..

또 하나의 세상의 중심, 마라케시

마라케시를 가게 된 연유 나는 법률가로 이 작은 땅 대한민국에서 살지만 머릿속은 언제나 세계를 유랑한다. 시간이 나면, 기회가 있으면 배낭을 메고 세계를 누빈다. 그곳에서 다른 문화를 접하고, 피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 나 자신을 확인한다. 잠시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금새 그들도 나의 형제요 자매다. 그 속에서 '보편인으로서의 나'를 확인한다. 그런 내가 지난 3년간 어딜 나가보질 못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공무든 휴가든 대한민국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저 책상 앞에서 일만 하는 수밖에.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분명 3년 내내 사건 속에 파묻혀 산 코로나 인권위원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년 간 인권위 역사에서 나처럼 일해 온 인권위원은 없었을 것..

법률가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레인메이커 The Rainmaker>

법률가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 일을 상당기간 해왔기에 말하지만 그런 법률가가 나오긴 매우 어렵다. 법률가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돈과 권력을 추종하는 성향이 강하다. 법률가는 주로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법률기술을 발휘한다. 그렇게 해서 어떤 법률가는 권력가가 주는 조그만 권력에 도취하고, 또 어떤 법률가는 부자가 주는 부스러기 돈에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가끔은 예외가 있는 법. 법이란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이고 도구이니 누군가가 이것을 잘만 쓴다면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도 있다. 법률가가 많으면 세상은 좋아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연 미국사회가 답을 준다. 세상에 미국만큼 법률가 많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변호사 수는 현..

영화이야기 2022.10.10

발틱 제국을 가다(4)

탈린 유럽의 문화의 수도라고 하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이 아름다운 도시를 간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된다. 우리 발틱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탈린이다. 7월 11일 오후 일행은 탈린에 입성했다. 탈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12세기 이전의 이곳 역사는 잘 알려지 있지 않다. 유럽 역사에서 분명한 기록은 13세기 초 이곳이 덴마크의 영토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탈린은 덴마크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탈린에는 덴마크인들이 만든 성벽 등이 남아 있어 그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는 게 어렵지 않다. 덴마크 이후 이곳을 지배한 이들은 북구의 중세사에서 이름을 떨친 튜톤 기사단이다. 기록에 의하면 14세기 중반 덴마크는 탈린과 그 인근 영역을 튜톤 기사단에게 팔았..

발틱 제국을 가다(3)

빌뉴스를 돌아 본 다음 우리 일행은 시내에서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트라카이로 향했다. 이곳은 빌뉴스가 수도로 정해지기 전에 수도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리투아니아의 고도 중의 고도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지금 국립공원인데, 큰 호수 한 가운데에 붉은 지붕의 성이 하나 우뚝 서 있다. 그것이 바로 관광의 핵심 트라카이 성이다. 이 성은 14세기 말에 리투아니아의 지배자 비타우타스가 건립한 것인데 15세기 초 베네딕트 수도사들에게 주어 버렸다고 한다. 그 후 수 세기에 걸쳐 재건축에 재건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유럽에서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성으로서는 유일한 성이라고 한다. 트라카이 성으로 가기 전에 한 마을을 지난다. 카라이마 마을이라고 하는데 14세기 흑해 지역에서 일단의 터키인들이 이곳으로 ..

발틱 제국을 가다(2)

2차 대전 중 히틀러의 비밀 요새는 여러 곳에 산재해 있었다. 그 중에서 볼프스산체는 가장 유명한 곳이다. 히틀러는 소련 침공 이후 이곳에서 800일을 머물면서 전선을 지휘했다. 이곳은 천연의 요새이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당시 소련 국경과는 80킬로미터 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고 주변에는 마주리아 호수 등이 있어 물을 얻기 쉬울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천연의 장벽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주민의 수도 많지 않았고 이미 독일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도 독일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평지이지만 울창한 숲이기 때문에 요새를 숨기기에는 적격이었다. 가이드 매트가 볼프스산체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곳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와 같이 여행하는 분들 대부분이 65세 이후의 노인들인데 가이드의 설명..

발틱 제국을 가다(1)

벌써 오래 전 일이다. 10년이 지나 가고 있으니. 나의 룬드시절(2012-2013) 발틱 국가(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를 여행한 일이다. 2013년 여름 귀국을 앞두고 동료교수 두 분과 함께 발틱 국가를 여행했다. 나는 이 여행을 위해 연구소 근처의 여행사 창가에 붙은 가격표를 매일 점검했다. 봄철 어느날 여름에 떠나는 발틱 여행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여행사 문을 두드렸다. 이야기인즉, 연중 가장 싼 가격(지금 기억인데 8박9일에 60만원 정도)에 예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학교의 두분 교수(최태현, 김차동)에게 알리면서 발틱여행을 권했다. 이분들과는 이미 몇 곳(실크로드, 터키, 이집트)을 함께 여행했기 때문에 발틱여행도 죽이 맞을 것 같았다. 긍정적인 답신이 왔고 나..

토스카나를 가다(2)

피렌체 피렌체! 지난 해(2011) 초 처음으로 간 이래 일년만에 두번째 방문이다. 두번째 방문이라 산타노벨라 역에서 내려 시내까지 가는 데 거침이 없었다. 두오모는 역시 위엄스런 자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관광시즌이 되어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 주변에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번에는 쿠폴라에 오르자 하는 마음으로 매표소를 갔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 줄 선 이들이 모두 올라가려면 이곳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포기. 좀 아쉽다. 점심은 작년 이곳에 와서 몇 번 가본 단테의 집 근처 식당에서 하기로 하고 그곳을 찾았다. 찾기가 쉽지 않았으나 나의 끈기로 찾아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1년 전 이곳에서의 식사를 생각했다. 피티궁을 향했다. 피티궁은 1458년 메디체가의 경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