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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삶

내 삶은 심심하다. 음식은 짭조름한 것을 좋아하는데 삶은 싱겁기 그지 없다. 심심하다는 것은 단조롭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가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삶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루틴한 삶에 만족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내겐 이보다 좋은 삶은 없다. 나는 일찍 일어난다. 작년까지만 해도 4시 무렵 기상했는데 어쩐 일인지 최근 들어선 3시쯤 깬다. 조금 더 자야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아보지만 이미 잠은 저 멀리 도망갔다. 책상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하고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한다. 지난 2월 공직 퇴임 후 이 시간을 이용해 회고록을 썼다. 학교에 돌아 왔으니 학술 논문을 쓰는 것이 본업이라 생각하고 요 며칠은 거기에 온 정신을 쏟아부었다. 6시가 되면 부엌에 나가 빵을 굽고 과일을 깎아 팬에 넣고 볶..

격세지감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도통 알 수가 없다. 미국이 대통령실에 대해 도감청을 한 것이 거의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용산의 반응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언론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몇 개의 지면과 방송 뉴스를 제외하곤 이 사건이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1978년 청와대 도청사건으로 전국이 들끓었다. 대한민국 모든 단체가 거리로 몰려 나와 미국을 비난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대학생은 물론 심지어 고교생들도 이 항의에 동참했다. 당시 나는 교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벚꽃이 필 무렵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우리는 분개한 나머지 운동장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잠겨진 교문을 향해 달려갔다. 몇 몇 친구들은 학교 담장을 넘었다. 거리에 나가 반미 데모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생각하면, ..

스승에 대한 기억

나는 어젯밤 글에서 요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내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내게는 넘사벽이었다고 말했다. 그분들은 나와는 완전 딴 세상에 사는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분들이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은 찬찬히 한 분 한 분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그분들은 내게 어떤 존재이었을까? (아래 나이는 내가 교수님들을 처음 만났을 때 연세이다.) A 교수님(헌법). 50대 초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살아오셨다고 들었음. 교수님 중 가장 재산이 많은 분으로 자타가 공인. 독일 유학파인데 강의 시간에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칠판에 독일어를..

찻잔 속 미풍

언제나 주말 오후 되면 강남 어느 카페 창가에 앉아 진한 카페라테 한잔 앞에 두고 창밖 내다보니 분주히 걸어가는 사람 쏜살같이 내달리는 자동차 쏟아지는 햇빛 눈부셔 잠시 눈감았더니 꿈인지 생시인지 청바지 장발 청년 수줍은 여인 손잡고 걸어가네 저 모습 어제같은데 어느새 사십여년 훌쩍 마음 속 낭만 여전히 바람되어 불어오나 한물간 사람 탄식에 묻혀 찻잔 속 미풍이 되다 (2023. 4. 2.)

아날로그 시대의 스승과 디지털 시대의 스승

저는 가끔 궁금합니다. 과거 제가 경험한 스승에 대한 감정과 지금 제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느끼는 스승에 대한 감정이 같을까? 제가 80년대 초 대학을 다닐 때 보았던 선생님들은 제겐 넘사벽이었습니다. 특히 C교수님의 경우 풍채도 좋고 말씀도 잘하셔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 나오는 킹스필드 교수에 비교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C교수님의 생몰연대를 확인해 보니, 당시 40대 후반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보다 무려 14-15세 아래였던 것이지요.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대학 시절 저보다 40년 이상 차이가 나는 교수님 몇 분을 만난 기억도 있습니다. 그중 한 분이 D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일주일에 한 번 시간강사로 오시던 J교수님이셨는데, 그 교수님은 일제시대..

카테고리 없음 2023.04.02

정성(精誠)이란

출근을 하면서 캠퍼스의 벚꽃을 감상했습니다. 지난 주말 꽃망울을 터트리더니 오늘 드디어 절정입니다. 3일 연속 사진을 찍어 보니 그 차이가 확연합니다. 오늘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저는 매일 출근을 하면서 일부로 학교에서 먼 역(왕십리역)에서 내려 연구실까지 걸어옵니다. 저희 학교는 옛날 청계천 변의 야산을 깎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경사가 심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불평하지만 저에겐 다리 근육을 키우는 데 딱 좋습니다. ㅎㅎ(긍정적 마인드!) 아마 저희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은 몇 년 캠퍼스를 다니다 보면 단단한 다리를 얻을 겁니다. 저는 경사진 곳을 걷기 위해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학교로 돌아와 한번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이렇게 출근하니 연구실에 오면 근육의 팽팽함을 느낍니다. 그..

일본의 양심, 이가라시 후다바 변호사

제겐 아주 존경할만한 일본인 친구가 여럿 있습니다. 저는 30년 전 국제인권법을 배울 때 일본 법률가에게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중엔 이가라시 후다바(여성)라는 분이 있습니다. 올해 92세. 일본의 대표적 인권 변호사입니다. 이분은 원래 문학을 전공하다가 30이 넘어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신 분입니다. 늦게 출발했지만 변호사 생활을 거의 60년 가까이 해오신 분이지요. 이가라시 변호사님은 일찍이 국제인권법 연구를 하셨고 많은 관련 저서를 내셨습니다. 그의 주된 연구는 일본의 형사절차가 얼마나 국제적으로 후진적인가를 밝히고 그 개선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연세 80이 넘어서도 그 연구는 쉼이 없고 최근까지 저서를 내고 계십니다. 놀라울 일이지요. 원래 문학을 하신 분이라 소설까지 쓰시는데 한국에서도 ..

뿌리를 찾아서

저는 항상 말하길, "인간은 뿌리를 잊어선 안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보여주기 싫은 과거라도 그것을 부정해선 안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인생은 더 보잘것 없는 것이 됩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그 기억은 가물가물하니, 제 인생의 뿌리는 아마도 이곳 사근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매일같이 점심을 먹으며 차 한 잔을 하는 곳, 바로 이곳입니다. 1973년 이곳에 왔으니 꼬박 5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곳을 잠시 떠나 있었고, 직업을 갖고 나선 강남 사람이 되었지만, 결국 저는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2006년 교수로 말입니다. 오늘 3년 만에 사근동에 가서 혼밥을 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특히 제가 50년 전 전학 온 초등학교를 가보았지요. 73년에도 서울에..

자유란 무엇인가(적극적 자유)

https://youtube.com/watch?v=WesLlsnpKwg&si=EnSIkaIECMiOmarE 이 동영상은 제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시절(2020-2023) 제작한 사이버 인권교육 영상입니다.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두 번의 강의(소극적 자유, 적극적 자유, 각 15분)를 통해 자유 곧 인권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강의 내용은 제가 학부에서 강의하는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강의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한 학기 강의 48시간을 단 30분에 만날 수 있습니다.